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Feb 28. 2022

누구도 봄을 지배할 수 없다

2022년 2월의 독서기록

2022년 2월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뒤숭숭한 2월이었습니다. 국내적으로 대선 기간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인지, 정치 세력 간 경쟁구도가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반목과 갈등이 있겠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을 모두 잘 이겨낼 것이라 믿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무력 충돌도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포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 두 가지 이슈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처럼 대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무늬만 선진국이 아니라 의식까지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 책임감을 느끼며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번 달도 목표에 못 미치는 독서기록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핑계로 자꾸 책을 멀리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다음 달은 계획한 대로 꼭 이룰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원합니다.


독서기록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고 바꿀 수 있다면』·메리 파이퍼(티라미수 더북, 2020)


#연결의글쓰기 #나를알기 #세상과연결하기


임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메리 파이퍼의 글쓰기 수업.


글쓰기와 심리학자 협동이 어떤 시너지를 보일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을 강조한다. 저자에 의하면 글쓰기는 우선 나를 알아가고 표현하는 방법이다.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선제조건이다. 이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과 나 나아가서 세상과 연결하는 글쓰기는 세상을 1밀리미터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헤엄치듯 글쓰기, 행동으로 옮기기 이렇게 3개의 장으로 나누어 글쓰기의 시작, 과정, 구체적인 사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심리학자라는 이력 때문인지 충고나 조언이 아닌 경청과 배려의 어조와 문장들이 따뜻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글쓰기 과정을 저자의 취미인 수영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적절한 비유와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글쓰기를 고민하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많은 글이 등장한다. 이렇게 저자가 다른 책에 썼던 글이나 유명한 저자들의 인용문들은 독자가 책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크게 기여한다.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비봉출판사, 2016)


#진보 #빈곤 #토지소유제 #토지보유세


현대 문명에서 물질적 진보는 끝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 비해 최하층의 빈곤은 자연의 법칙처럼 동반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물질적 진보와 동행하는 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인 헨리 조지는 ‘토지 소유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생산의 3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은 각각 그 대가로 지대, 임금, 이자를 얻는다. 이를 수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생산물 = 지대 + 임금 + 이자

생산물 - 지대 = 임금 + 이자


결국 인구 증가와 기술 개선으로 창출한 부의 대부분이 ‘지대'로 종속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최저선으로 임금과 이자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인 헨리 조지는 모든 조세를 철폐하고 오직 지대만을 조세로 징수하는 개혁을 단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인류문명의 진보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는 자연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미 쇠퇴하고 있으며 비극적인 결말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을 바꿀 유일한 방안임을 강조한다.



『제텔카스텐』·숀케 아렌스(인간희극, 2021)


#두번째뇌 #메모상자 #연결 #글쓰기


독일 빌레펠트 대학의 니콜라스 루만 교수의 평범하지만, 효과적인 메모법 ‘제텔카스텐’의 실행 방법, 효과, 의의를 살펴본다.


루만 교수는 30년 동안 번역서를 제외하고도 58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작성하고 발표했다. 물리적으로도 엄청난 것이지만, 각각의 저작물의 수준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가 연구한 사회학뿐만이 아니라 종교, 교육, 정치에 관련된 저작물들은 대부분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이 엄청난 업적에 관심을 가졌고 그 원천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담담하게 ‘제텔카스텐'을 자신 저술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 책은 이 메모 상자(slip box) 기법을 어떻게 실행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메모 기법이 학습(읽기, 글쓰기, 연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민음사, 2008)


#사랑의본질 #사랑의허망함 #열정과익숙함


인간의 연애 감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삼각관계, 거기에는 사랑도 열정도 그리고 애증도 모두 부질없는 상념일 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마지막 문장부호가 물음표가 아닌 줄임표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소설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인 프랑수아즈 사강도 책을 출판할 때 이점을 강조했다. 소설 속에서는 39세의 커리어 우먼인 폴이 25세의 변호사 시몽에게 받은 초청 메시지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의문문으로 등장한다. 이 편지의 질문을 보고 폴은 처음으로 시몽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저자가 물음표가 아닌 줄임표로 제목을 선정한 이유는 시몽의 질문보다 그 질문을 받은 폴의 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자기 생각을 제목 속에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결말을 허망하게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 간에 삼각관계로 갈등을 빚는 상황은 매우 극단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것 같지만 의외로 모든 인물은 덤덤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상황을 맞이한다. 사랑이란 것이 감정의 한 종류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와 감각적인 문장이다. 1959년 발표했으므로 60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이다. 그러한 시간의 격차는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문체와 서사 구조를 가졌다. 책의 첫 문장에서 결말을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독자를 사로잡는 천재적인 문장들의 향연은 모든 작가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연애와 사랑을 할 때 남녀 간의 솔직한 감정선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찰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사계절 출판사, 2021)


