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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09. 2016

우리는 풍경으로 남지 않고

그해 부산

작년에 당신과 손을 잡고 걸었던 광안리에서 수영만에 이르는 산책로. 오늘은 택시를 타고 그 길을 지나쳤다. 바람이 얼마나 불었는지, 바다 냄새는 어땠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까지 생생하다. 어디쯤엔 우리의 발이 닿은 곳이 보였고, 문득 풍경처럼 당신이 스쳤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른 시간을 걷고 있다. 헤어짐을 앞둔 두 사람이 얼굴을 보고 손을 흔들며 안녕의 말을 전할 때 그 찰나의 머리와 마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이 끝이라는 것을 알 때 그 끝은 곧 앞으로도 끝임을 의미할지, 혹은 일시적인 멈춤과 휴식을 의미할지, 어느 쪽이든 이후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우리는 과연 알 수 있을까. 당신과의 안녕을 고한지 벌써 이만큼 시간이 지나갔다. 우리에게는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겠다. 그저 시간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것으로 우리가 함께 보낸 많은 것들이 어느덧 과거 혹은 과거완료형이 되었거나 되려 하는 중이다. 당신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다면 무슨 생각일까. 0에서 100까지의 내가 있었다면, 당신에게 나는 어디쯤이 되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계속 여기에 있고, 당신의 삶은 나에게 들어왔다가 이제는 자리를 비웠다. 당신으로 인하여 가능해졌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당신이 나를 바꿔놓은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나는 당신을 애써 잊으려 하지 않으며, 미워하지도 않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지 못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자책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투지 않았고, 그날 서로의 관계가 흘러 도달한 그곳에 동의했다. 일시적으로든, 혹은 영원히든, 두 사람의 삶에 분명히 예정된, 또 다른 길로 인도해주는 방향타였을 것이다. 아픔마저 당신을 살며 내가 기꺼이 겪을 만한 경험이었다. 서로를 계산없이 아낌없이 사랑하고 서로에게 사랑받고, 내일을 설레게 하는 행복한 기억들을 가득하게 전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스물아홉의 이 계절 이 순간 내 지난 궤적에 당신이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진정 행복이자 행운이었다는 것, 지금도 기억한다. 또 기억해둘 것이다. 당신의 이름과 그로인해 수반되었던 모든 것. 서로를 사랑한 만큼, 사랑했던 만큼, 잃지 말자. 우리가 거기 있었다는 것. 당신은 내 몸과 마음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안녕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안녕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풍경으로 남지 않고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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