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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소M Feb 13. 2024

1914년 9월 19일 뜻밖의 소식


1914년 9월 19일

  사랑하는 내 남편, 오늘 아침 9월 1일에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았어요. 그리고 이내 끔찍한 방문도 받았어요. 당신 편지에 행복해졌던 가슴이 갑자기 끔찍해졌죠. 누가 절 찾아서 제 방으로 온 거예요.

 그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시청으로부터 부싹부인에게 전달사항이 있습니다"라고요. 계단을 내려가자 수비군을 발견했어요. 그는 “부싹 장병에 관한 사항"이라며 편지를 주었어요. 저는 그 봉투를 무척 놀라며 열었어요. 그 편지가 슬픈 전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 어리석음에 대한 심판을 받았죠. 며칠 전, 시청에 당신 상황에 대한 정보 요청을 했단 걸 잊고 있지 뭐예요. 편지는 그에 대한 답이었어요.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건강한 상태로 추정" 제 감정이 회복되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었어요. 좋은 소식이었다니 다행이에요.

 오늘 아침에는 루이즈 시누로 편지가 왔어요. 쟝 시숙이 부상을 당했으며, 여전히 병상에서 고통스러워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러 몽펠리에로 보내졌다고 알려줬어요. 그 이상은 편지를 받지 못해 더는 알지 못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내 자크, 당신이 부탁했던 기다리던 소식의 3분의 2는 해결됐나요? 당신 덕에 내 몸이 멈추지 않고 떨려요. 선한 주님이 내 사랑 당신을 보호하고 지켜주시기를 할 수 있는 한 간청합니다. 신이 내 믿음을 가엾이 여기시길 바랍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 사랑, 이처럼 제 심정을 모두 토로하는 편지를 쓰는 게 조금 걱정되면서 거북하네요. 그러나 이 거북함을 이겨내는 걸 택하겠어요. 평소처럼 당신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대고 말하고 싶은 모든 걸 적을 테니, 읽어주세요. 아! 그토록 좋았던 제 자리를 어떻게 하면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당신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요? 태어난 순간부터 어린 시절을 거쳐, 제게 왔던 그 순간까지 당신을 내 곁에 두지 못한 시간들을 남겨둔 걸 후회해요. 그 시간마저 함께 했어야 했는데요.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당신에게 직접 말하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제 심장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걸 잊어보려 하는 것이 어렵네요. 그건 무척 벅차요.

 곧 다시 봐요. 당신을 사랑하고 끊이지 않는 애정과 열정으로 당신을 안아줍니다.

 우리는 매우 잘 지내요. 우리 아가는 특히요.

당신의 마리-조세프



1914년 9월 21일  

  7일과 8일에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았소. 고향을 떠나는 게 고통이 없지 않았을 거란 걸 아오. 당신이 곧 돌아가길 바라오. 편지는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 것 같소. 왜냐면 나도 당신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쓰고 있소. 나는 잘 지내오. 내 모든 진심을 담아 천 번 당신을 안아주오.

자크






1914-1918 사망자에 대해서


  한 세대를 잃어버렸다고 칭해지는 1차 세계대전은 7천만여 명의 병사가 참전했으며, 그중 1천만여 명은 돌아오지 못했고, 2천 백여만 명은 부상을 당했으며, 부상자 다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REPEPES 연구 프로젝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사망자 비율은 전체 17.14%로 프랑스(16,74%)와 독일(15.09%) 보다 앞선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사상자 숫자 @REPEPES

 프랑스는 인구 대비 타격이 큰 국가로, 20~27세 사이의 프랑스인 27%가 사망했습니다. 특히 농업 분야 노동력 손실이 컸습니다.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4년 동안 남성인구 100명 중 9명이 전쟁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해당지역 농업인구의 65%에 해당되는 수치였습니다. 인구통계가 무너진 상태였기에, 휴전 1년 후, 수복된 알자스와 로렌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는 1914년보다 100만 명이 줄었습니다(39,6만 명->38,6만 명).


 참고로 이에 따른 경제적인 타격도 컸습니다. 물론 전쟁 자금을 위해 발행된 국채 상환과 더불어 복구 비용도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독일이 점령한 지역과 최전선의 55만 채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기에 재건비용도 컸지만, 전쟁으로 늘어난 병자와 전쟁미망인, 고아 등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1921년까지 프랑스 내 총생산량은 전쟁 전인 1913년을 100으로 하면, 75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924년이 되어서야 전쟁 전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물가상승률도 가팔랐습니다. 달러로 비교하면, 전쟁 종료 직후인 1918년 1달러는 5프랑의 가치가 있었으나, 1926년에는 30프랑으로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프랑스가 전쟁에 대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거의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추정합니다.




사망자 명단 디지털 데이터화:

 프랑스 정부는 1차 세계대전 백 주년인 2013년부터 사망자들의 명단을 데이터화해서 민간에도 열람하고 있습니다.

원본-데이터본 @tv5france

https://www.memoiredeshommes.sga.defense.gouv.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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