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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4. 2016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

대학생활의 후반부를 매듭짓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으며, 당신과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 3년을 살아온 곳 대신에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아주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아 같은 역세권에 머무르지만, 삶의 공간을 옮긴다는 것에는 단지 위치만 이동하는 게 아니라 삶이 이동하는, 또 삶이 시작되는 의미가 있다. 기억을 쌓고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안락함을 느끼는 곳. 미친 듯한 서울의 팍팍한 집값에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이곳에서의 3년과는 또 다른,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곳. 집 옮기는 것에도 준비하고 신경 써야할 것들이 산더미다. 이것도 자립의 과정이다. 지금 퇴근해 귀가하는 곳이 다음 주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채워질 것이라 상기하니 미처 실감하기엔 이르다.



이번 주가 지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풍경을 며칠째 바라본다. 삶에는 참으로 유한한 것들 투성이다. 처음 이곳에 이사 올 때에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사는 이렇게 찾아오고, 밤길에 마주하는 모습들 하나하나가 조금은 달리 보인다. 지하철역의 같은 출구로 나오면 눈에 띄는 비슷한 풍경들, 같은 길을 달리는 다른 차들과 같은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 익숙한 신호등과 간판, 도로 신호가 바뀌는 시점과 간판의 빛이 밝아지는 시간, 혹은 이 공간만이 주는 분위기 같은 것들. 그리고 자정까지 열어서 자주 드나들며 아지트 삼았던 집 앞 카페와,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심야영화를 자주 봤던 극장. 매일 조금씩 다르고 간혹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달마다 한 번쯤은 저 자리에 눈에 띄곤 했던 달.



한동안은 고등학교 이후 떠나왔던 터전만큼이나 세세한 것들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동네에 익숙해지고, 생을 돌아보면 이곳에 잠시 살았다는 것 정도를 상기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보다는 어떤 느낌이 남았는지가 뚜렷하지 않을까. 회사의 사무실도 머지 않은 시기에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지나온 일정들을 돌아보고는 '내가 여기 그렇게 오래 있었나?' 싶은 생각도 해본다.



여기가 아니어도 나는 살 수 있다. 그곳이 아니어도 출근한다. 다만 옮겨가는 것들, 거쳐가는 곳들이 지금의 지금을, 언젠가의 지금과는 새삼 같지 않다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돌아보면 모든 물리적인 것들은 조금씩 낡거나 늙고, 옮겨가며 닳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삶에서 겪는 많은 것들, 혹은 대부분의 것들이 가만하지 않기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시선을 둘 일이 생긴다. 또 그 속성을 알기에 오래인 것을 더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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