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완전함과 세계의 불확실성
보고 읽고 쓴 며칠의 영화 기록들 06
2020.02.03.
1월을 생각하니 영화를 못 봐도 너무 못 봤다. 극장에서 본 영화는 단 세 편. <미안해요, 리키>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리고 <남산의 부장들>이 전부다. 물론 넷플릭스 등을 포함하면 몇 편이 더 있겠지. 놓친 개봉작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자니, 2월에도 사정은 비슷할 것 같다. 아카데미가 있는 2월.
2020.02.04.
이미 이 주제에 관해 종종 쓴 적이 있지만, 물론 새 영화를 챙겨보는 횟수나 빈도가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로 줄었다고 해서, 극장에서 한 달에 영화를 열 편 볼 때보다 한 달에 세 편 볼 때 사고와 감상의 폭이 더 좁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기'를 특기 삼아, 한 편의 영화에 관해서도 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한 해를 보내보자고.
2020.02.05.
영화 맠케팅 일을 할 때에도 주로 외화 라인업이 많은 회사 특성상 한국 영화를 담당할 때에만 주로 겪을 수 있는 일들 - 예컨대 포스터 촬영과 같은 - 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 최근 맡고 있는 일 중에는 스튜디오에서의 촬영도 포함되어 있는데, 베테랑 포토그래퍼와 헤어, 메이크업 실장님들의 분주한 움직임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매 순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웠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이상의 실력과 경험을 연마해온 사람들에게서만 전해지는 에너지.
2020.02.06.
(어제에 이어) 예를 들어 피사체가 되는 모델에게서 최상의 컷을 이끌어내기 위해 얼핏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옷깃의 정돈된 정도나 앉은 의자의 높이와 얼굴의 각도 하나까지 세밀하게 조정해 다른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모습. 상대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니즈를 공유하고 상대방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언어들. 하루종일 이어진 이틀간의 외근이 고되고 지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2020.02.07.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라고 누군가 물으면 고심하다 꺼내어두는 몇 가지 대답들.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중요한 이약기가 있는 영화.
관객에게 질문을 주는 영화.
이 세상에 아직 없거나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것에 대해 꿈꾸는 영화.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게 느껴지는 영화.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함과 세계의 불확실성을 믿는 영화.
(그러니까, 불확실성은 곧 복잡성이다. '이 세계는 말이야~' 같이 간단히 모든 것을 규정 짓는 이야기를 나는 별로 좋은 이야기라고 여기지 않는다. 영화가 아닌 것도 마찬가지. "간단히 요약하면"은 많은 경우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2020.02.08.
예정되어 있던 원데이 클래스 일정이 취소되어, 정확히는 참석자 분의 스케줄 변동으로 인해 오늘은 말하자면 '비어있는 하루'가 되었다. 보고 싶은 넷플릭스 드라마가 생겼다. 일단 소재가 돋보이지만 얕게 다루지 않을 것 같고, 단순한 로맨스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2020.02.09.
직접 경험한 일에만 감응할 수 있다면 살아봄의 범위는 꼭 그만큼만인 걸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어쩌면 어떤 경우에는 틀린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가 아닌 것을 상상하거나 그러한 것처럼 느끼는 일이 가져다 주는, 찰나의 허망함과 기나긴 울림을 보면서. 감각하는 것은 그래서 아는 것을 넘기도 한다. (MBC <너를 만났다>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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