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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녹 Nov 15. 2024

[짧은 픽션] - 라이트 하우스

 


부엌에서부터 엄마와 아빠의 대화소리가 방문 틈 사이로 조그맣게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샤워를 위해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암흑으로 덮여있던 마을 등대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는 대화였다.


지난 새벽, 마을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바닷가로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그중 엄마와 아빠 또한 등대가 보이는 해변가로 나간 것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거길 들어간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니, 거의 20년 동안이나 사용되지도 않던 등대에 누가 들어갈 생각을 하겠어."

아빠가 말했다.


"아무도 모른대? 누가 들어간 건지?"


"그렇다니까. 들어간 건 둘째치더라도 거기에 누가 불을 켰는지가 지금 관건이야."


"이상한 일이네, 정말. 이 마을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는데..."


"몰라, 나도. 일단 오늘 밤에 패터슨네 집에 가서 다 같이 대책 회의를 좀 하기로 했으니까

이따가 당신도 나랑 같이 가."


"알았어. 여보, 토비는 어쩌지? 어머님한테 잠깐 부탁드릴까?"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토비도 데려가자."


그러고 나서 아빠는 식탁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걸어왔다.

아직 내가 자고 있는지 확인하러 오는 듯 보였다.


곧이어 그는 내 방 문 앞에서 서서히 발소리를 죽이고는 살며시 내 방 문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자는 척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그가 방문의 손잡이를 잡은 순간 황급히 두 눈을 감아 곤히 잠에 든 척을 했다.


그리고 나는 마법과도 같이 정말 잠에 들었다.


.


"토비! 얼른 일어나렴.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비비며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알람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언제 지나갔냐는 듯 벌써 오후 일곱 시를 훌쩍 지나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어디 가는데요?"


"패터슨 아저씨네 갈 거야. 얼른 일어나서 준비하렴, 늦었어."

엄마는 재촉하듯 내게 말했다.


때마침 아빠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셨고 우리는 곧바로 패터슨 아저씨네 집으로 출발했다.


그의 집은 우리 집으로부터 대략 차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곳은 어젯밤 불이 들어왔던 등대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해변가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상당수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또 불이 꺼져있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진짜 그렇네? 거참 진짜 이상하네 이거. 그럼 도대체 어제는 왜 그런 거야?"


아빠와 엄마를 포함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마을에

이상한 사람이 든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과 불안에 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흘렀다.


그곳에는 동네 친구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들은 열한 시가 넘어가자 하나둘씩 잠에 들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슬슬 피곤해 하시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저녁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난 탓인지 피곤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자정이 가까워지자 어른들은 다 같이 입이라도 맞춘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엄마와 아빠 또한 내게 눈짓을 하며 준비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제일 처음으로 토마스의 가족이 문을 나섰고 뒤이어

알렉스, 샐리, 니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패터슨 아저씨네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제일 마지막으로 그의 집을 나왔는데, 그 이유는 패터슨 아저씨와 아빠가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사람들이 다 집을 나갈 때까지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엄마의 곁에 딱 붙어 그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아빠는 아저씨와의 대화를 끝내고 아직은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왔고

패터슨 아저씨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그의 집을 나왔다.


그때, 나는 집에서 들고 온 로봇 장난감을 거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곧바로 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아저씨네 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듯했다.


거실은 깜깜했다.


모든 불이 꺼져있었고 집 안은 온통 암흑뿐이었다.

나는 장난감을 찾다 밟아 부서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실 불 스위치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찬 집 안에서 스위치는 형태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창문 너머로 눈을 찌르는 강렬한 빛 한 줄기가 퍼지듯 들어와 거실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덕분에 장난감은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앉아있던 소파 구석 자리에 비스듬히 박혀있었다.

나는 빛이 사라질까 재빨리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장난감을 낚아챘다.


그러고 나서 나는 텅 빈 거실이 무서워 서둘러 몸을 돌려 집을 나오려던 찰나,

창문 너머로 환한 빛을 내뿜으며 회전하는 등대를 발견했다.


정확히 나를 향해 내뿜어지는 등대의 빛은 나를 한동안 묶어두듯 내 몸을 마비시켰다.



그 빛은 분명 나를 향해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누군가 나를 찾기 위해 패터슨 아저씨네 댁의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향해 환하게 타오르던 등대의 빛은 한순간에 사라지며 그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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