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eurre noisette
좋은 만화는 절대악을 상정하지 않습니다. <원피스>, <진격의 거인>,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렇습니다. 순수악이면 또 모릅니다. <배트맨 시리즈>가 그렇습니다. 아, 아닐 수도 있겠군요. 히스 레저가 정말로 악의 연대기를 연기했다고 보십니까? 악마의 열매도, 조사병단도, 금속노조도 해답이 아닙니다.
페미니즘 무비로서 이 영화의 의의는 외적 매력을 부정하라, 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구 끝까지 받아들여라, 인데 다들 다른 장면을 본 것처럼 구는 왓챠피디아의 자칭 ‘큰일은 여자가’의 코멘트까지가 이 작품의 결말이자 결론입니다. <서브스턴스>의 비정형 리뷰입니다. 난 울 엄마가 불쌍하지 니들과 딱히 공감 못 한다고 딸바보 세대들아. 세로드립이야, 앞 글자만 봐.
아무 말도 안 됩니다.
여러분도 알고리즘에 피로를 느끼십니까? 어느새 친구들은 인스타그램의 24시간 휘발성 스토리만 애용합니다. 관성적인 저도 그렇고요. 가슴과 엉덩이가 비정상적으로 큰 여자가 춤추는 게 아닌 이상, 여러분의 여행기 따위 스와이프 사이의 쉬는 시간일 뿐입니다. 힙스터는 진작 텀블러로 도망쳤습니다.
2. 후추로만 간하기
재미없는 농담, 여자들은 ‘순수 재미’가 없다니까. 시간이 가는 게 아쉬울 만큼 예쁘네.
누가?
우측보행 하라고 씹새끼들아, 진짜 죽여 패버릴라. 한국인은 단체로 어깨 못 비키는 병에 걸렸나.
누가?
챗GPT에게 위로받는 시대, F는 툭하면 서운하죠. 근데 왜 T한테는 공감 못 해? 그게 무슨 소용이냐.
누가?
동성애조차 하나의 스펙처럼 ‘기재’하는 것.
잡았죠?
3. 오픈 키친
막장 인생들의 뒤없는 야차룰. 심판은 없고, 눈 마주친 관객은 자주 고개를 돌립니다. 더 나빠 보이는 놈의 턱은 싱크대 배수구처럼 뻥 뚫려있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라이트 훅, 참교육! 그곳에다 남은 에너지 전부를 쏟아버리고 맙니다. 혹시나 댓글을 남기면 친구들이 볼까 봐. 좋아요도 없이.
영상 문법을 몰라도, 냄새만 맡아도 승패를 점칠 줄 압니다. 나는 인테르가 챔스 결승에 올라갈 것도 알았죠. 실리카겔이 최고가 될 것도 알았구요. 푸른 피 맛과 쇠 맛은 피로감과 묘하게 닮아서,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이거 내 입맛은 아닌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황급히 수직으로 끄덕이죠.
땀은 기름과 태평양처럼 침대맡을 적시고. 주방장은 흰 타올은 커녕 비슷한 거조차 던지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늘 이기니까. 어디까지나 연습 삼아 싸울 뿐이니까. 팔짱 끼고 관조합니다. 기꺼이 아줌마들이 주도하는 판을 기웃거리면서. 테스형을 찾으며 미스터트롯은 대체 왜 욕해요?
4. 감태
행복의 맛이, 빛깔이, 질감이, 이렇게 단순해도 될까요.
한입에 꿀꺽,
삼키기.
5. 파인 다이닝
산타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해, 게임보이를 소원으로 빌었는데 세계문학전집을 받았다. 그다음 해도 게임보이가 갖고 싶었는데, 과자종합세트를 받았다. 세트는 구성이 알차고 가성비 좋다. 그중 내가 갖고 싶은 건 몇 개 없었다. 사실 하나도 없었다. 포켓몬스터 골드버전이 필요한데.
닌텐도를 샀다. 삼십오만 원. 이제 그깟 거 그렇게 비싸지 않다. <젤다의 전설>이 명작이라길래 두 달 푹 빠져 플레이했다. 패링 조작이 어렵다. 그러나 그거 좀 못해도 가논을 박살 내는 원정에 큰 무리는 없다. 깨고 붙이고 깨고 붙이고 하니 그제야 누군갈 구하는 게 실감 난다.
6. 작은 인간이 오만한 손
형한테 배운 게 고작 동생들한텐 얻어먹는 거 아니야, 라니
그게 스물한 살에겐 얼마나 멋진 말이었는지.
신념 지키느라 등골 휜다.
내 언어는 한없이 허약한 척추.
뱃속 출품작을 끝까지 저주하곤, 마지못해 떠나보낸다.
슬프고 속 시원한 건 이런 데서 동시에 느끼면 안 되는 감정 아닌가.
열렬히 지고 와라 내 자식들,
실존과 허무를 넘나드는 에런 예거,
미카사는 애진작 떠났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로 귀결되는 해답에 언제나 반대표를 던지겠다.
그러면
이 의연함도
의로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