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산다

한량주의보

by 반윤성
일해라 반대리

어느새부터 열심히 산다는 것이 촌스러운 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과거에는 나만 열심히 하면 차곡차곡 경력도 쌓고, 적금과 예금을 통해 모은 자산으로 집과 자동차와 같은 물질로 변환하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과 안정적인 직업이 담보되어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뜨겁던 열정과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많다. 더 이상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렇게 했더니 성공했다' 같은 말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출근한 당신은 일이 좋든 싫든 회사에게 내 시간을 바꿔 꼬박꼬박 회사에게 돈을 벌어줘야 한다.


회사는 그 대가로 당신이 그만두지 않을 만큼의 급여와 법정으로 정해진 휴가, 웬만해선 자르지 않겠다는 근로법상의 규율들을 보장한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중 어쩌면 가정과도 양분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위해 일한다.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산다

사람의 마음이 참 신비하면서 간사한 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 시켜서 하거나 혹은 돈 때문에 하게 된다면 마음이 삐뚤어진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취미 활동을 생각해보면 금전이나 강요를 부여받은 것도 아닌데 직접 나서서 활동하거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참 열심히도 한다.


어디선가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산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참 요즘을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당장 하고 싶은 일들과 미뤄놓은 꿈이 있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 1분 1초를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 말을 듣고 나 역시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공감가는 말이었고 심지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열심히 살지 않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나를 위해 일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돈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위해 일하고 싶다. 우리가 배운 교육과 사상들은 우리를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만들게 했지만 여기서 관점을 바꿔 우선 일에 '과몰입'해보는 건 어떨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에서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악마를 무찌르려면 그보다 더 한 악마가 되어야 한다. 악마가 질려서 도망가도록.' 몹시 괴인으로 묘사되는 조르바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주변에 피해는 안 주면서 해야 할 일만 한다면 잘리지도 않고 적당한 급여를 받고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정녕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밖에서 '어디 회사의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기보다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에 관심 있는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멋지다. 그리고 회사는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배경 속의 등장인물로 묘사되기보다 '나'라는 작품을 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