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주의보
대퇴사시대
이 글을 쓰는 2022년. 지금은 바야흐로 '대퇴사시대'이다. 자산 가치의 높은 상승과 인플레이션, 자기만족 트렌드, 파이어족과 같은 키워드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퇴사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주변의 모습을 관찰한 결과, 대개 일을 아예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속한 IT 직군의 경우 이직이 꽤나 잦은 편이다. 이들은 일이 힘들거나 안 맞아서 퇴사했다기보다는 더 많은 임금이나 좋은 여건을 찾아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다른 케이스는 '이직'이 아닌 '전직'이다.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하다가 갑자기 야구가 하고 싶어서 옮긴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현 직장에서도 꽤나 실력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으며 대인관계도 좋아 평판이 좋지만 어느 날 갑자기 웃으며 자리를 정리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프리랜서, 사업체 창업, 공기업/공무원 준비, 육아에 전념 등등 정말 다양한 퇴사 케이스가 있는데 이런 다양한 퇴사 형태를 보고 있으면 과거에 유행했던 트렌드인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기업에 있어서도, 근로자에 있어서도 이미 낡을 대로 낡아버린 개념으로 자리 잡힌 듯 보인다.
퇴사는 회사에게는 결말이지만 나에게는 단지 과정일 뿐
90년대생인 내가 직장으로 부를만한 곳으로 첫 취업한 곳은 어느 영어 유치원이었다. 거기는 군대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사회 경험이나 살릴 겸 들어간 곳이었는데, 면접을 보고 입사 혹은 입원해서 막상 다녀보니 나에게 꽤 잘 맞았다.
거기서는 반갑게 맞아주는 아이들이 있었고,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유쾌했던 아이번 선생님, 한국어를 잘하지만 학부모 앞에서는 단호한 한 명의 외국인으로 돌변하는 저스틴 교수부장님, 그리고 상냥하고 친절했던 상담 선생님들 모두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괜찮았던 그곳에서도 퇴사의 꿈은 무럭무럭 자란다. 조그마한 영어 도서관의 사서를 하면서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평균적인 임금과 적당한 노동시간으로 소위 워라밸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퇴근 후에 이렇다 할 낙이 없었고 마음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에 갑자기 허무함이 들었다.
첫 번째 직장을 그렇게 뛰쳐나왔다. 처음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미련이 남아서 그랬을까. 퇴사하는 날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매일 퇴근하던 버스에서 울음이 터졌고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울었다.
모험을 떠나보자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들이 있디. '첫 키스', '문 앞에 택배가 배송되었습니다', '너 오기 전에 치킨 시켰어' 그리고 '모험'. 사회에 찌든 어른들에게 모험에 대해 얘기하면 99%의 확률로 '보험?'이라고 되돌아올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모험이 맞다.
퇴사라는 것은 분명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모험이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다는 것은 작지만 소중했던 월급을 못 받게 될 수도 있는 일이며 더 이상 어디 소속의 누구라고 밝힐 수도 없다. 단지 사회에 던져진 나라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또한 직장을 구하고 퇴사했으면 다행이지만 다시 원하는 잡을 얻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해야 할 수도, 막연한 기대감에 나왔지만 믿고 있던 동아줄이 끊어질 수도 있다. 나는 그럼에도 누구나 한 번쯤 퇴사를 했으면 좋겠다.
즉 우리는 모두 가고자 하는 길과 방향이 다르다. 하지만 마치 정해진 차선이 있는 것처럼 규칙을 강요받곤 하는데 한 번쯤은 과감하게 룰을 배반하고 핸들을 뒤집어서 정속 주행과 안정적인 포장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오프로드에서의 난폭 운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