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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폰과 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by 윤현섭

다둥이 아빠의 삶은 생각보다 고달프다. 애들이 어릴 때는 어린 대로, 조금 컸을 때는 큰 대로 고민거리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가 아기였던 시절에는 자는 동안 먹기 위해 몇 번씩 깨는 통에 잠이 너무 부족했다. 출산 후 바로 휴직을 신청한 아내는 밤새 같이 깨지 말고 다른 방에서 잘 것을 권유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부부는 같은 베개를 베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3代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된다는 말에 격공 한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둘째, 셋째는 왜 낳았느냐고 물어보면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다. 평범한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는 것보다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는 말밖에. 하지만 다행인 것은 힘든 와중에도 육아 시계는 착실하게 돌아갔고, 이제는 애들과 관련하여 육체적 피곤함보다는 정신적 피곤함을 더 느끼는 구간으로 진입했다. 그렇다면 정신적 피곤함은 육체적 피곤함에 비해 좀 가벼울까? 일단 자아가 생겨버린 아이들은 여간해서는 속지 않는다. (도깨비 전화에 기겁하던 너희들 어딨니?)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공평이라는 단어를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한다.

내가 어릴 때(라떼)는 똑같은 세배를 해도 형이 더 많은 세뱃돈을 받았다. 고학년일수록 사야 하는 물건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난 그게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형은 항상 좋은 것만 있었을까? 형과 다투면 으레 어른들이 “형이 되어 가지고 말이야 동생한테 좀 양보해야지”라고 나무랐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역할에 어울리는 의무와 보상이 함께 주어진 것이다. 반면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사더라도 평등하게 세 개씩 주문한다. 그것도 똑같은 물건으로 사는 편이다. 과자부터 선풍기까지 아내의 홀수 사랑은 끝이 없다. 물론 둘째가 성장하면서 디자인이나 색깔 등의 요소는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똑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을 세 개 사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몇 개월 전부터 둘째는 사과폰을 사달라며 조르고 있다. 둘째의 주장에 따르면 같은 반 친구들 대부분이 사과폰을 쓴다고 한다. 평소 웬만한 건 기분만 조금 맞춰주면 사주는 나조차도 망설여지는 물건이다. 일단 너무 고가의 물건이고, 둘째에게 사과폰을 사주면 첫째, 셋째도 당연한 듯이 새 휴대폰을 요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주머니 사정도 모른 채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에 놀아나는 딸이 못마땅했지만, 원하는 것을 흔쾌히 들어주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미안함도 함께 느꼈다. 며칠 고민한 나는 아내에게 지금 쓰고 있는 최신 사과폰을 딸에게 양도할 것을 제안했다. 별 기대 없이 꺼낸 얘기였는데, 아내는 원래(?)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며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엄마의 배려를 전해 들은 둘째는 중고를 쓰고 싶지 않다며, 고집을 부렸다.

나와 똑같이 생긴 딸이 생떼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학교에 막 입학한 나는 엄마에게 비싼 브랜드 청바지를 사달라며 고집을 부린 적이 있다. 엄마는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지만, 난 막무가내였다. 반항 모드를 발동하고 모든 일에 비토를 놓았다. 심지어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시위를 이어간 끝에 엄마는 결국 청바지를 사줬고, 철없는 난 작전이 통했다며 흐뭇해했다. (며칠 뒤에 넘어지면서 청바지 무릎 쪽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애를 낳아야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처럼 당시 엄마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사과폰 이슈가 미해결 된 상태로 시간이 흘렀고, 둘째의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 되었다. 아내가 바빠서 대신 참석하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나를 대하는 둘째의 태도가 냉랭했다. 난 같이 가고 싶었지만 둘째는 친구와 간다며 먼저 출발해 버렸고, 혼자 남은 나는 천천히 초등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도착해 보니 엄마 비율은 80%가 넘었다. 난 뻘쭘함을 느끼며 교실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뒤쪽에 자리 잡은 부모들을 보고 다른 아이들은 갖가지 수신호를 보내며 장난쳤지만, 둘째는 한 번 쓱~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지배 다신 오나 봐라)

“안녕하세요? 6학년 5반 담임 오채은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공개수업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침 미술 시간이라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것을 그리게 하고 발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오프닝이 끝나자 아이들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들 색연필을 잡고 열심히 그리는데 저 멀리 앉은 둘째는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뿐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사과폰 디자인을 떠올리고 있나?) 15분쯤 흘렀을까? 아이들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C社 가방을 어깨에 메고 유튜버를 하는 모습부터 축구선수, 건물주까지 아이들이 하(사)고 싶은 건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난 사과폰이 그려져 있을 스케치북을 상상하며 담임 선생님이 둘째를 호명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둘째의 이름을 불렀다.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할까?) 둘째는 쭈뼛거리며 일어나서 스케치북과 함께 부모들 쪽으로 돌아섰다. 화려한 색상의 사과폰이 그려져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온통 검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까만 사과폰이 있었나?)

“저는 직접 치료한 강아지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을 끝없이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높은 산은 힘드니까 아빠가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온통 까만 스케치북에는 수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단발머리 여성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까만 하늘에 가득 흩뿌려진 노란색 별은 뱅글뱅글 돌아가는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켰으며, 단발머리 여성의 손을 잡고 올라가 산 정상에헐떡이고 있는 나의 등은 살짝 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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