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저 산에 올라가 본 적 있어, 디모네?"
맥도먼드가 내게 물었다.
"음... 딱 한 번. 아주 옛날에 엄마랑."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의 일이었다.
"너는?"
내가 맥도먼드에게 물었다.
"나는 꽤 여러 번 올랐지! 한 스무 번은 올랐을걸?"
그가 말했다.
"스무 번씩이나? 혼자서?"
내가 물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다락방 구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중이었다.
창밖의 날씨는 화창했고 오후 2시를 조금 넘겨 뜨거운 태양이 다락방에 열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몇 번은 아빠랑 오르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서도 오르기도 하고. 우리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오를 거야, 아마."
"힘들지 않아? 정상까지는 꽤 높아 보이던데."
"처음에는 좀 힘들었는데 몇 번 오르다 보니까 괜찮았어.
그리고 저 산 중턱에 진짜 예쁜 초원이 하나 있거든?
그곳을 보기 위해 오르는 것 같아."
"초원? 초원이 있었나."
"응. 꽤 넓은 초원 하나가 있는데, 엄청 좋아, 목장 같기도 하고. 거기 말도 살거든."
나는 엉덩이를 끌어 창틀에 더 가까이 다가가 창밖의 그 산을 바라봤다.
맥도먼드가 말한 그 초원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초록빛으로 풍성히 뒤덮인 높은 산 하나가 보일뿐이었다.
"말이 산다고? 동물?"
내가 말했다.
"그렇다니까! 색깔이 좀 독특한 얼룩말인데 엄청 순한 놈이야. 맨날 풀만 뜯어먹고 있어."
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그 말을 상상해 보았다.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산들바람이 부는 드넓은 초원 위로 갈색 무늬의 얼룩말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뿐, 말의 생김새라든지 크기와 같은 세세한 것들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지금도 아마 오르고 있을걸? 아까 아침에 나가는 걸 봤거든."
"정말? 그럼 저기 어딘가에 지금 계시겠네?"
"그렇겠지. 근데 아빠는 산을 오를 때마다 매번 너무 재미없는 얘기를 하셔서 조금 불편해."
"어떤 얘기를 하시는데?"
창틀 안으로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를 번갈아 응시하다 곧바로 날아갔다.
맥도먼드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을 오를 때 느껴지는 감정과 감각을 잘 기억하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앞으로 삶을 살아갈 때 그 감정과 감각을 끄집어내 기억하래.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이걸 매번 얘기하셔. 너는 알겠어, 디모네? 우린 아직 중학생이라고."
"글쎄. 산을 많이 올라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산을 오를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감각이 있어?"
맥도먼드는 눈알을 굴려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다 무릎을 긁적이며 말했다.
"감정은 뭐, 오르막길을 오를 때 힘들고 지치고 그만 오르고 싶다가도 막상 정상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동시에 벅차오르는 감정 같은 거지."
"감각은?"
"감각? 감각은... 뭐가 있을까. 거칠다? 따갑다? 아무래도 흙이나 돌, 나뭇가지가 바닥이나 주변에 많으니까. 맞다. 근데 이런 건 있는 것 같아. 이게 감각이랑은 상관없는 얘기지만 우리가 항상 같은 코스를 오르거든? 같은 풍경, 같은 경사, 같은 길을 오르는데, 매번 느낌이 달라. 날씨 때문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좀 이상해. 오묘하다고나 할까. 아빠는 자꾸 그게 인생이라는데 뭐 그것까진 아직 잘 모르겠고."
맥도먼드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반쯤 열려있던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아, 몰라 몰라. 복잡해. 나가자, 디모네."
그는 어느새 다락방 계단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말없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를 반복했다.
이내 그는 내게 다그치듯 말했다.
"디모네! 나가자니까? 싫어?"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대답했다.
그는 난간 손잡이를 꽉 쥔 채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야, 나가자. 나도 조금 답답해지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맥도먼드, 혹시 다음 번 산을 오를 때 나도 같이 갈 수 있을까?"
그는 계단을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대답하는 듯했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산? 그럼, 당연하지. 언제든지 환영이야. 아빠도 분명 좋아하실거야."
"고마워, 맥도먼드."
"그날, 아까 말한 초원도 같이 가자. 가끔 아빠가 거기서 요리도 해주시는데, 최고야!"
"그래, 좋아. 먼저 내려가 있어, 짐 챙겨서 내려갈게."
맥도먼드가 내려가고 나는 다락방에 혼자 남아있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아 초원을 떠올려 보았다.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초원은 한적하다.
9월의 가을바람이 서서히 불어와 내 몸을 간지럽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듯 주변을 에워싼다.
나는 신발을 벗어 초원 위를 홀로 걷기 시작한다.
잠시 후, 갈색 무늬의 얼룩말 한 마리가 누군가를 등에 태우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다 이내 서로를 마주한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장발의 한 여자가 얼룩말 위에서 나를 웃으며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어딘가 낯이 익다.
코 끝에 그녀의 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로 그녀의 정체를 확신한다.
그녀가 확실하다.
"디모네! 짐 다 챙겼어? 얼른 내려와서 이거 먹어. 엄마가 토스트 해주셨어!"
나는 맥도먼드의 목소리에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다락방은 조용했다.
창문은 여전히 닫혀있었고 창밖 너머 그 산은 어떠한 초원의 흔적도 남겨놓지 않았다.
하지만 느껴졌다.
아니, 그 느낌은 분명했다.
나 홀로 남은 다락방에서 온기처럼 나를 감싸던 그녀의 잔상이 남긴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