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읽고 쓴 며칠의 영화 기록들 11
2020.03.09.
내 경우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리 없어! 하고 생각하게 되는 시기 중 하나가 월이 바뀌고 나서 한 주 정도 지났을 때의 월요일이다. 2020년이 벌써 두 달이 지나고도 일주일이 더 지났다는 말인가.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영화계의 연례행사들을 거치고 나면 금세 계절이 바뀐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번 주에는 극장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20.03.10.
많은 영화들의 개봉이 미루어지고 있다. 한두 달 정도 연기하는 영화도 있고 아예 반년이나 늦추는 영화도 있다. 물론 이것들은 상업 영화다. 아카데미 시상식 정도를 제외하면 계절적 영향을 그리 많이 받지 않는 다양성영화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사실상 대작들이 비켜간 자리에 남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개봉을 하는 것인데, '코로나 19'가 가져온 파장이 극장에 얼마나 오래도록 영향을 안길 것인지에 대해 염려한다.
2020.03.11.
글 한 편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먹고 혹은 작정하고 쓰면 특정 영화 한 편에 관한 내 생각과 감정을 A4 두 페이지 이내로 쓰는 데 빠르면 30분이면 가능하다. 물론 수정과 퇴고를 감안하면 좀 더 시간이 는다. 하지만 일단은 일정한 내용과 분량의 글을 빨리 쓰는 것이 직장생활 중 훈련이 되어왔다. 감사한 일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영화적인' 일들을 제대로 감당하고 소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0.03.12.
누군가 들으면 '이 시국에?'라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주말 중 부산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1인 가구에 거의 최적화된 삶을 살다 보니 가족과의 일상이 낯설고도 소중해진 걸 부정할 수 없다. 영주에 잠시 들렀다 부산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꽤 긴 여정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휴식일 것이다.
2020.03.13.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상을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인즉슨, 평일의 일상도 분명 내 삶의 일부이며 그것 역시 주말의 것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는 뜻이다. 굳이 그것을 몸소 실천하려는 의지만은 아니지만 내 경우 평일과 주말의 수면 시간이 거의 다르지 않다. 자정은 내 기준에서 조금 늦은 저녁일 뿐이고 오전 2시 정도는 되어야 '슬슬 잘 시간이군!" 하고 여길 정도의 리듬감...? 물론 평소보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거나 다음날 할 일들의 목록을 떠올리는 순간 그날의 수면 시간은 대폭 줄어든다. 그래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면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아니어도 일단은 눈이 익숙하게 뜨인다. 이 달라진 생활에 몸과 마음이 그럭저럭 적응 중이라는 표시일 테다.
2020.03.14.
과부산 형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영화 <기생충>을 봤다. 나는 이미 세 번째로 보는 것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모두 처음. IPTV로 편하게 구매해서 보는 영화에는 극장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장치(?)들이 있었는데, 가령 '동익(이선균) 등장'과 같이 주요 인물이 처음 등장한다거나 할 때 상단에 자막처럼 정보가 추가로 제시되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극장에서의 영화와 극장이 아닌 곳에서의 영화가 주는 차이에 대해 생각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이내 가족의 일상으로 돌아가 술잔과 안주와 젓가락들의 부딪힘과 목소리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함께인 사람들의 정서'를 생각했다.
2020.03.15.
서울로 돌아온 일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에서는 '연예인 마스크'라며 약국에서 파는 것과 별 다르지 않아 보이는 마스크를 '한 장에 이천 원, 여섯 장에 만 원'에 파는 상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드문 승객들 속에서 도착한 집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을 보고 글을 좀 끼적거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추세 속에서 일상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쩌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5월 구독자 모집: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