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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29. 2020

올빼미가 된 사람들

밤은 성장의 시간

그 어떤 과학자도 증명하지 못했던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른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24시간은 불공평하게 흐르고 있다. 밤의 시간은 낮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




나는 야행성 인간이다. 그것도 아주 극렬한 야행성 인간이다. 내 20대 초반의 밤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해 할당됐다. 내게 아침은 이 창작욕을 완전연소한 뒤 청하는 보상 수면의 시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올빼미들은 백번 공감하겠지만 이는 현생에서 그리 쓸모 있는 취급을 받지는 못하는 수면 패턴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빨리빨리의 한국 사회와는 결이 다른 게으름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원래부터 그랬다. 엄마 아빠의 강요에 아주 이른 저녁부터 잠에 들어야 했던 유년시절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점차 '강제 기상'에 저항했다. 매 주말마다 산행을 강요하는 아빠의 고성에도 억지로 잠을 청했고 몇 번의 커다란 다툼 끝에 아빠는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간신히 인정했다.


가장 힘든 것은 개학이었다. 밤이 주는 몰입감을 실컷 즐긴 나는 덜컥 다가온 개학 시기에 맞춰 수면 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내가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간 밀어내기'였다. 보통 새벽 5시쯤 잠들어 오후 12시는 돼서야 일어나던 나는 개학 전 주부터 조금씩 잠에 드는 시간을 밀어냈다. 오늘은 오전 7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나고 다음 날은 오전 9시에 자서 오후 4시에 일어 나는 식으로 말이다.


Narith Thongphasuk


그렇게 간신히 아침형 인간들과 비슷하게 일어나게 되면 몸이 피곤했다. 개학 첫 주에 맞이한 주말은 다시 나를 저녁형 인간으로 바꾸었고 내 학창 시절의 월요일은 항상 잠과의 사투였다. 알람을 맞춰줄 시계나 휴대폰이 없던 당시의 나 때문에 괜한 엄마만 고생을 했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둘 중 누가 더 옳고 그른지는 판별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내가 아침형 인간에게 반감을 가진 이유는 그 부류에 속한 몇몇 사람들 때문이었다. 사실 속했다기보단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들은 아침형 인간이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경 과학자 레셀 포스터의 TED 강연에서 등장한 그 유명한 말처럼 아침형 인간과 나의 차이는 단지 그들이 지나치게 '우쭐거린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아침형 인간들은 대개 선민의식에 찌든 '훈수충'들이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말이 험했다. 그들은 대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십새끼'들이었을 뿐이다.


TED


우리와 가까운 아침형 인간의 대표 격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참고로 정치적 견해 때문에 그를 십새끼라고 말한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나는 그가 만든 '환승 제도'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정책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일 버스에 오르며 나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텔레파시로 보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소 4시간만 자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얼리버드'인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에 대한 전기 여러 군데에서는 잠을 최소화하며 기업과 서울시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4시간 수면론'을 찬양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나쁜 것은 그와 같이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식의 논지를 펼치는 '아침형 인간 신봉자'들이다.


1boon - 카카오, <4시간만 자면 충분? 에디슨은 틀렸다>


특히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과 같은 제목의 가십형 글에서 아침형 인간은 주로 소환됐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잠을 언제 자는지 따위가 사람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아침형 인간을 강조하는 아티클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나는 절대 성공 못하겠네? 비슷한 측면에서 '외향성'과 '부지런함'이 동일선상에 있었다.


한국 사회는 '외향성'을 강조한다. 어딜 가든 '인싸'인 사람들이 대우받는 것이다. 사교적인 사람들은 보통 출중한 카리스마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더 성공하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넓은 인맥 풀을 만들 수 있는 본인의 성격을 강조하며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적의 진리를 바탕으로 내향적인 사람들을 패배자로 몰아간다. '부지런함'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아침형 인간과도 거의 합치하는데 보통 한국 사회에서 부지런함이란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서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제시간'에 저녁과 새벽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형 인간이며 외향적이고 부지런한가. 당연하게도 나는 아닌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저녁형 인간이며, 내향적이고, 게으르다. 한국 사회가 디폴트로 떠올리는 '성공하는 인간'의 범주와는 정반대의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새벽을, 신중함을, 여유를 높이 평가한다. 내 기준에서 이것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저녁형 인간의 유명인사에는 데카르트와 오바마, 윈스턴 처칠이 있다. 심지어 데카르트의 경우, 강제로 아침형 인간의 루틴을 따르다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데카르트는 말년에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각종 교습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인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맞춰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무리하게 수면 패턴을 바꾼 그는 스웨덴의 강한 한파까지 겹쳐 정착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듬해 1650년 2월, 폐병을 앓다 사망했다.


