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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따 Nov 03. 2020

보게또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이 왔다

아빠는 주머니를 보게또라고 부른다. ‘포켓’의 일본식 발음이 경상도 사투리에 자리잡은 듯 하다. 겨울이면 늘 “보게또에서 손 빼고 걸어라. 안그러면 자빠진다”고 주의를 주셨다. 예전 표현으로는 전매특허, 요즘 말로는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아빠의 단골 잔소리 멘트였다. 가족들마다 그런 단골 멘트가 하나씩 있았다. 할머니는 “다단계하는 친구 사귀지 마라”, 할아버지는 “배 곯지 말고 다녀라”, 엄마는 “인사 잘하고 다녀라”.


언제 그렇게 더웠나 싶게 갑자기 쌀쌀해졌다. 종말만이 도둑처럼 오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자주 도둑처럼 온다. 거리는 저마다 반팔부터 꽤 두꺼운 스웨터까지, 자신의 온도에 맞게 도둑처럼 찾아온 계절의 변화를 맞이한다. 왜 따뜻하게 차려입으면 유행에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까? 너무 오바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체감 날씨보다 얇은 외투를 선택하던 20대를 지나, 유행보단 건강을 챙기는 실속파 30대가 되었다. 감기에 들면 절대 안 돼. 할 일은 산덤인데 최소 이틀간은 생산성이 없는 날을 보내야하는 것도 너무 부담스럽고, 아파서 병원 가는 것도 귀찮다. 따뜻하게 옷을 받쳐입고 외투도 꽤 도톰한 트렌치코트로 골랐다. 얼마전 백화점에서 이월상품으로 싸게 사둔 코트였다.


코트를 입고 가장 좋은 점은 주머니다. 휴대폰과 교통카드를 주머니 양 쪽에 하나씩 찔러 넣고 양 손도 가지런히 넣는다. 가벼운 여름 옷을 입을 때 산뜻함도 좋지만 가을이 오면 이렇게 편리한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을 수 있어서 좋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환절기>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하늘은 애국가에서처럼 높고 푸르다.

아차, 아빠가 주머니에 손 빼고 걸으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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