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나는 혼돈의 중심에서 너를 발견했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와 하얀색 줄무늬 티셔츠
주름 하나 없이 곧게 펴진 데님 팬츠
왼손에 찬 검은 가죽 시계
그리고
잔상처럼 남아있는 불가리 쁘띠마망의 향기
점심을 사러 나오는 길이었다.
배고픔이 무색해질 정도로 단숨에 나는 너에게 모든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하지만 너는 이내 해일처럼 밀려드는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생각했다.
왜 그 순간 나는 너를 부르지 못했을까.
왜 그 순간 나는 너를 보고도 망설였을까.
왜 그 순간 나는 너를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혼돈을 비집고 들어가 네가 서있던 그 중심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뒤섞인 목소리가 나를 짓누르듯 조여왔다.
나는 그렇게 10분을 넘게 서 있었다.
"오랜만이야, 후안."
너의 목소리였다.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너는 나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온몸에 힘이 풀렸고 나는 무질서한 광장의 중심에서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따뜻하네, 네 품은."
상처에 짓밟혀 시들어가던 나의 영혼은 너의 그 한마디에 더더욱 무너져내렸다.
참아왔던 모든 눈물을 쏟아내며 나는 계속해서 침묵했다.
너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너의 손길이 느껴졌다.
너의 머릿결이 느껴졌다.
너의 숨결과 심장소리와 손가락 마디마디
하나의 움직임이 전부 느껴졌다.
마치 네가 다시 살아돌아온 것처럼
마치 너의 숨결에 다시 생명이 깃든 것처럼
마치 너의 죽음이 꿈이었던 것처럼
나는 또다시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왜 그 순간 나는 너에게로 달려가지 못했을까.
왜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 싸우지 못했을까.
왜 그 순간 나는 너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까.
"덕분에 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할 뿐이었어.
후안, 한 번만 돌아봐줄 수 있을까?"
너는 내게 물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너는 생각에 뒤엉켜버린 나의 정신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헝클어진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수많은 인파가 우리를 중심에 둔 채 자기장처럼 요동쳤다.
너는 개의치 않았고 나의 두 손을 잡으며 내게 말했다.
"사랑해, 후안."
그리고 너는 나를 돌려세워 우리가 정면으로 마주한 그 순간,
내게 입을 맞추었다.
.
.
.
그때, 침대맡 알람시계가 아침을 알리듯 요란한 경적을 울려댔다.
알람시계를 끄고 나니 방 안은 조용했다.
(오히려 고요에 가까웠다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창문 틈 사이로 지저귀며 날아가는 참새의 날갯짓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홀로 누워있었다.
꿈의 잔상은 여전히 지속됐다.
새하얀 천장이 보였고 약간의 햇살과 그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들이 보였다.
나는 짧게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어젯밤 적지 못한 일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노트를 펴니 이틀 전 적었던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2024년 7월 22일 월요일
날씨 흐림
너는 사라졌고 나는 살아있다.
너는 떠났지만 나는 머무른다.
너는 영원하고 나는 존재한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너를 대신하여 숨을 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너를 대신하여 눈을 뜰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너를 대신하여 삶을 살 것이다.
.
나는 펜을 들어 날짜를 적었다.
2024년 7월 23일 화요일
날씨 맑음
다행히 어제의 날씨는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