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는 법

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11

by 손안의 우주

힘은 순간의 결심으로 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감각인식망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구체적인 선택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힘을 뺄 수 있다.

타블라의 두 개의 북 중, 오른쪽에 있는 북을 '다얀'(Dayan)이라고 한다. 다얀을 연주할 때는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선명하면서 파워풀한 연주를 하려면 이 두 손가락의 유연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 두 손가락을 타격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약지 손가락을 다얀의 검은색 표면(Syhai) 가장자리에 붙인 상태에서 타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떨어지면 안 된다. 인도인들은 약지 손가락을 닻으로 비유한다. 배가 출항할 때 닻이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안정적인 항해가 가능한 것처럼 타블라 연주자도 약지 손가락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안정적인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약지 고정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검지나 중지를 힘을 빼고 타격하려고 하면 약지도 같이 힘이 빠져서 고정되지 못하고 자꾸 떨어진다. 그래서 약지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놓으면 그 경직이 손 전체로 옮겨가기 때문에 검지도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타블라 연주는 이완과 수축이 한 시점에 동시에 존재하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이 딜레마는 타블라와 같은 타악기뿐만 아니라 시타르와 같은 현악기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줄을 눌러 음정을 조절하는 왼손은 섬세한 미세 조정과 지속적인 눌림을 요구하지만 그 손목과 팔 전체는 동시에 부드럽고 유연해야 한다. 반면, 줄을 튕기는 오른손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너무 강하게 튕기면 소리가 거칠어지고 너무 약하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이 두 손의 역할은 철저히 다르지만, 서로의 긴장과 이완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룰 때만 진정한 울림이 만들어진다.

연주 자세도 마찬가지다. 시타르 연주자는 바닥에 앉아 다리를 꼬고, 왼쪽 발바닥 위에 커다란 공명통을 받친다. 요가의 좌법(아사나)과 다름 없는 자세다. 하체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악기를 지탱하는 동시에 허리와 어깨, 팔은 유연하게 풀려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체는 뿌리처럼 고정되고 상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유연해질 때, 연주자는 악기와 함께 하나의 구조물이 된다. 그때 비로소 손은 자유를 얻고 긴 연주 속에서도 호흡과 흐름은 막히지 않는다.


요가의 좌법과 유사한 시타르 연주 자세


이러한 수축과 이완의 공존은 인도의 다양한 예술 수행 전반에서 발견된다. 한 예로, 인도 고전무용인 카탁(Kathak)에서는 이 이중적인 상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발은 빠르게 치고 나가며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고, 곧바로 극적인 정지 속에서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다. 몸을 빠르게 회전하는 동작은 척추와 중심 근육을 바짝 조이게 만들지만 그 주위의 어깨와 팔은 흐르듯 유연해야 한다.​


회전하는 카탁 무용수

카탁 무용수는 몸의 일부 근육을 극도로 긴장시키는 동시에, 다른 부위는 완전히 이완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수축과 이완이 서로 다른 시간에 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간, 하나의 몸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요가의 다양한 자세들도 같은 원리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트리코나아사나(삼각자세)에서는 다리를 단단히 뻗어 지면을 밀어내면서도, 상체와 팔은 부드럽고 여유 있게 뻗어야 한다. 바시스타아사나(측면 플랭크 자세)에서는 코어와 팔에 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숨은 깊고 느리게 쉬어야 한다. 몸의 어떤 부위는 단단히 힘을 주고 또 다른 부위는 힘을 빼야 하는 이완과 수축의 공존을 요구한다.

트리코나아사나(좌), 바시스타아사나(우)


이처럼 인도의 예술과 수행은 서구의 몸에 대한 사고 방식과는 달리 수축과 이완을 따로 훈련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반된 감각을 하나의 움직임 안에 동시에 담아내려 한다. 긴장과 이완, 무게와 가벼움, 속도와 멈춤을 분리하는 대신 그 모순된 감각들을 한 덩어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몸의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통합이며 의식의 확장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훈련 방식은 인간의 감각을 훨씬 더 미세한 수준으로 여는 문이 되며 나아가 명상과 집중의 깊이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 수 있다.

힘을 빼는 건 결국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더 정밀하게 알아차리는 일이다. 타블라를 연습할 때, 나는 종종 팔이나 손에 '힘을 빼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힘을 뺄 줄 몰라서 생기는 막막함과 마주한다. 그럴 때 나는 묻는다. 지금 힘이 들어가 있는 부위가 어딘지 느낄 수 있는가? 그 힘은 타격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습관적으로 들어간 긴장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천천히 감각을 좁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완전히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힘만 걷어내는 것'이 진짜 힘을 빼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감각은 멈춤이 아니라 아주 가볍고 명확한 방향성 속에서만 느껴지는 미세한 움직임이다.

힘을 뺀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어디에 얼마나 조절할지를 정교하게 인식하고 선택하는 고도의 집중 상태다. 타블라도, 시타르도, 카탁도, 요가도 결국 같은 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움켜쥐면 중심이 무너지고 모든 걸 놓아버리면 길을 잃는다. 정말 필요한 건,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를 아는 감각이다. 균형은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이완, 수축과 확장, 그 끝과 끝이 맞닿는 아주 미세한 접점에서 태어난다. 예술이 그것을 가르쳐주듯, 삶도 그렇게 조금씩 연습되는 것이다.


글/정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