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집을 사야 할 이유
원룸의 역사
캥거루족으로 지낸 어느덧 27년. 비로소 독립할 때가 되어 마침 춘천에 직장이 생겨 첫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계약은 월세 25만 원에 보증금 300만 원. 계약을 도와주는 공인중개사도 하품을 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었지만 나는 계약에 진심이었다.
아무래도 첫 집에 들어가는 만큼 생활에 필요한 가재도구나, 생활용품도 넉넉히 준비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악한 환경이었다. 구식 체리 몰딩과 산지 20년은 넘어 보이는 냉장고, 물이 새는 세탁기. 놀러 온 친구의 말로는 마치 시트콤 '논스톱'에 나올 것 같은 집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집에 참 열심히도 살았다. 비록 계약 기간 1년이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으나, 그곳에서 살면서 열심히 돈도 모으고, 앞에 소양강 산책을 할 정도로 잘 돌아다녔다.
내 집을 산다는 것
원룸은 말 그대로 'One Room'이다. 집의 흉내를 내곤 있지만 사실 방 한 칸에 가깝다. 이 방 한 칸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밥도 해 먹고. 원룸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지낼만하다.
아마도 이제 집을 사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다. 아버지로부터 간접적으로 느끼던 가장의 무게를 비슷하게나마 느낄 수 있고, 집에 필요한 모든 가구, 인테리어, 가전 등을 직접 구매하고 사는 게 완전히 다르다. 임대하고 빌리는 감각과는 다르다.
집을 산다는 건, 내 걸로 취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오직 소유주인 내 책임이 되고 책임으로부터 권리와 자신감이 나온다.
첫 번째 집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한 동네에 오래 산다는 것이 꽤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흥미로웠는데 우리가 아파트라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겨가면서 서로에게 장막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아파트에 살고 싶을까? 옆 나라 일본에선 맨션의 가치가 더 높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파트에 그토록 열망하는지 집을 구하면서 알게 되었다. '브랜드', '역세권', '초품아' 등등 좋은 가치를 가진 주택에는 이런 수식어들이 붙는다.
그만큼 화폐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것이겠지. 조금이라도 우월한 가치를 뽐내는 것이 어쩌면 화폐의 수단으로 더욱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라는 것은 다음도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집은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주거지도 되지만 자산으로서의 효용도 너무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