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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9. 2018

중고거래를 하다 별안간 든 생각

타인의 기척에 대하여

정품 등록 사은품으로 받았는데 쓰지 않는 블루투스 스피커, 소중히 썼지만 새 물건을 찾던 중 판매하게 된 태블릿 PC, 호기롭게 샀지만 스마트폰에 밀려 자리를 잃게 된 디지털카메라. 그런 것들을 '중고나라'를 통해 종종 팔았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 그 특성상 눈으로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주로 지하철역 출구 등으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한다. 이런 걸 처음 할 땐 신기하기도 했으나 점차 납득하게 된 점은, 지금껏 단 한 번을 제외하곤 상대가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이고,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다양했더라는 점이다.

사실상 다시 마주할 일 없을지 모르는, 모바일로 송금하지 않는 한 이름조차 모를 이들이지만 사람의 비언어라는 건 꽤 많은 역할을 한다. 저마다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용케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 말이다. 그쯤 되면 아마도 이마와 등짝에 그리 쓰여 있는 것이다. '중고 거래하러 나온 사람 바로 접니다', 라든가 '가방 속에 팔 물건 있습니다' 같은 거다. 굳이 "남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발목 보이는 진, 밝은 갈색 클러치백" 따위로 인상착의를 알려줄 필요도 없이, 통화를 해서 서로 위치를 재확인할 필요도 없이. 사람을 알아보는 건, 가능한 일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거래라는 목적으로 일시적 대면을 한 둘 사이에 유대감 같은 게 형성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단지 수단으로서 형성된 단명의 것이라서 그렇다. 다만 사람을 대할 때는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과연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그에 맞는 급부를 얻기 위해 만나기로 한 그 사람이 맞는가.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형성된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 관계가 목적의 달성 정도에 따라 주도되고 이끌리기 때문이다. 수십 번은 거쳐본 중고거래 이야길 여기까지 적은 건 상대가 그간 보기 쉽지 않았던 류의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한 번만 볼 사람이라고 하여 그 만남을 가볍게만은 여기지 않는 일종의 선함 같은 것이 전해졌다. 셀 수도 없는 관계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마무리를 겪어왔다. 타인의 마음을 내 것처럼 대하듯 들여다보는 건 언제나 어려웠고, 대부분 불가능해서 실패했다.

사람의 작은 기척 하나에도 나는 그게 무엇이었을까, 지나간 자리에 멈춰 뒤돌아보곤 했다. 스치는 행동 하나하나는 결국 쌓여 자신을 대우받고 싶은 대로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니까. 그러다 기척이란 게 단지 거기까지였다는 게 밝혀져도 나는 거기까지의 과정에 애써 의미를 부여해보곤 했다. 그런 날이 있다. 종일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이라곤 "콜드브루 그란데 사이즈 한 잔 주세요", "고맙습니다" 같은 말뿐인 날. 영화나 책 속 타인의 언어에만 골몰하던 그런 하루에 누군가의 기척이 오는 날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대체로, 예의 그 마음이 된다. 그게 뭐여도 좋으니 그 바람을 가벼이 흘려버리지만은 않아야겠다고. 세상은 믿지 않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끝내 믿으려 해보는 것이다.


좋은 주인을 만났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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