#사이보그 #과학기술 #장애인


과학 기술의 발전이 소수인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믿음은 과연 믿을만한 사실인가? 오히려 장애인들을 과학 발달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판단이 현실에 더욱더 가깝지 않을까? 이 질문은 단지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장애자 이거나 그의 가족이 아닌 이상 우리가 장애인에 관해 생각해 볼 시간은 거의 없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뿐 아니라 과학 기술, 이를 맹신하는 사회 그리고 장애가 맺는 복잡한 관계를 심도 있게 고찰한다. 저자인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작가는 책에서 과학 기술의 미래를 모든 장애가 극복될 것처럼 언급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정작 현실에서 장애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당사자와 주변인)의 진짜 고민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묻히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책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건강한 미래는 개인의 자립이 아닌 ‘연립’임을 강조한다.



『나를 보내지 마』·가즈오 이시구로(민음사, 2021)


#인간성 #성장 #자아


SF와 성장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인간과 문명의 갈등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작품


이 책의 원제는 주지 브리지워터의 노래 ‘Never Let Me Go’를 차용했다. 저자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책의 제목을 ‘내 곁에 있어 줘'로 결정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이 소설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두 인물의 대비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날카롭게 가로지른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두렵지만,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평범한 인간은 인간처럼 행동하는 인간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부한 이해심을 진지한 공감으로 착각한 인간은 경악스럽게도 눈물까지 흘린다.


절대 급박하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을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아마도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변화를 절대 인간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우리는 감정도 미분과 적분을 통해 수치화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절대 그럴 수 없지만 그렇지 않겠냐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등장인물 간의 대화의 뉘앙스와 배경 묘사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절대 쉬울 일이 아니며 저자가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 읽고 나면 SF 소설인지, 성장 소설인지, 연애 소설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를 성찰하게 된다. 내가 정말 인간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사유하게 된다. 겨울밤 흔하지 않은 독서 경험을 찾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알렉사드르 솔제니친(민음사, 1998)


#수용소 # #이념


주인공은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비극이다. 평범한 개인이 집권 세력의 허망한 이념 경쟁에 내몰리면 수용소 생활도 행복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러한 불합리한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지 저자인 솔제니친은 묵직하게 묻고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후 슈호프로 통일) 소련을 반역했다는 명목으로 수용소에 들어왔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역한 적도, 죄를 지은 적도 없다. 스탈린이 집권하던 소련은 슈호프처럼 무고한 시민도 손쉽게 죄인이 되는 야만의 시기였다. 같이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죄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두가 평범한 소시민이다. 물론 기득권에 빌붙어 근근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사는 몰염치한 인간도 있다. 무고하든 아첨을 하든 수용소에서 같은 생활을 반복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저자인 알렉사드르 솔제니친은 슈호프의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래서 더 비참하다.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열정적인 어휘로 맹렬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잔잔히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의 부조리는 충분히 전달된다. 저자는 실제로 소련 내 여러 세력에게 압박을 받았으며, 직접 경험한 수용소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구체적인 문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단지 소련의 스탈린 시대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배 계층의 횡포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것은 항상 사회 최약 계층이었다. 따라서 역사의 암흑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인류 역사 전체에게 묻고 있는 것이라도 할 수 있다.


2월의 책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비봉출판사, 2016)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물질적 진보와 동행하는 빈곤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인 헨리 조지는 ‘토지 소유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2월의 문장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진보와 빈곤』중에서

부의 불평등은 전제정이나 독재정보다 민주정에서 더 악랄한 효과를 초래한다. 사회를 이루는 국민들의 정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서 저질렀던 악행과 패악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합리화되고 국민들은 이를 수용하고 부러워하는 지경에 이른다. 문명의 파괴와 쇠퇴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저자의 가치관,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문단이다. 헨리 조지는 냉철한 이성과 과학을 중시했지만 따뜻한 인간애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인간을 사랑했다. 지대를 조세로 징수하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에게 축복과도 같은 세상을 선사할 것이다.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자녀도 지금처럼 물질적 진보가 빈곤과 동행하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냐고. 아니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정하고 개혁된 세상에 살기를 바라냐고.

매거진의 이전글 제대로 꾸준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