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발견
"어쨌든 하루는 고르고 고르며 이루어진다."
이시다 센은 <몸과 이야기하다, 언어와 춤추다>(서하나 옮김, 1984books)에 이렇게 썼다. 밖에 나가려면 옷을 골라 입어야 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디가서 무얼 먹을지 고민하며, 고르고 고른 선택으로 하루를 구성한다고.
시간이 흐르면 곁에 있던 사람들 하나둘 사라지지만 스스로가 소소하게 줄곧 선택해온 결과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오늘 하루 내가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자잘하지만 날마다 선택한 것들이 내가 되고 내 삶이 될 것이다.
저녁을 먹고 딸아이와 아이의 친구를 만나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전날 서서히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깊고 너른 저녁놀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럴 것 같았다. 하늘은 높고 바람이 넘실거려 구름이 휘휘 풀어지는 날. 이런 날은 구름의 모양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다. 작년 여름에도 온갖 모양과 질감, 양감으로 하늘을 수놓는 구름을 보며 무더운 계절을 지났다.
계절은 저마다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지닌 채 슬며시 우리 주변을 감싼다. 오묘하게 변화한 대기의 구성과 햇빛의 각도가 유난히 분홍과 살구빛 사이의 영롱한 노을을 그려내고 열기로 불안정한 한낮에는 다채로운 구름을 하늘에 띄우는 계절. 한 여름 밤하늘을 수놓을 별들과 어느 날 우수수 떨어질 별똥별까지. 햇감자와 옥수수를 쪄 먹고 색색의 과일을 먹으며 한껏 땀을 흘리고. 나날이 빽빽해지고 짙어지는 나뭇잎처럼 매미 소리로 울창해질 여름. 그런 계절이 돌아왔다. 계절이 책갈피처럼 생활에 끼워 줄 표식을 기대한다.
딸아이는 친구와 둘이 앞서 걸었다. 저희 둘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느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친구와의 동행으로 머뭇거림 없이 나아가는 아이. 나를 찾지 않고 둘만의 세상으로 걸어갔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 더 멀리, 더 많이, 무럭무럭 나아가겠지. 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의 유년기와 작별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런 아이를 뒤에서 바라보는 동안 세 겹의 시간이 동시에 흘렀다. 소녀와 엄마, 언젠가의 소녀와 또 다른 엄마,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된 소녀와 그의 어린 딸... 완전히 포개질 수 없지만 어디선가 흘러가다 우연히 겹치기도 할 그런 시간. 서로의 안에서 끝없이 겹을 이룰 시간이.
딸아이와 그 친구가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미끄럼틀을 타다 그네를 타다. 그러다가도 하늘이 살구빛에서 다홍빛으로 짙어지다 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에 환호하면서. 아이들은 나뭇잎과 꽃을 주워 미끄럼틀을 꾸미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고 서서히 어둠이 스며들었다.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가는 이를 배웅하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돌아가는 이의 기분이기도 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멀어지며 가장자리로 돌아가는 이. 어둠이 내리는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 곁을 서성이느라 배경처럼 머물던 그때에는.
아이의 유년 시절을 지키는 보초처럼 놀이터 주변을 걸었다. 그건 유년을 두 번 사는 일과 비슷하다. 앞서 세 겹의 시간이 흐른다고 느꼈듯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도이기도 하고. 언젠가 무척이나 그리워질 시간을 목격하고 있다고 누군가 내게 속삭였고. 돌아가는 이는 꽤나 길게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배웅하는 마음이 헛헛하지 않았다. 사그라들면서도 찬란하고, 길게 스미어 여운을 남겼다. 슬픔 뒤로 떠오르는 말간 기쁨처럼 또 다른 시작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번주까지는 잠을 넉넉하게 자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한 번 목감기가 오면 쉬이 낫지 않아서.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제까지 일주일 남짓 먹었는데 인후통이 개운하게 가라앉질 않는다. 두 차례 내 몸을 지나간 코로나 바이러스는 목에 흔적을 남겼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목부터 아프다. 씻은 듯 개운해지지 않는 게 반복되어서. 약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걸 감지해서. 먹기 싫은 약을 털어 넣는 대신 몸이 원하는 걸 해준다. 충분한 잠과 좋은 음식을 너에게 줄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빠뜨리면 숙제를 못한 아이의 마음이 되어 버리지만, 그 일을 더 오래 해내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날도 필요하겠지. 대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예쁨을 더 간직하자고 마음을 기울인다. 작별하는 중이니까. 제대로 눈을 맞춰 둬야 한다. 이 시간들 내 안에 돌돌돌- 감는다.
습관이 들어 어느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지만 다시 눈을 감은 채 아이 곁에 바짝 몸을 붙이고 누워 있는다. 아이 피부의 말랑하고 차가운 감촉을, 고운 잠기운을 흡수하면서. 거기에 이슬처럼 맺히는 순수와 희망을 공기처럼 호흡하면서. 살아있음을 온전히 기쁨으로 만끽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시간을 열 수 있다. 내 안에서 수시로 시간을 펼칠 수 있다. 시계가 가리키는 현재의 시간이 아니라 내가 접속하고자 하는 시간, 과거와 미래, 현재이면서 현재와 다른 시공간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도 언제든 시간 여행을 떠난다. 책과 글이 있어 무한하게 열리는 여행. 책상 양 옆으로는 읽고 싶은 책이 쌓여 있고, 그중 한 권을 펼치면 누군가의 어떤 시간으로 단숨에 접속할 수 있다. 거기서 누군가의 삶을 살다보면 언젠가의 내게 닿기도 한다.
지금의 아이는 오직 지금에 한정되어 있다. 아이는 자라 다른 시간으로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시간만은 고스란히 내 안에서 살아갈 테지. 언제든 그리운 얼굴을 내 안에서 재생할 수 있겠지. 아낌없이 오늘을 살면 기쁘게 작별할 수 있다.
어쨌든 하루는, 고르고 고른 것들로 구성된다. 무얼 보고 무얼 들을지, 어떤 걸 쓰다듬고 곁에 둘지. 글을 쓸까, 잠을 더 잘까. 책을 읽을까, 아이와 놀까. 대충 저녁을 먹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볼까. 나에게 기울었다가 다시 아이에게 기울었다가. 언젠가 내게 돌아가기 위해 지금은 아이를 더 돌아보아야 하는 시간. 그것이 잘 돌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사소한 선택이 가져온 결과만이 남아 삶의 흔적을 그릴까. 아침잠, 아이와 숨 나누기, 글쓰기, 산책, 소녀들의 뒷모습, 노을과 웃음 소리. 오늘 내가 선택한 모래알들을 주머니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