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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의 영정

by 코트워치

무안국제공항 1층. 디귿 형태로 움푹 들어간 벽감 같은 공간에 분향소가 마련됐습니다.


공항과 광주송정역을 잇는 시외버스는 현재 운행이 중단됐지만, '긴급 수송'을 위한 셔틀버스가 두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논이 펼쳐진 도로를 40분 정도 달려 공항에 도착합니다.


'질서를 지켜달라'는 종이를 든 사람들을 지나 공항 안으로 들어가면 베이지색 텐트들이 보입니다. 텐트 위를 비롯한 곳곳에 '사진 촬영 금지', 'SNS 게시 금지' 등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분향소 앞 가이드라인을 따라 줄을 섭니다.


흰 국화 한 송이를 건네받고, 사람들이 묵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립니다.


이제 바닥의 흰 줄에 맞춰 일렬로 서라는 안내를 듣습니다. 제일 앞에 있던 제가 왼쪽에 섰고, 오른쪽으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함께 섭니다. 다 같이 헌화하라는 안내에 맞춰 제단에 꽃을 올려둡니다. 함께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빌었습니다.


제 뒤로도 사람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조문하는 시간은 짧았습니다. 세 벽면에 있는 영정과 위패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을 빠져나와 뒤편에 서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초록 배경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리가 멀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전신사진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검은 정장을, 한 사람은 흰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사진 옆에 두 개의 나무 위패가 함께 올라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앞에 함께 섰던 두 사람의 마음 그리고 신랑 신부의 사진을 직접 영정으로 고르고 분향소에 올렸을 이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분향소에 걸린, 모르는 얼굴들을 마주하는 건 일상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2022년 겨울 이태원 참사 분향소와 2024년 여름 아리셀 참사 분향소 모두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흰 국화로만 채워졌던 분향소가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는 분향소가 되었을 때, 그 앞에 서면 분명히 달랐습니다.


꼭 어디에서 본 것 같았기에 지금도 생각나는 얼굴이 있고, 이미 흐릿해졌지만 증명사진이나 취업사진, 웨딩사진처럼 삶의 특정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저 즐거워 보이는 얼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어 눈을 맞추기 어려운 얼굴, 위패만 보고 상상하게 되는 얼굴…


그 얼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꺼내 읽은 책의 한 대목을 덧붙입니다. 애도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의 마음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요.


"그곳(이태원 참사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같은 아픔을 공유한 유가족과 생존자와 자원봉사자, 위로를 건네는 시민들이 형성한 긍정의 정동이 흐른다. 이 장소에 긍정의 정동이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희생자의 얼굴, 수백 개의 시선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원옥의 말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도의 정치 관점에서 영정 사진은 가장 강력한 효과를 지닌 시각적 도구다."


"나 역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희생자의 얼굴들을 차근히 마주하는 순간,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경험했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짧은 인사와 대화를 나눈 이도 있었다."¹




¹ "달라붙는 감정들", 김관욱 외,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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