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와서 가을과 겨울과 봄. 그리고 다시 여름 다른 겨울이 지나니까지
#1.
꽤나 한적한 곳이었다. 카페의 특성상 한참 사람이 붐비는 점심시간 때에는 꽤나 손님들이 붐비고, 퇴근 시간 이후로는 근처 주민만 오고 가는 별 특색 없는 동네 카페였다. 바로 옆에는 전화국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그나마 그 라인에선 랜드마크 같은 카페였다. 중저가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매장이었지만 브랜드 자체의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처음엔 전화국 내에 위치한 직원들의 카페테리아로 쓰이는 카페인 줄 알았다.
건물 외벽은 빈티지하게 보이는 벽돌로 되어있었고, 꽤나 예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인 것 같았다. 외벽들 사이 커다란 통유리 덕분에 밖에서도 안이 잘 보였지만 조잡하게 스티커로 한 번도 유심히 본 적 없는 영어단어들을 박아놓아서 보기에 썩 좋지는 않았다. 차라리 텅 비워 통유리만 있었더라면 심플한 느낌은 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볼 때마다 했다.
현관문 앞에는 테라스가 있었는데 봄이나 가을에는 기분 좋게 앉아있을 수 있는 테라스였다. 난 테라스의 가장 구석을 자주 이용하였는데, 암묵적인 흡연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건물 자체가 금연건물이라 법률상으론 불가능했지만 동네 카페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그래도 테라스를 관리하는 느낌은 내기 위해서 이따금씩 계절꽃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하였는데 그다지 관리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날이 좋을 때, 손님이 없으면 그곳에 앉아 그냥 멍하니 있는 것을 즐겼다.
내부는 외부에 비해서 생각보다 넓은 편인데 특이하게 천장이 아주 높았다. 외부의 빈티지한 인테리어를 보았을 때 내부도 그런 걸 노렸는지 같은 느낌이 나게 해 놓았다. 천장에는 덕트가 다 드러나있고 여러 배관들도 그냥 노출되어 있었다. 이것까지 인테리어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는데 요즘 느낌으로 힙한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냥 천장 마감할 돈이 부족했었나 싶은 없어 보임이었다. 메뉴판은 혹시 몰라 이것도 준비해봤어요 아니면 이거는 어때요? 그럼 저거는? 같은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장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이곳의 분위기를 사랑했다. 바로 옆에 시장이 있어 연령대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가끔씩 오는 무례한 노인들로 하여금 짜증도 났지만, 크게 내세울 것 없는 동네의 그저 그런 카페에 있는 편안함이 좋았다. 과하지 않았고 자극적이지 않았다. 현란하려 하지 않아서 좋았고 볼품없어서 정이 갔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것을 좋아한다 했던가, 어쩌면 나는 그 카페가 나 같아서 좋았나 싶다.
처음 일하기로 하고 교육을 받을 때 나를 가르쳐주었던 건 유민이라는 분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3살 어렸고 피부가 무척이나 하얗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있을법한 친근하고 선해 보이는 사람, 게다가 자기 일까지 똑 부러지게 해서 모두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다. 한 이틀 정도를 교육을 받았는데 기본적인 카페 업무는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세부적인 레시피와 자재들 위치 정도만 파악하면 됐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는데 TV를 정말 많이 보는구나.. 라는것 밖에 남는 게 없었다. 당시 나의 집에는 TV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사람은 좋았지만 나와 크게 잘 맞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유민은 주말에만 일했기에 평일 마감이던 나와는 그 후로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나는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마감 파트타임을 하게 되었다.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가게를 청소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대략적인 큰 쓰레기들을 쓸어내고 걸레질을 했다. 그 뒤 전 파트너와 시답잖은 일상 얘기들을 주고받다가 7시가 되면 나와 같이 일할 마감 파트너가 출근했다. 그렇게 그저 그런 카페의 일들이 마무리가 되면 11시부터는 마감 준비를 시작했다. 온갖 식기류들을 세척하고 매장을 마무리했다. 무더위가 시작할 무렵인 초여름에 와서 가을과 겨울과 봄. 그리고 다시 여름 가을 다른 겨울이 지나기까지 난 그저 그런 카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