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을 너무 오랫동안 내팽개치고 있었나 보다.'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 전, 엄마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눈물을 보인 순간 당황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줄 뿐이었다.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휴가차 놀러 간 인천의 한 호텔 카페에서 기록한 내용이다.
엄마는 항상 밝고 멋있고 당찬 사람인 줄 알았다.
강렬한 레드를 좋아하고, 화려한 패션을 즐겨 입고,
웃음도 많으며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아 활력이 넘치고,
환갑을 앞두고도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히 쌓아나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워킹맘.
나에게 '엄마'란 존재의 정의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삶 이면에 공존하는 슬픔의 크기가 어떠했길래
강해 보이기만 했던 엄마는 내 앞에서 울음을 보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몇 가지 강렬한 사건들이 떠올랐다.
누구든 각자 인생에 잊고 싶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과 슬픔은 있지 아니한가.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온 일상의 붕괴이거나
가깝고 소중했던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거나
추악하고 초라한 현실 앞에서 마주한 삶의 부조리함이거나
혹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부단히 멀어져만 가는 그 '의미' 때문이거나
고통의 형태는 다양할 것이고 슬픔의 깊이는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그녀는 마시던 커피잔에 커피를 전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너네 때문에 살아져."
그 한마디에, 이 한 문장에 나는 그녀의 삶이 지닌 숭고함을 느끼고 말았다.
그녀의 삶이 지닌 숭고함을.
그러고 나서 나는 그녀가 앉아있다 떠난 빈자리를 잠시 동안 응시했다.
비스듬히 반쯤 나와있는 라탄 의자와 새빨간 립스틱이 묻어있는 빈 커피잔.
화려한 꽃무늬가 테두리에 새겨진 유럽풍의 접시와 은색 포크와 나이프.
먹다 남은 크루아상과 그 주변을 채운 널브러진 빵 부스러기.
그리고
싸구려 큐빅이 여럿 박힌 그녀의 핸드폰 케이스.
나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카페 입구 앞에서 가방 속을 뒤적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때, 카페의 한 여직원이 문을 나서는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 역시 그녀에게 가벼운 목례와 미소를 전한 뒤 카페를 나왔다.
엄마는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고 안도하는 듯 가방의 지퍼를 닫았고
나는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저녁으로 매콤한 배추김치에 시원한 칼국수 한 그릇 어때?"
그녀는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빨리 가자. 느끼해 죽는 줄 알았어."
한결 가벼워진듯한 엄마의 어깨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한 쌍의 날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