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짜리 인생>

2019.8.17

by 바다

두가지 풍경이 있다. 탄탄한 몸에 비싸보이는 시계를 차고 소주와 와인을 사가는 사람. 카드는 삼성VIP카드. 소득이 부족해서 신용카드 신청도 안되는 나에게 앞에 있는 이 사람의 존재가 꿈같다. 참 폼나는 삶이다.

다음 문이 열리고 다헤져서 실밥이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한낮에 30도가 넘는 한여름에 긴팔에 긴바지를 입으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600원짜리 얼음컵을 하나 사고 카드를 내민다. 한국에 1천만개는 있을 평범하게 그지 없는 신한카드. 그 와중에 나한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카드로 결제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봉투20원도 카드를 긁겠다고 박박 우기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오히려 괜히 내가 미안하다. 아저씨는 너무 더워서 가게에서 잠시 땀좀 식히겠다고 말하고 의자에 앉는다. 10분이나 되었을까 아저씨는 나에게 '고마워요'하고 말하고 가게를 떠난다. 괜히 코끝이 찡하다.

첫번째이야기는 '구찌아저씨'라고 불리는 사람의 이야기고, 두번째이야기는 건물 오피스텔 경비노동자 아저씨의 이야기다. 우리 가게에 자주오시는 경비노동자 아저씨는 두명이다. 한 명은 앞서 사연에 나오는 아저씨고, 다른 아저씨는 항상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다. 태풍이 오는 날에는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항상 고생이 많으시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낸다.

아무리 자주오는 손님이라도 정이 쌓이지 않는다. 얼른 처리하고 내보내야 할 사람에 불과하니까. 경비노동자 아저씨들과는 이상하게 정이 많이 들었다. 서로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그 분들의 환한인상이 좋아서 인지는 모르겠다. 아저씨들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입고리가 올라간다.

노동자 아저씨들과 주고 받는 웃음도 이번달이 마지막이다. 오피스텔 관리소에서 경비노동자들을 일괄 해고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경비소가 있는 건물에 살아본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고급 오피스텔들은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서 노동자들, 정확하게 말하면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경비업체를 3개월마다 바꾼다고 한다. 아마 추측컨데 3개월 수습기간을 이용해서 최저임금도 안주고 부려먹다가 수습이 끝날즈음에 업체변경으로 일괄 해고하는 방법을 쓰는 듯하다.

경비노동자들의 해고 사유는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관리비 부담을 이유로 경비실에서는 에어컨도 없고, 한여름에도 다뜯어진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근무한다. 수십억짜리 자산가들이 고작 한달에 3만원 남짓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자신의 건물에 함께 살아가는 노동자의 해고에 동의하고있다.

이들이 노동자의 해고에 희열을 느끼는 악마면 차라리 욕이라도 시원하게 하겠지만, 거주민들은 악마가 아니다. 항상 가게에서 100원 200원 때문에 쓰레기 봉투를 사는 일에 망설이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돈을 아끼기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 노동자의 해고와 100원짜리 쓰레기봉투의 가치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았을 뿐이다.

늘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노동자들의 해고를 듣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업체변경과 노동자해고는 예정되었고, 노동자들도 다른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한다. 고위직 공무원, 법률가, 노무사들이 가득한 이 오피스텔과 법정다툼을 하겠다는 생각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이제 곧 또 다른 3개월짜리 시한부 인생으로 돌아갈 경비노동자 아저씨들에게 따뜻한 인사라도 해줘야할까. 운동권이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내 생계가 걱정되서, 정작 매주 만나는 3개월짜리 인생들의 몰락을 지켜보는 일이 부끄럽다.

3개월마다 자신들의 존재가 비싸다며 해고당하는 저 아저씨들이 스스로의 탓을 하지 않았으면. 비록 힘이 없어서 이곳을 떠나지만, 자신들을 쓰레기봉투 취급하는 인간들이 문제라고 믿었으면.


<3개월짜리 인생> 2019.8.1


keyword
이전 16화주말노동과 노동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