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May 02. 2022

밤에만 만나는 사이

우리의 밤은

낮에 만나는 사람과 밤에 만나는 사람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면서부터 또 다른 세계에 도달했다.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참석을 거부한 어른들의 피로연에 한 발을 내디딘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가 변한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젠가 반드시 도착할 목적지를 여태 뱅뱅 돌아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 우리네 세상에는 낮에만 만나는 사람과 밤에만 만나는 사람, 낮과 밤 모두를 만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했다.


낮에만 만나는 사람에게는 애정이 없다. 그들은 대개 학교, 회사와 같이 이해관계에 묶인 사람들이다. 굳이 애정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으며 요구할 일은 더더욱 없는 지난한 관계. 우리는 이 시간대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할애한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제 몫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상하지 않은가. 낮과 밤은 지구 자전축의 영향을 철저히 받는데. 왜 우리의 하루는 사계절 내내 낮이 더 긴 것만 같지?


밤에만 만나는 사람에게는 애정만 있다. 그들은 대개 어디선가 알게 된 사람들이다. (알고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라.) 오히려 낮에만 만나는 사람들보다 정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며 이성적 관계성이 아예 전무한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는 재미와 오락이라는 말초신경계를 자극하는 쾌락만이 있다. 당연하게 술, 담배가 추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끝은 빨간 얼굴과 쓰린 속, 블랙아웃된 기억과 후회다.


낮과 밤 모두를 만나는 사람은 가족과 친구, 연인이다. 재미없고 편한 사람들.




나는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밤에만 만나는 사람들을 만들게 되었다. 이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한 라이프스타일은 분명하게 아니었으나 이 상황이 부작용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만의 해결책과 돌파구를 찾아내며 잊고 있으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핑계로 내 위주의 밤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 관계는 반대의 성별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서사가 끼어있다. 늦은 밤 피로한 퇴근 뒤에 거무튀튀한 남정네를 만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으니까. 내가 원한 만남은 이성을 빼고 만날 수 있는 이성이었다. 예쁘면 좋고. 착하면 더 좋고. 돈이 많으면 더더욱 좋았다. 그렇다. 섹스파트너, friends with benefit 따위의 단어로 직설적으로, 완곡하게 표현되는 관계가 내게 필요했다.


코로나 시국은 그에 아주 적절한 환경을 이미 마련해놓았다. 그러니 코로나 때문에 만날 사람이 없다는 말은 구조적으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1년 반 만에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이 시대에 더 극악무도한 로맨티시스트가 될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적 경계가 별 것도 아닌 분위기를 실내로 인도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그 상황이 밤을 더욱더 빛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지금 갈 곳이 없는 걸.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진 점도 없지 않다.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우리 나이가 적어도 이십 대 중반에서 삼십 대 초반에 다다를 정도로 닳(?)았는데 말이야. 선수끼리 간 볼 필요 있어? 좋으면 예쓰,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 재밌게 노는 걸로! 퉁칠 수 있는 대범함과 갈급함이 우리에겐 있었다. 어느 한편으론 그 점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구태여 반기를 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어른이란 그런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같은 베개를 베고 잠에 빠져들고 나면 그들은 나의 귀찮음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다. 사회적 인식 때문에 먼저 연락을 건네지 않았을 뿐. 그들의 선톡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것 또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얘가 왜 나를? 이라는 생각보다는 얘도 나를 ㅋㅋㅋ 이라는 오만함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했던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밤의 역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또다시 정의해야만 하는 지루한 관계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리는 무슨 사이야? 너는 왜 날 만나?"라는 말에 에둘러 변명을 해야 했다. "그냥 우리 밤에만 만나면 안 될까?"라는 말이 목젖을 때리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면 뺨을 맞는다는 걸 아니깐. 아니지 잠깐, 그럼 너는 왜 이 늦은 밤에 나를 불러낸 거야? 날카로운 약점을 찾아내어 찌르면 구간 반복의 똑같은 답변만 돌아온다. 아, 진짜 여자들이란.


나도 사람이니 그들에게 전혀 애정이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 구석구석 마음에 드는 점을 억지로 찾아내는 것에는 도가 튼 사람이니까. 애초에 호감이 없었다면 내가 당신을 밤에만 만날 이유도 없었으니까. 다만 '속박'이라는 구태의연한 애정의 정의에 갇힐 생각은 단 1도 없으며 그걸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당신 또한 나를 만나는 중이라 착각하려 했다. 우리 쿨하게 만나자. 그놈의 쿨, 쿨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야 한다.


하지만 두들겨 맞더라도 이 관계는 확실히 '재미'있다. 그러니까 넷상에서나 보이던, 풍문으로만 들리던 불편한 불륜이나 내밀한 프렌드십을 나는 이제 믿는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재미를 찾는, 더 농밀하게 쾌락을 찾는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낮의 찬란함에 밤을 무시하는 사람들 또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내가 변했다고? 네가 나를 잘못 봤겠지.




절친한 친구가 고백한 부모님의 불륜 사실, 내가 겪었던 전 여자 친구의 바람, 그 이외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 곁에서, 특히 술이 더 해진 어떤 관계와 이야기들 때문에 사랑은 실은 숭고하지 않으며 걸레짝에 불과한 감정이란 것을 초라하게 인정했다. 내가 밤에만 만나며 나쁘게 행동한 사람에게 너 또한 나와 다르지 않다고 지레 선언했다. 얘들은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도장을 마음속에 쾅 찍었다.


그렇게 진심을 물어오는 작은 입에 넌덜머리가 났다. 너랑 내 사이에 무슨 진심 같은 말을 대입해. 그냥 우리는 섹스나 하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답글이나 남기는 그저 그런 관계라고. 내 팔로워 숫자에 +1일뿐인 사람이라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치고 싶다. 우리가 무슨 사랑이야 병신같이.


이 글을 쓰며 나와 같은 밤에만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남자가 나랑 자기 위해 만나는지 아닌 지 구별하는 방법>


그걸 뭐하러 구별하려 들어.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건 100%인데. 몇 개 추려 본다.


주중에만 연락한다. (O)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다. (O)

항상 "너무 바빴어"라고 말한다. (O)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X)

섹스가 끝나면 바로 간다. (X)

내 이야기를 들으면 시큰둥하다. (X)


판단은 분명 당신의 몫이나 확실한 건 지금의 우리는 그냥 밤에만 만나는 사이.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은 지배 없이 살 수 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