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지 않는 마음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용기, 누군가 쓸모없다고 말하는 걸 꿋꿋하게 지키는 마음. 거기에 길들지 않는 마음이 산다. 길들지 않는 마음은 시들지 않는 마음이다. 물이 없어도 죽지 않고 비가 오길 기다리는 이끼처럼, 삶의 무수한 할큄에도 지치지 않고 기쁨을 찾아내는 마음이다. 내겐 그 마음이 저항 같다. 평균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삶에 대한 저항. 그러려면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만의 고유함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J는 달리기를 잘한다. 가을 운동회에서 학년 대표로 선발되어 계주 경기에 출전했다. 작고 마른 몸으로 날쌔게 달리는 J를 응원하면서 내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뭉클해졌다. 뜀박질 하나마다 뭉쳐낸 용기와 열정이 빛났다. 그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짱, 멋있었어!”라고 말해주니 J가 수줍게 씨익 웃었다.
J는 나의 딸 서윤의 같은 반 친구다.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J는 조합놀이대에서 외벽에 매달려 노는 법을 친구들에게 전파했고 놀이대 밖으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의외로 평소 J의 표정은 뚱하고 말수도 적다. 때로는 거칠고 좋아하는 일 앞에선 숨길 수 없이 눈에서 빛이 나는 J가 내겐 길들지 않은 작은 늑대같다. J가 내 칭찬에 웃었다. 우리 사이에 가느다란 선이 연결된 기분. 그즈음하여 나와 J가 조금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도 괜한 착각은 아닐 것이다. J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학년 대표로 달리기 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목적지를 향해 전력 질주할 때 나의 심장은 어느 때보다 작게 쪼그라들지만, 어느 때보다 힘차게 박동했다. 두 다리가 힘차게 벌어지며 몸을 앞으로 내보낼 때면 초원 위를 달리는 말이 된 기분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은 사라지고 엄마, 아빠, 선생님과 친구들, 근심 걱정도 잊혔다. 바람과 나만 남았다. 바람이 나를 호위해 주는 세계. 달리는 동안엔 무엇도 나를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았다.
달리는 기분이 좋아 달리다 보니 달리기를 잘하게 되었다. J도 그럴까. 달리기가 좋아 달리고 달리다 보니 기록이 좋아졌을까. 두 다리가 단단해져 더 빨라지고 있을까. 운동회 전부터 J는 반에서 가장 빠른 아이로 통했다. 운동회를 앞두고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나면 J는 서윤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다. 운동회가 끝나고도 둘은 곧잘 달리기를 한다. 시합이라기보단 기록 연습이다. 정해진 구간을 두 아이가 각자 달리면 내가 초를 재어준다. 자신의 기록을 확인한 J는 시키지 않아도 기록을 앞당기려고 몇 번을 다시 달린다.
J는 달리기가 좋아 저절로 잘하고 싶어지나 보다. 달리는 게 좋으니까 노력이랄 것도 없이 노력을 쏟아붓는다. 힘든 줄도 모르고 반복해서 연습한다. 좋아하는 마음이란 배의 돛을 밀어주는 순풍이다. 우리의 등을 밀어 우리를 뜻밖의 항로로 나아가게 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면 우리의 가슴도 순풍에 부푼 돛처럼 원대해진다. 좋아하는 마음은 노력으로 이어져 능숙을 짓고 그 과정을 거쳐 우리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운다.
J에게 달리기가 있다면 내겐 발레가 있다. 초등학생 때 달리기와 높이 뛰기를 좋아했던 내 마음에 어느 순간 발레가 들어왔다. 엄마에게 무얼 졸라본 적 없던 내가 커다란 용기를 내어 물었던 건 발레 학원이 유일했다. “발레 학원 다니면 안 돼?” 엄마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넘겼지만. 그런 엄마의 반응에 여린 마음을 고이 접어 가슴속에 숨겼다.
유리로 만든 새 한 마리가 내 안에 살았다. 깨지기 쉽고 아프기도 하지만 내게만 반짝여 지키고 싶은 새 한 마리.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고 발레를 하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며 가슴 설레던 아이는 재즈 댄스를 배우는 대학생으로 자랐고 발레뿐 아니라 온갖 무용 공연을 보러 다니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발레 수업을 등록하기도 했지만 3개월 남짓 배우다 말았다. 몸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느라 취미 생활에서 오는 열등감까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무용수들의 푸르른 도약 앞에서는 온몸이 전율했다. 좋아하는 마음만은 꺾이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잘하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걸 깨달았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잘하는 건 필수가 아니라는 것. 잘하려면 좋아하는 마음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그 마음으로 충분한 세계도 존재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세계라면,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면,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즐거움만으로도 어떤 세상은 가득 찼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일도 소중하다.
잘하려는 욕심에 쫓기지 않으면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지속하면 결국 시간이 쌓여 실력은 조금씩 나아진다. 시간과 겨루어 이기는 건 없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어 아등바등하느라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 기쁘게 시간의 힘에 기대기로 한다. 장인의 마음이랄까, 무던하게 반복하는 태도, 효율성을 따지고 계산하는 대신 아무 생각 없이 행하는 무심한 자세를 배우고 싶다. 잘하려고 무겁게 비장해지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만큼을 큰 기대 없이 행하는 가벼움이 좋다.
미루고 미루다 발레 학원을 등록했다. 아이가 어려서, 학원비가 비싸서. 이 나이에? 이 형편에 무슨 발레? 이젠 유연성도 없는데. 핑계는 언제나 많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최적의 시기란 오지 않았다. 좋아했던 일도 시간이 흘러 애정이 식어버리는 일을 겪었다. 발레에 대한 마음도 언제 옅어질지 모른다. 더 이상 미루다간 후회할 것 같았다. 꺾이지 않은 마음이 남았을 때 기쁨을 되찾고 싶었다. 나를 호위해 주는 한 세계의 문을 다시 열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아침마다 발레 학원에 간다. 다리는 짧고 허벅지도 두껍지만, 어깨는 넓고 상체는 볼품없이 말랐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내가 개의치 않으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 수업을 들어온 실력파 수강생들이 있지만 기죽지 않는다. 대체로 말없이 수업에 열중하는 나는 이 구역의 ‘J’다. 표정을 숨긴 얼굴이 비사교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일엔 열심인 학생이랄까. 실은 쑥스럽고 부끄러워 그런 거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괜한 노력은 들이지 않는다. 여기서만은 ‘J’가 되고 싶다. 길들지 않는 어린이, 내 안에 소량 남은 나로 오롯하고 싶다.
생소한 발레 용어와 따라갈 수 없는 동작에 매번 헤맨다. 그런데도 미세하게 몸에 익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나만은 알아챌 수 있다. 하나, 둘, 용어가 익숙해지고 선생님을 보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동작이 늘었다. 그러다 문득 뻣뻣하던 팔이 리듬을 타고 부드럽게 흐르고 한 다리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버티기도 한다. 음악이 흐르고 몸과 움직임에 집중하는 사이 모든 게 잊힌다. 피아노 선율과 나만 남고 음악은 나를 휘감는다. 그렇게 나만 아는 세계가 열리면 돛을 펼치듯 두 팔을 크고 길게 뻗는다.
그랑 제떼! 음악이라는 바람이 나를 들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