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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Apr 05. 2019

때로는 모르는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

서로를 알지 못해 털어놓을 수 있었던 하루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엔 용기가 필요하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모임은 내겐 곧 모험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 너무 떨리기 때문이다. 그 모임에서 말까지 해야 한다면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내가 떨고 있는 걸 들키기 때문이다. 혼자 떨리는 건 백 번도 참을 수 있지만 들키는 건 못 참겠다. 그럼에도 내가 용기를 내어 신청하는 것들은 대부분 글쓰기나 책에 관련된 일들이다.


책읽기보단 사기를 좋아하고 완독에 곧잘 실패하는 나는 북토크같은 행사에 가본 적이 없다. 일단은 ‘토크’라는 말이 부담스럽다. 낯선 사람 앞에서 반드시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벌써부터 부끄럽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말만 듣다가 오는 건 내 위주가 아니라서 조금 지루할 것 같다. 책을 읽긴 했지만 다 읽지 못해서 가면 안 될 것 같다.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북토크라는 행사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제는 ‘인생이 거지같은 사건들로 채워진 이유’를 쓴 남연오 작가의 북토크가 있는 날이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인스타에서 북토크가 열린다는 공지를 보자마자 쏜살같이 신청을 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한다는 걱정같은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그건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읽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는 서점을 찾다가 작가님에게 DM을 보냈고, 며칠 후에 남연오라는 발신인의 이름으로 한 등기우편을 받을 수 있었다.


소설 주인공인 연오가 자신의 이야기를 보내온 것 같아서 기분이 오묘했다. 연오의 우울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우울증이 있었던 내게 큰 위로를 주었다. 어쩌면 연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게 아니라 나의 우울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에는 연오가 직장에서 받은 상처들, 가족이란 변명으로 묵인되는 가시같은 말들, 당장 버텨내야 하는 현실같은 것들이 있었다. 읽는 내내 연오가 안쓰럽고 또 너무 고마워서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북토크 가기 전 간단하게(?) 한 끼.

그런 고마운 마음만을 가지고 북토크가 열리는 초판서점에 갔다. 서점은 생각보다 작아서 나도 모르게 지나칠 정도였다. 마치 비가 내렸다 그친 것 같은극도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북토크가 시작됐다. 간단히 소개부터 해보자는 작가님의 제안에 짧은 소개말을 하려던 참에 저는 예전에 우울증이 있었는데요, 하고 운을 떼어버렸다. 우울한 적 있었다는 걸 숨긴 적은 없지만 굳이 말로 한 적도 없다.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더욱.


그런데 왠지 모르는 사람들 앞이니까 솔직해도 될 것 같다. 많이 우울했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이 책을 발견했는데 큰 위로를 받았다고, 정확히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혹은 내가 나약해서 우울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였다고 말했다. 작가님은 세 문장 정도의 소개를 제안했지만 열 문장 정도는 더 말한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알고보니 우울과 가까이 있는 분들이 많았다. 가족의 우울을 함께 겪어내신 분이나 우울과 조울을 겪고 계신 분들. 이렇게 만난 것 또한 서로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 밖 도로를 달리는 트럭 소리는 우렁찼지만 서점 안의 시간은 조용하고도 잔잔히 흘렀다. 각자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나니 숨길 필요가 없는 자리가 되었다. 작가님은 책을 쓰고 보니 우울하다고 써놓은 이유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써놓고 보면 다 그런 것 같다고,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우울할 때 마음은 그 누구보다 심각해서 글로 썼는데 쓰고 나니 왠지 작아지는 그 마음. 고작 이런 걸 가지고 우울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줄까? 그런 마음. 우울이나 조울보다는 공황장애라고 말한다는 이야기. 다들 느끼는 게 비슷하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내가 우울했던 이유에 대해서까지 떠들게 됐다. 이런 얘기를 할 때면 절친한 친구 앞에서도 떨게 된다. 그래서 말을 안 꺼내기도 한다. 예전 생각을 하면 어느정도는 다시 우울해지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상사는 내 업무보다는 빨래나 간식챙겨주기 같은 자기 뒤치다꺼리를 해주길 바랐고, 집에 와서 조금이라도 쉴라 치면 아빠는 목공을 한답시고 나무를 시끄럽게 톱으로 잘라댔고, 헤어진지 한참 된 남자친구는 자기 마음이 동할 때마다 수시로 연락을 해왔다고.


내가 나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싫었고 그게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견뎌내는 방법 밖엔 없는 것 같았다고, 사실은 나는 나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자 슬픔인지 원망인지 모를 감정이 생겼고, 꽤 오랜만에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내가 원한 건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고 싶었고, 그만큼 소중하게 대해주기를 바랐던건데.



나의 이야기말고도, 기분이 좋아지면 다시 얼마나 우울해질지 알기에 불안해진다는 이야기, 우울해하는 어머니를 다그치기만 하다가 문득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 우울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냈더니 새로운 기회가 점점 생겨난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마음을 다스리려고 약을 먹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무서웠다는 이야기. 가르치는 학생이 우울증이었는데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아 어떻게 대해야할 지 너무 어려웠다는 이야기. 우리는 그런 얘기들을 쑥스러운 얼굴로 나누었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다.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은 떨리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몇 번을 만나도 쉽게 나눌 수 없을 법한 주제에 대해 실컷 떠들고, 가져온 책에 싸인을 받고, 서점에서 책을 한 권씩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의 저녁은 어느덧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은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오를 안아주러 간 자리였는데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다 온 기분이었다. 서로를 알지 못해서,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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