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발견
아침 등교하는 딸아이를 데려다주는데 비가 내렸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았다. 맞잡은 두 손은 우산 밖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았다. 톡톡, 누군가 등을 두드리듯 작은 물방울들이 손을 노크했다. 딸아이가 말했다.
"빗방울이 좋아!"
"엄마도,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좋아.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
덥고 꿉꿉한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꽤 되었고 더위가 누적되어 지치기 쉬운 여름이지만. 플럼 살구, 자두, 복숭아, 색 고운 여름 과일 모아 성길게 짠 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냉장고엔 초당 옥수수도 들었다. 여름이라 가능한 것들 떠올리면 다시금 든든해지고. 야채칸에는 조선 애호박 두 개가 있는데, 오늘 저녁엔 호박 부침개를 부쳐 볼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비 오는 날이 더 좋아졌다. 비에 젖을 걱정 없고, 우산을 쓰고 다니는 번거로움 없이 비가 내려 한 톤 차분해진 날씨 안에 머물 수 있어서. 맑게 햇빛이 부서지는 날이 바이올린 소리와 닮았다면 비 오는 날은 첼로 소리 같달까. 물기와 뒤섞인 공기는 첼로의 낮고 벨벳 같은 음색을 닮았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안에서 하루의 색과 톤에 은은한 결이 생긴다. 첼로 소리처럼 그윽해진다. 모든 감각이 손톱만큼 깊어진다. 시각, 청각뿐만 아니라 미각과 후각까지도. 해야 할 일이 많더라도 시간의 사이를 벌려 잠잠히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빗방울 소리에 집중하는 사이 창 너머로 트럭에 물건 싣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수영 강습 때문에 급하게 주문한 수영복이랑 수경이 있었지. 궂은 날씨에 밖에서 일하느라 누군가에겐 더 힘든 하루가 되겠구나. 여기서 가만히 빗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엔 할 수 없이 빗방울 같은 땀이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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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엔 비 오는 날이 달갑지 않았다. 갑자기 비가 오면 하교 시간에 우산을 들고 온 엄마들로 복도가 바글바글했다. 교실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누구야, 부르는 소리가 뒤엉켜 소란스러웠다. 혹시 엄마가 왔을까 두리번거리며 인파를 헤치고 나오는 복도가 길었다. 신발주머니를 머리 위에 올리고 건물을 나와 운동장 가장자리를 걸었다.
교문 앞에서 또 한 번 혹시나 하고 둘러봐도 우리 엄마는 없었다. 비를 맞고 가는 길, 어차피 젖을 텐데 하고 서둘러 걷지도 않았다. 더러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가 우산을 씌워 주었고 비 맞는 아이가 안 쓰러운 모르는 아이의 엄마가 같이 쓰자고 우산을 내밀어 주기도 했고. 자신이 초라해질 만큼 흠뻑 젖었던 기억은 없다. 비가 와도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고. 한 번은 엄마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애가 넷인데 어떻게 가니.
누구한테는 가고 누구한테는 안 갈 수 없는데.
괜히 갔다 길이 엇갈리면 어떡하고.”
엄마가 오지 않던 비 오는 날의 기분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잠겨버릴 만큼 슬픈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말끔하게 닦인 유리창처럼 투명한 것도 아니었고. 감정의 이름을 헤아리길 미루고 덮어 두었다. 감정을 유예시켰다.
우산이 있는 날엔 집에 가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졌으니 비가 오길 기다리던 아이였을지 모른다. 물웅덩이를 찰방거리다 처마 끝이나 옥상, 대문 위에서 플라스틱 관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 서 있길 좋아했다. 와르르 떨어지는 물길이 우산에 부딪혀 내는 우툴두툴한 소리에 웃음이 터졌다. 앞서 걷는 사람들이 쓴 우산이 저마다 다른 무늬로 알록달록한 걸 골똘히 바라보기도 하고. 내린 비가 골목 가장자리로 모여 흘러가면 그 위에 나뭇잎을 띄워 좇기도 하면서. 그러느라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도 하면서. 운동화가 흠뻑 젖어 걸을 때마다 발 밑이 질퍽거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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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대기 중엔 습기가 가득했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 한 점 없이 더위로 조밀한 공기가 무거웠다. 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던 오후. 마침 운동장에서 축구 연습하는 아이들이 원형으로 모여 준비 운동을 했다. 축구 선생님은 물이 나오는 호스를 들고 그 주변을 돌며 아이들을 향해 물을 뿌렸다. 아이들은 몸풀기 운동을 하다가도 더위에 얼굴을 찡그리고 옷을 펄럭였는데 그러다 차가운 물줄기가 닿으면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 수에 비해 하나의 호스에서 나오는 물줄기는 턱없이 가늘었다. 그러니 아이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내게 물방울이 튀길, 나를 물로 적셔주길 바라 개구쟁이 표정이 되었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물이 튀면 그 시원함에 반가워 물방울처럼 환해지고. 물에 젖는 게 성가셔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흠뻑 젖어버리길 바라는 그 마음에 눈이 부셨다.
그렇지, 우리도 저렇게 자라 어른이 되었지. 무언가에 젖는 걸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다음이 없는 사람처럼 풍덩 빠져 웃고 뛰어다녔지. 아이들 웃음이 푸르게 시원했다. 그 웃음이 물줄기처럼 내게 쏟아졌다.
올해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연분홍빛 장화를 준비해 두었다. 미루고 고르고, 고민하고 고민하다 레몬빛 우비도 주문했고. 어른이 되고 언젠가 우산 없이 빗 속을 걷고 싶었는데 실행하지 못했던 걸 숙제처럼 가지고 있으니까. 비가 오면 우비부터 챙겨 입는 여덟 삶 꼬맹이와 한 집에 살고 있으니 비가 쏟아지기를 기다린다.
이젠 기억나지 않는 감각이 궁금하다. 온몸에 빗방울이 세차게 부딪힐 때의 느낌이. 나를 감싼 얇은 유리막이 깨지는 기분일까. 초등학교 시절 우산을 들고 온 엄마와 돌아가는 친구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에 얹고 걷던 그 아이의 기분도 새삼스레 떠오를까. 젖은 뒤의 일부터 걱정하느라 비 맞길 주저하는 어른의 마음을 잊을 수 있을까. 운동장에서 물줄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처럼, 물방울처럼 환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담배를 피워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맙소사, 방금 기억났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나도?!
지금이 딸기 철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그래."
148쪽 <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내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누릴 수 있는 걸 유예하지 않기를. 비가 오는 날엔 비를 맞고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엔 별똥별을 만나길. 바다를 앞에 두고 모래가 성가셔 몸을 담그지 않거나 푸르른 숲에서 벌레가 무서워 걷기를 미루지 않기를.
지금 자두가 한창이라는 걸 부디 잊어버리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