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사과 타르트, 그리고 제과 학교에서 배운 것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by 춤추는바람

그 여름 사과 타르트


한 번은 냉장고에서 오랫동안 굴러다니던 사과 두 알에 남아있는 밀가루를 탈탈 털어 넣어 사과 타르트를 구웠다. 마침 집에 있던 재료는 레시피보다 모자란 것 투성이라 윗면에 올리는 사과 장식은 생략하고 남은 반죽을 잘라 간신히 덮어만 주었다. 아이가 자는 사이, 물놀이하는 사이, 짬짬이 나는 시간에 만드느라 정성을 쏟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때까지 만들었던 타르트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게 구워졌다. 설탕을 조금 더 넣은 사과 필링은 딱 원했던 만큼 꾸덕하면서 달큼했고 타르트 지는 유난히 바삭했다. 오랜 시간 구워 색도 예뻤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문적으로 베이킹을 배우며 사과 타르트를 구웠던 때로부터 2년이 넘게 지나 있었다. 그 사이 아이가 태어났고 돌이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내가 등록한 학교는 파리에 있는 유명 제과 학교의 서울 분교로 등록금이 꽤 비쌌다. 제대로 배워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퇴직금의 대부분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수업은 프랑스인 셰프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프랑스에서 역사가 오래된 제과 학교라 업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곳이었다. 수업의 수준은 높았고 실습은 타이트했다. 매 실습 후 평가가 있었고, 기말 시험(필기, 실기) 점수와 매 실습 점수가 합산되어 수료 여부가 결정되었다.


수업은 셰프의 시연을 통한 이론 수업과 개별 실습으로 이루어졌다. 시연 수업에서는 하나라도 놓칠까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임했다. 학창 시절과 달리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질문했고 시연 수업 후 집에 돌아오면 꼬박꼬박 복습과 예습을 했다. 그래도 실습 시간이 다가오면 늘 긴장되었다. 수업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매 과정에서 실습 태도, 청결 상태까지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었다. 시간 내에 완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결과물의 완성도를 위해 매 과정 세심하고 신중하게 작업해야 했다. 실습 시간이 끝나면 탈진 상태가 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런데 힘들다기보단 그 모든 게 즐거웠다. 나를 잊을 정도로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해 열정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이 오랜만이었다.


내가 되찾은 순수한 열정의 기쁨만큼 그런 마음으로 똘똘 뭉친 젊은이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것 또한 즐거웠다. 특히 실습 짝꿍으로 만난 세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스무 살도 안 된 풋풋한 친구였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 중에는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의 열정 또한 남달랐다. "내 꿈은 파티시에!"라고 당차게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무엇이 되고 싶다'라기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내게 "파티시에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은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마음을 간지럽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연차가 쌓이면서 '꿈'은 잊힌 단어가 되어버렸다.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가 놓인 책상, 그 앞에 있는 의자가 차지한 공간만큼이 내 현실을 대변했다. 일 년에 한 번 길게 휴가를 내어 가는 여행이 아니면 가슴이 설렐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내 앞에 한창 꿈꾸며 눈을 빛내는 친구들이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면서 걱정에 젖어들기도 했지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은 누구보다 초롱초롱해지던 눈, 반짝반짝 빛나던 얼굴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린 친구들이 꿈을 키워가는 생활을 함께 하며 응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시 꿈을 꾸게 된 것도 좋았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나를 설레게 한다는 걸.




인생의 스승과 진정한 꿈을 만나다


제과 학교의 두 번째 실습 시간에 만들었던 게 사과 타르트다. 새롭게 학교 생활을 시작한 즈음이라 긴장감이 컸고 시간과 채점이 주는 압박감도 상당했다. 사과 타르트는 윗 면을 장식할 사과를 얇게 슬라이스 하는 게 관건인데 칼질에 서툰 손을 서두르다 날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상처를 잡고 실습 셰프에게 달려갔는데 셰프는 한마디도 꾸짖지 않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셰프는 내가 만든 타르트를 ‘트레비앙!(아주 잘했어!)’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큰 키에 삐쩍 마른 체구의 파비 셰프는 디저트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살이 없는 길쭉한 얼굴에 파란 눈이 유난히 커 보였다. 두 눈에는 다정함이 가득했고 이마를 찡그리며 말하는 표정에선 유머와 호의가 읽혔다. 그가 잘못을 지적할 때면 걱정 어린 말투에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졌고 “빨리! 빨리!”하며 밀어붙일 때조차 즐겁게 달려 나갈 수 있었다.


