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귀찮은 존재들이 생겼다. 존재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명이 아니라 무려 세 명이다. 그들은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오래 전에 나타나서 내 삶에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들은 항상 당당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거침없이 요구했으며, 조금이라도 욕구충족이 지연되면 앙칼지게 반응했다. 까다로운 그들의 요구에 맞춰 난 삶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걸 그들에게 맞춰 바꿨다. 내 삶을 뿌리째 흔드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급격한 삶의 변화가 너무 어색하고 힘들게 느껴졌지만, 얼마 안 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권리만 나는 의무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벽한 갑과 을의 관계가 또 있을까?
그들을 처음 만난 날을 돌이켜 보면 생각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고, 여러 가지가 뒤섞인 엄청난 감정이 휘몰아치지도 않았다. 그저 향후 20년 넘게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듯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고 받아들였다. 피하고 싶다고 그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고, 갓 태어난 그들은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냈으니까.
처음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살기 위해 뛰어야 하는 초식동물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그들은 먹이사슬 정상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였고, 발달단계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느긋했다. 그들은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그저 소리만으로 모든 걸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먹여라, 입혀라, 안아라 등의 의미로 해석되었고 난 해석된 의미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했다. 나의 행동은 그들을 만족시키는 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심신은 잔뜩 물을 머금은 스폰지처럼 무거워졌다. 잠이 부족해서 수시로 눈이 감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를 어찌 버텼나 싶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더니 오늘이 와버렸다. 이제 더이상 그들은 나약한 생명체가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 독립개체가 되었다. 내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되었고, 비밀이 많아졌다. 구분된 혼자만의 공간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 공간에 누군가 발을 들이는 걸 불쾌해했다. 난 혼란스러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들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의 희생이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답하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는 어쩐지 그 말이 와닿지 않는다. 그들을 키우는 데 상당한 재화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성장 결과에 대해 민감한 쪽이 자연스럽다.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이 그들의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색하지 않아도 결국 그들이 본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충실한 조연으로서 그들이 다른 고민 없이 그저 열심히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여러가지 결핍을 그들이 경험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항상 공존했다. 지금 표류하고 있는 나 역시 무언가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쌓여 지금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우리 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시기를 사는 그들이 악착같은 독기를 품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가? 그들보다 몇 배를 더 산 나도 잘 모르겠는데, 원하는 걸 찾아 열심히 노력하라는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그저 알아서 잘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