그림의 우측 하단, 토론하는 데카르트와 크리스티나 여왕


'내향적'인 사람들은 어떠한가. 우리가 뛰어난 리더라고 앞다투어 칭송하는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워렌 버핏은 모두 내향적인 것으로 유명한 리더들이다. 비록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이들은 보다 신중하기에 분별력 있는 사고관을 갖추고 있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을 위해 깊게 고민하는 성향을 보인다. 어떤 시간대가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의 쓸데없는 고민들은 대개 저녁 시간에 힘을 얻는다. 짙은 밤이 깔릴 때야 우리는 비로소 '생각'을 한다.


믿지 못하겠지만 '게으름'도 성공에 어느 정도 일조를 한다. 이전의 <꼰대가 된 사람들>에서도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현시대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경쟁을 강조한다. 그래서 노동을 신성시하는 지금의 사회 구조 속에서 게으름은 불청객과 다름없다. 하지만 오히려 미루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실제 사례 또한 꽤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마틴 루터 킹의 전설적인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는 마감을 미루고 미루다 만들어진 걸작들이다. 우스갯소리 하나가 떠오른다. 'X 되는 건 내일의 나지 오늘의 내가 아니다!' 실제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욱 번뜩이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트위터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을 가르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도 있다. 주앙 프란시스코의 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차이는 한 개인이 주변 환경을 인지하는 방식과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에 맞는 행동방식을 선택하고 조정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저녁형 인간인 이유는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가장 적합한 수면 패턴을 스스로 선택한 결과가 '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회에 통용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가 얼핏 맞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9 to 5, 10 to 6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침형 인간은 효율성을 넘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더 중요시되는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아침형 인간에 의문을 품는다. 또한,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는 몇몇 기업들은 낮에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은 낮에, 밤에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은 밤에 업무를 맡게 하면서 업무 환경의 구조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하고 있다.


KBS2, <해피투게더 3 - 야간매점>


또한, 라르센의 연구에 따르면 아침형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기에 무난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사교성의 측면에서는 소극적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모험심이나 위기에 처했을 때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능력도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앞서 보편적인 성공의 요소라고 느껴졌던 '아침형 인간'과 '외향성'의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실은 사교적인 측면에서 소극적이라니. 어쩌면 사회가 만든 '성공하는 사람'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인간상은 아닐까.


반면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마르코 파브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침형 인간은 좌뇌, 저녁형 인간은 우뇌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주앙 프란시스코의 연구 결과와 달리 개인의 사회적 선택보다는 유전적 성향에 그 주요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잠을 얼마나 잘 잤는가'를 더 중요시 여긴다. 자기에게 맞는 수면의 최적 조건을 찾아내 아침형 인간이든 저녁형 인간이든 일정 패턴을 만들라는 것이다. 언제 자느냐가 아닌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저녁형 인간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아침형 인간 신봉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나 잘 자세요.




오랜 시간 음원 차트 1위를 점령했던 우원재의 <시차>에는 이러한 가사가 등장한다.


내 새벽은 원래 일몰이 지나고
하늘이 까매진 후에야 해가 뜨네
내가 처량하다고 다 그래
"야 야, 난 쟤들이 돈 주고 가는
파리의 시간을 사는 중"이라 전해
뭐를 하든 경쟁하라 배웠으니
우린 우리의 시차로 도망칠 수밖에
이미 저 문밖에는 모두 그래
‘야, 일찍 일어나야 성공해, 안 그래?’
맞는 말이지 다
근데 니들이 꿈을 꾸던 그 시간에
나도 꿈을 꿨지
두 눈 똑바로 뜬 채로


이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가진 '밤'에 대한 낭만을 보편적인 표현을 통해 잘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곡을 만든 우원재와 로꼬, 그레이는 그들 각자의 밤이 다른 사람들의 낮과는 다른 '시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같은 곳에 있어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우원재 - 시차 (We Are) (Feat. 로꼬 & GRAY)


우리는 본능적으로 밤의 힘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눈을 '뜨는' 시간은 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 아침도 여전히 학교를 가야 하며 직장에 출근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의 개성을 가능한 감춰야 하는 이 낮의 시간대는 슬프지만 '머무르는 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낮은 밤보다 긴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롯이 내가 되는 이 밤의 시간대는 너무나도 짧다. 암순응에 익숙한 올빼미는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장한다.


나 또한 여전히 밤을 지새우며 나만의 시차를 가지고 성장할 것이다. 때때로 아침형 인간들은 이러한 차이에 지나치게 우쭐댈지도 모르지만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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