셰프에게 칭찬받고 싶어 더 열심히 했다. 취미 베이킹 십 년으로 다져진 손은 금세 ‘우등생’이라는 호칭을 가져다주었다. 간혹 실습 결과물이 좋지 않을 때 나보다 더 속상해하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럴수록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렬해졌다. 하지만 칭찬받고 싶어 아등바등할수록 가나슈의 적정 농도를 찾지 못해 허둥거려야 했고,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리쎄(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를 여러 번 반복하느라 케이크 윗면은 울퉁불퉁해졌다. 그럴 때마다 셰프의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건네던 말을 나는 안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하라고,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리 반 수업을 마지막으로 파비 셰프는 도쿄에 있는 학교로 옮겨갔다. 파비 셰프의 전근 소식이 고급반 등록을 미루겠다는 결정의 시초였다. 파비 셰프가 없는 수업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제과 기술자가 아니라는 걸 그즈음 깨닫고 있었다. 마음이 담긴 디저트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지, 디저트를 만드는 직업적 장인이 나의 목표는 아니었다. 투박하고 친근한 디저트를 통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웬만한 베이킹 기술은 섭렵할 수 있게 해 준 중급 과정을 끝으로 배움은 마치기로 했다. 회사 생활에 지쳐 잃어버렸던 열정은 되찾았고 친구들과 셰프를 통해 꿈꾸고 즐기며 일하는 세상의 통로를 찾았다. 이제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디저트에 온기를 더하는 일만 남았다.


파비 셰프와 헤어지던 날, 연습장에 몇 번이고 연습한 글을 정성껏 옮겨 적은 카드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만년필을 선물했다. 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진심을 다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셰프 자신도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설탕 공예를 할 때면 좋아하는 믹스 커피부터 한 잔 타서 그걸 마시며 만들기를 시작한다고 했다. 긴장되는 일일수록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들기보단 유머로 마음에 여유를 만들고 웃음으로 긴장을 털어내는 게 낫다는 걸 그는 몸소 보여줬다.


파비 셰프와의 마지막 수업이 기억난다. 내가 아끼는 디저트 중 하나인 밀푀유 수업이었다. 밀푀유는 ‘천 개의 잎사귀’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과자로 겹겹이 부서지는 파이지 사이에 달콤한 크림을 두껍게 발라 만든다. 얇은 파이지가 층층이 쌓여 있는 모습을 ‘천 개의 잎사귀’에 빗대다니, 그 이름이 시적이라 단번에 좋아하게 된 디저트다. 마지막 수업이면서 의미가 남다른 디저트였는데 평가에서 ‘트레 트레 비앙! 퍼펙트!(아주 아주 잘했어! 완벽해!)’라는 달콤한 칭찬을 받았다. 원래도 특별했던 밀푀유는 파비 셰프와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최고의 칭찬과 함께 잊을 수 없는 디저트가 되었다.




그 여름, 사과 타르트가 맛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임신과 출산으로 한동안 베이킹을 손에서 놓고 있는 사이 무언가에 몰입하는 즐거움, 내가 들인 노력의 결과물이 주는 기쁨을 잊고 있었다. 아이에게만 매달려있던 생활에서 짬짬이 베이킹을 하며 몰입의 즐거움, 노력의 기쁨을 재발견했다. 점수에 연연해 잘하려 지나치게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잘 구워진 타르트는 잊혔던 성취감을 되살아나게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이가 타르트를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그날의 맛을 형성했다.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음식 자체에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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