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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Oct 13. 2022

망상을 고치는 법

나에게 올바른 질문하기

호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유독 일본 사람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마 여태까지 40번도 넘을 것이다. 나는 일본인이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1. 내가 진짜 일본인처럼 생겼다. 거나

2. 내가 일본인 성접대 여성처럼 생겼다.


두 가지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해석이 된 것은 암암리에 일본인 성접대가 호주에서 유명하기 때문이란다. 한국 나이 30살이 넘는데 비자를 잘 안 내주는 이유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유학원에서 듣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이냐는 질문에 엄청 민감하게 되었다. 내가 혹시 그렇게 가벼운 여성으로 보이는 것인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니 이 자유로운 나라임에도 여름에 몸을 꽁꽁 싸매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사실 결정적인 일이 있었는데 집 앞 가게에 김밥 한 줄을 사려 가벼운 옷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떤 인도 남자애가 나를 보더니 '너 사이드잡 갖고 싶지 않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사이드 잡이 다르 잡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질문이 매우 섹슈얼하게 느껴져서 불쾌함을 느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분노한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한 인도 남자애는 줄행랑을 쳤다.


나는 그 이후부터 여름에도 노출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그해는 유독 일본 사람이냐고 차를 새우고 쫓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길가다가 나를 멈추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이지 노이로제가 걸릴 거 같았다.


그렇게 피해망상이 젖어갈 때쯤 내가 왜 이렇게 민감한지를 명상을 통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 성범죄가 많은 도시에서 자랐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어머니가 지난밤 일어났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등학교 때는 외국인 노동자분이 우리를 쫓아오기도 했다.

내 친구는 변태한테 몹쓸 일을 당하기도 했다.

나도 대학교 때 등교하는 길에 변태를 보기도 했다.

27살쯤 회사 때문에 독립해서 살 때 어떤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며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했다.

가끔 골목에 술 취한 남자가 바지를 벗고 노상방뇨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 공포로 저녁에 집에 귀가할 때는 항상 남자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하면 범죄율이 많이 낮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축척된 기억들이 지금의 공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명상을 통해 물었다. 

'그래서 네가 직업여성이야?'

'아니지'

'그럼 왜 이렇게 민감한 거야?'

'나의 기억이 현재를 왜곡된 현실로 보는 거 같아'

'그럼 너도 잘 알고 있네. 그리고 이렇게 일어난 일들이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 기억을 놔줘.

누군가 너에게 말을 붙이거나 일본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건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지 직업여성이라서 물어본 게 아니야.'


그 말이 맞았다. 호주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일본인이냐는 계기로 나와 계속 대화하고 싶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내 클라이언트에게 들었다.

'네, 일본인처럼 생기긴 했어요.'


이 말이 나에게 의외로 큰 위로가 되었다. 진짜로 내가 일본인처럼 생겨서 말을 붙이는 거지 섹슈얼한 이유 때문이라고 내가 망상을 했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이제 누군가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거나 관심을 보이면 자신 있게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내가 좀 이쁜가 봐!'

희한하게도 내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자마자 나에게 더 이상 일본인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졌다. 너무도 신기할 정도로. 오히려 한국사람이냐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정말 명상은 나를 치유하는 특별한 의식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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