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캠핑
새벽 5시 즈음일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으로 텐트 주변이 요란하다. 목소리가 각기 다른 다양한 새들이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물고 온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들, 가볍고 고운 피리 소리, 무언가를 쏘는 듯한 소리, 고양이나 아기 울음 같은 소리, 화음을 빚으며 흘러나오는 소리. 개중엔 음치처럼 불협화음을 내는 새도 있다. 고약한 목소리로 멜로디를 벗어나는 이. 그 모든 소리가 어우러져 어찌나 요란한지 세상이 목소리로 가득 찬다.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였는지 모른다.
그런 순간엔 새들의 세상에 당도했다는 착각에 빠진다. 손님으로 머문다는 기분이다. 도시에서는 가질 수 없는 인상이다. 건물과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 굳게 닫힌 창문, 도시 안에서는 새소리를 듣기도 어려웠는데. 들을 수 있는 새의 목소리란 참새와 비둘기, 까치 정도였고. 우리 동네라는 생각 속에는 사람과 사람을 위한 건물만 있었던 것 같다. 주인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새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것 같았다. 여기서는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손님이고 새들이 사는 동네에 우리가 방문한 거라고. 그러니 예의를 지키고 주인을 존중해야겠다고. 침낭 속에 가만히 누워 얌전히 새들의 노래를 듣는다. 인간이야말로 잠시 왔다 가는 사람, 이방인, 낯선 존재일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이 분명해진다. 해가 뜨는 순간을 알아채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재주도, 빛처럼 번지는 고운 목소리도 없으니. 황홀한 기분으로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인다. 손님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그러다 다시 잠으로 빠져든다.
누군가 캠핑의 즐거움이 뭐냐고 묻는다면, 새벽에 듣는 새소리라 할 것이다. 날마다 그 아침을 기다린다. 새들의 세상을 엿듣는 경이로운 아침을. 그러다 운이 좋으면 새가 되어 날개를 파닥이는 꿈을 꿀지 모르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머문다. 그러면서 인간으로 가득했던 세상에 다른 생명체를 초대하는 기쁨을 누린다. 실은 그 반대라는 걸, 이제야 알아채면서. 다른 생명체로 다채로운 지구에 초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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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에서 돌아와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렸다. 세계의 지역별 새를 컬러 도판과 함께 소개하는 책 <새의 노래>(레스 벨레츠키 지금, 데이비드 너니, 마이크 랭먼 그림, 최희빈 옮김, 최창용 감수, 영림카디널)다. 특히 QR코드를 통해 각각 새의 울음소리를 들어볼 수 있어 마음에 쏙 들었다.
캠핑 중 무수히 많은 새의 노래를 들었지만 눈으로 실체를 확인한 새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새들은 나무 가지 사이, 혹은 숲 저편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긴 채 노래했다. 기억할 수 있는 건 새의 외모보단 목소리. QR 코드를 찍으며 궁금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낼 수 있을까.
휘리릭 책을 넘기다, 외모를 기억하는 한 마리 새를 발견했다. 크기는 작은데 파랗게 반짝이는 깃을 가지고 있어 눈을 뗄 수 없었던 새. 어쩜, 이름마저 아름답다. ‘푸른요정굴뚝새’라니.
“요정굴뚝새류는 호주 지역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새로 꼽힌다. 날개에 부분적으로 파란 광택이 있는 이 작은 새는 다양한 서식지에 살며, 종종 탁 트인 지역과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푸른요정굴뚝새는 호주의 남동부 대부분 지역에 퍼져 서식하는데, 풀이 자라는 지역, 산과 숲에 키 작은 나무가 있는 곳을 비롯해 습지, 강가의 덤불숲, 과수원과 정원에도 깃들여 산다. 보통 작은 가족 단위로 모여 공동 서식지를 지킨다. 무리는 덤불숲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고 풀밭 위를 총총 뛰어다니며 먹이로 삼을 작은 곤충, 씨앗, 꽃과 열매를 찾는다. 암컷은 수컷처럼 반짝이는 파란 깃털이 없고, 위로는 암갈색, 아래로는 하얀빛을 띤다."
<새의 노래>
파란빛이 신비롭게 감도는 새 한 마리가 눈앞에서 날개를 파닥인다. 새를 그려보는 사이 어느새 나는 새를 만났던 커다란 나무 아래다. 새에게 다가가려 살금살금 발소리와 숨소리를 죽였던 순간. 우리 낌새를 알아챈 검고 푸른 생명체가 파르르르, 날아올라 안타까웠던 마음으로.
너의 이름은 ‘푸른요정굴뚝새’, 사파이어처럼 빛나던 푸른 깃털에 어울리는 리흔. 다시 네 앞으로 돌아가 “푸른요정굴뚝새야”하고 불러본다면 파르르르 날아가버리는 대신, 내 곁에 머물러 줄 것 같고.
‘그 작은 새’가 이제는 ‘푸른요정굴뚝새’가 되었다. 구체적인 이름을 부르면 관계의 거리가 한 뼘 좁혀진다. 애틋하지만 희미했던 마음이 조금 선명해진다.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새에게 작은 문 하나를 열어 준다. 내 마음에는 이제 인간만 살지 않는다. 푸른요정굴뚝새와 얼룩말 달팽이와 소라 달팽이가, 왈라비와 웜뱃이, 옥토푸스 나무와 초록의 이끼가 산다. 문을 여는 만큼 마음의 지구도 다채로워질 것이다.
지구상의 더 많은 존재와 친구가 되고 싶다. 마음을 열면 보이지 않던 걸 볼 수 있다. 경이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