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법 괜찮은 하루가 진행 중이야, 싶으면 안경닦이 같은 걸 잃어버린다. 사소하지만 그렇다고 잃고 싶진 않은 건데. 금방 잊을 줄 알았는데 비싼 브랜드 안경의 구성품이라 신경 쓰인다. 아까 오른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다 흘렸을지도 모른다. 이걸 어언 2년이나 들고 다녔다. 그러니 더 아까운 거 같다. 일단 가기로 한 소풍은 마저 간다. 다행히 10년 전과 달리 내가 무언갈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크게 나를 괴롭히진 않는다. 천 쪼가리보다 약속이 더 중요하단 것도 안다.
돗자리에 뭔가 묻어있다. 손가락으로 스윽 훑는데 새똥인가 싶어 냄새를 맡아본다. 다행히 진흙이다. 평소라면 검은 계열의 옷을 입었을 테니 더 상관없었을 텐데. 오늘은 하필 밝은색 옷을 입어 이 존재가 좀 거슬린다. 돌아눕다 묻으면 어쩌지. 물티슈 안 가져왔는데. 불시의 재난이 괘씸해 일부러 그 위로 커피를 엎지른다. 섞이면 조금 괜찮아진다. 첫 단추부터 마음이 불편하면 온 세상이 망한 것처럼 망연자실해 일단 망가뜨리고 보는 나 같다. 금방금방 해치우지 않으면 쌓이고 마니까.
올 때와 정확히 같은 길을 밟으며 바닥을 살핀다. 이런 식으로 양화대교 위에서 에어팟 프로를 되찾은 적이 있다. 하지만 녀석은 없었다. 군데군데 초록색 자국이 묻은 더러운 모스콧 안경닦이를 보시는 분은 010-2522-XXXX로 연락주세요. 특별한 사례합니다. 사례는, 점심에 먹은 토마토 콩피 샌드위치. 나랑 꽤 안 맞는다. 콩피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알고 먹으니 좀 낫네요. 맛있어요. 거짓말한 거다. 현주 씨, 미안. 나 아직도 거짓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와.
안경닦이는 내 방 침대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