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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Dec 04. 2022

안 좋은 기억이 담긴 물건은 빨리 버리세요.

상처가 깊으면. 살아 있는 악몽이 되는 것 같다.

날씨가 추워졌다. 지난 겨울 있었던 말도 안 되는 '퇴사 급발진'과 내가 경험한 그 일이 '사내 폭력'인 것 같은 인간적 더러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모멸감과 관련된 기억들이 꽤 가끔, 그리고 많이 생각 났다. 사람마다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극심한 변비와 불면증, 불안 심리, 잔잔한 분노, 우울감, 식욕 감퇴 여기까지면, ... 참 좋으련만 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타인과의 교류와 공감이 어려워 진다. 이런 증상들이 짙어지면, 1차적으로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고, 2차적으로 일생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서운 일)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하기 싫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문제는 조직내에서 나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또 다시 모호해 졌다. 직전 회사에서 경험했던, 내가 격멸했던 그 상황이 내 눈 앞에 다시 펼쳐 졌다. 


지난 겨울, 그 난리를 난 어떻게 감당해 냈던 걸까? 누군가, 내게 "상처가 깊으면. 흉터로 남는다고 했지만, ..." 그 추운 겨울에 나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그 사건은 흉터가 아니라 살아있는 악몽으로 남은 것 같다. 날씨가 추워지면, 고개를 드는 그날의 사건들... 


작년 겨울과 비슷한 나의 상황, 비슷한게 아닌데, ... 끝 없이 나의 신경세포들은 비슷한 상황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부대표가 나에게 소리, 소리 질렀던 그날. 내가 입고 있었던 겨울 코트. 버렸어야 했는데, 회사 사내 행사 진행을 위해 출근하던 아침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날 내가 입었던 겨울 코트를 입고 나갔다. 버렸어야 했는데..... 


내가 하기 싫었던 일, 사내 행사 준비와 진행, 또 다시 나의 업무 범위를 누군가 휘정거리는 것 같은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내는 찹찹함은 곧이어 숨길 수 없는 우울감을 만들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그랬던 것 처럼...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일주일 만에 2kg이 빠져 나갔고, 심지어 손가락 사이의 살 마져 빠져 앙상했던 겨울이었는데..... 출근하는 지하철.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일상 속에서 계속 그날의 악몽이 생각 나고 또 다시 연이어 생각 났다. 


그 일은 끝난 일인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함께 일하는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앉지 않는 구석진 자리를 예약해서 앉았다. 노트북과 휴대용 키보드, 마우스 등을 셋팅하던 찰나, "들켜 버렸다." 세상 슬픔과 우울에 빠진, 비통한 고통에 빠진 내 얼굴을 임원님께 들켜 버리고 말았다. 눈치 빠른 임원님은 쨉사게 나에게 다가와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 라고 물었다. 


걱정과 나에 대한 작은 관심을 담은 그 마음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뿌리쳤다. 애써 태연한 척 해본다. 그런데, 너무 큰걸 들켜 버린 것 같다. 이대로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나만 있는 방 한켠 어느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사내 행사 내내... 팀장들이 돌아가면서 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임원님이 아침에 목격한 나의 짙은 우울을 팀장들에게 말한 모양이다. 사내 행사에 참여한 고위 경영진과 사외 손님들을 챙기고 인사를 나누면서 틈틈히 임원님은 내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 


히터의 따뜻한 바람이 행사장내를 훈훈하게 데우고 있었지만, 코트와 목도리를 내려 놓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정상이 아닌 걸까? 이를 알아챈 임원님이 내 주위를 돌다가 "샤샤, 덥지 않니?"라고 물었다. 나는 덥지 않았다. ... 왜 안 덥지? 임원님의 물음에 아주 조그맣게 "안 더워요!"라고 말했다. 뭔가.. 몸이 이상하다. 심지어 코트 안에는 내의, 폴라 목티, 조끼까지 겹겹이 입고 있었는데... 전혀 덥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낄 그 무렵,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사내 행사를 진행하느라 급하게 팀장님들이 바리 바리 사온 깁밥도 다 먹지 못했다. 난 달랑 3개 먹고, ... 식욕이 뚝 떨어졌다.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큰 일이다. 작년 지독한 겨울과 똑같이 몸이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 먹는다.는 그 일상적 행위가 매일이 너무 고통스럽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딱! 그렇게 몸이 반응하도록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후 5시. 예정 됐던 사내 행사가 끝났다. 잽사게 짐을 챙겨,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서둘러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겨울이었다. 너무 추운 겨울이다.작년에는 이렇게 춥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난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 냈던 걸까? 너무나 큰 고통이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만큼 괴롭고 힘들어서 추위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을까? 


집으로 돌아가,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어제 마트에서 사온 연어 1팩을 꺼내어, 억지로 구워 접시에 담았다. 딱 3점 먹고, 다시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침대 밖을 나와 발은 내딛는 순간 위험에 처할 것 같은 기분, 불길한 예감이 다시 시작 됐다. 


다음 날 출근, 업무로 점심을 건너 뛰게 됐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 먹고 싶지 않았다. 업무를 핑계삼아 점심을 먹지 않고, 일을 했다. 업무를 마치고 오후 3시가 다 되어, 회사 밖 카페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베어 불었다. 딱 세 입... 딱히 먹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밀려 왔다. 식욕 감퇴가 맞다. ... 작년 그 날과 비슷한 증상들. 그날의 상처를 내 마음은 정리하지도 못했고, 그대로 삼켰다. 삼켜서 일까... 몸은 그대로 반응한다. 무섭다. 


토요일 내내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주에 꼭 해야겠다. 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는데... 작년에 그 험악한 기억이 묻은 코트를 버리고, 새로운 코트와 겨울 옷감들을 장만하는 것... 그리곤, 나는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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