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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3. 2018

속죄될 수 없는 사랑의 지난 흔적

이언 매큐언 소설 [체실 비치에서]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5장)

“그들은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 그들은 이제 막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조지 왕조풍 호텔 이층 룸의 아담한 거실에 있었다.” (1장)


전자책으로 읽은 소설 [체실 비치에서]


신혼부부의 첫날 저녁이 소설 『체실 비치에서』의 시작이며, 마지막은 호텔 밖에서의 어떤 장면이다. 1장의 두 사람은 미소를 띠며 함께 식사하지만 둘 사이에는 내내 긴장과 불안이 감돈다. 그는 아내와의 성관계를 어떻게 진전할지 속으로 계산 중이며 그녀는 그것이 첫날밤의 일반적 순서임은 알지만 불편함과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한다. 2장부터 4장까지는 시간적 순서와 흐름이 수시로 전환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순간, 저녁식사 후 침실에서의 일들, 약혼 이전 서로의 가족들과 가까워지던 시기 등을 오간다. 마침내 5장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체실 비치에서’ 일어나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문장이 파헤치는 심리는 가령 ‘사랑하지만 절망하는 것’과 같은, 양면의 연속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한 사람은 내내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사랑보다 ‘사랑의 행위’ 자체에서 자아를 입증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와 에드워드의 문제는 묵직한 들보가 나지막이 가로지르고 돌바닥이 깔린 그 소리 울리는 홀에서 만난 최초의 그 몇 초에, 그들이 처음으로 교환한 그 시선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2장)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작품 내 서술의 대부분은 두 사람을 ‘그’와 ‘그녀’로 칭하지만, 이렇게 종종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플로렌스. 이것을 지나간 이야기를 관찰하며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화 하려는 ‘에드워드’의 속죄의 시도라고 해도 될까. ‘그’와 ‘그녀’로 회피하지 않고 이름으로써 과거를 더욱 냉철하게 해부하는 것이다. ‘플로렌스’의 내면 묘사가 ‘에드워드’가 재구성하거나 지어내기엔 너무 치밀하고 생생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곧 ‘에드워드’의 회고라 해도 좋겠다. 지나간 것은 그때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음이 밝혀진 후에야 한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잘못은 사죄될 수 없고, 상처는 지워질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5장)


‘그’는 단지 자신이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내내 지난한 사랑의 흔적을 들춰야만 했을 것이다. 속죄도 봉합도 망각도 불가능할, 어떤 해변의 모습을. 오직 세월로만 남았을 텅 빈 풍경에 대해 한 시인이 이렇게 표현했다.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허수경, 「공터의 사랑」 에서,『혼자 가는 먼 집』)


영화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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