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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Jul 31. 2020

나는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나는 부모님이랑 굉장히 친한 편이다. 떨어져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틀에 한 번은 전화통화를 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시시콜콜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다. 아주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다른 부모님들은 자식들이랑 결혼하기 전까지 같이 살 수 있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그렇지 못하니 자식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떻게 크고 있는지 아주 자세하게 알 지는 못하는 게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고민이 있을 때는 아주 자세하게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자주 전화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돼서 지금도 자주 연락을 한다. 


부모님은 삼형제가 원하는 것은 다해주려고 노력하셨다. 떨어져 있다 보니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기죽지 말라고 넉넉히 챙겨주셨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도록 뒤에서 기다려주셨다. 내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는 당연히 반대를 하셨다. 흔쾌히 승낙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그땐 모두에게 서운했었다. 모두가 반대했으니까. 그래서 하루는 만취해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모두가 유학을 반대한다고. 너무 서글프다고. 나를 가장 잘 아는 부모님까지 반대한다고 엉엉엉" 그러고 전화를 끊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속은 괜찮냐며. 그러시더니 고맙다고 하셨다. 서른이 넘는 딸이 술 마시고 전화해서 고민을 이야기하니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고. 나이가 마흔이 돼도 딸은 딸이라고. 그렇게 해서 나는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을 다녀오자마자 부모님은 한약방에 데리고 가 고생했다고 보약을 지어주셨다. 그 마음이 참 감사하다. 지금도 나는 좋은 일이 생길 때면 항상 부모님께 먼저 알리는 데 그때마다 고맙다고 말씀해주신다. 


물론 좋은 일만 이야기하진 않는다. 나쁜 일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부모님은 같이 고민해주시고 충고를 해주시는 데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우리 아빠지만 아빠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경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힘들 때마다 부모님과 상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팀장이랑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면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받아버리라고 하셨다. 말은 이렇게 하시지만 진심은 아니셨을 것이다(진심인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 마음이 좀 풀리고 그냥 그런 일이 되어 있었다. 


큰 결정에 대해선 의견을 이야기하시지만 강요는 하지 않으셨다.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 말을 잘하길래 내심 변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취업을 하고 어느 날 가족끼리 술자리에서 이 말씀을 꺼내셨다. 그때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자식에 대한 욕심이 분명히 있으셨을 텐데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지내셨다는 사실이.   


떨어져 살았으니 더 애틋했을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의 인내와 아빠의 믿음으로 잘 자란 것 같다는. 그래서 항상 감사하다. 우리 부모님은 좋은 분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 돼야만 한다. 어쩌면 나를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의 부모님을 보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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