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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zy canvas Oct 02. 2020

'여긴, 내가 살 곳이 아니야'라고 식물이 내게 말했다

웃자람에 대하여 

나는 분명 다른 것을 심었는데 콩나물처럼 자랄 때가 있다. 마치 무순을 키우는 것처럼 뽀얀 줄기가 길게 자라는 아이. 이 아이는 내게 계속 말하고 있다. 여기 말고 다른 자리에서 키워 달라고 말이다. 


식물이 키가 크다고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다.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라는 식물은 웃자라게 된다. 건강하게 뼈와 살을 채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키만 쑥 웃자란 식물은 줄기가 가늘며 마디 사이가 길다. 생긴 것만 보자면 마치 새싹 채소나 콩나물을 키우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생길 정도이다. 이 상태로 계속 두게 되면 키만 멀대 같은 연약한 식물이 되며 결국에는 위에 나는 잎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자신이 지닌 잎의 무게도 견디지 못하는 줄기라니. 그래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웃자람을 바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웃자람에 대한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흙을 떡잎 바로 아래까지 북돋아 주는 것이다. 

가늘고 길게 자란 줄기는 어차피 식물체를 지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토하여 깊이 묻어준다. 

둘째, 지금 있는 자리보다 빛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는 장소로 옮겨 준다

웃자람은 식물이 지금 자신이 더 많은 빛을 필요하다고, 여기는 적합한 자리가 아니라고 온몸으로 표현해가며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복토해 준 후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옮겨 주면 줄기가 튼튼해지고 마디 사이도 짧아진다. 


웃자람은 장마철에 심해진다. 해가 보이지 않는 흐린 날이 계속되면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은 몸을 길게 빼며 금세 쫑알쫑알 대기 시작한다. '주인, 햇빛 어디 갔어?'라고. 그래서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식물용 LED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텃밭에서는 장마철에 며칠 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금세 웃자라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실내에서 곱게 자라는 아이들보다 성격이 무딘가 보다. '햇빛, 뭐 언젠가는 나지 않겠어?'라는 듯이. 


식물을 키우다 보면 식물이 내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걸어 주는 것을 발견한다. 싱그러운 잎을 내면서 '키워줘서 고마워, 여긴 정말 살기 좋아'라고 말을 한다거나 고개를 힘없이 늘어뜨리며 '목이 말라'라고 말을 한다거나 잎을 떨어뜨리는 '보약이 먹고 싶다'라고 시위를 한다거나. 

매번 모든 순간에 그 말들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 식물의 언어를 이해 해 가는 것 같다. 내가 식물의 말을 이해해가고 있듯이 식물도 내 말을 이해해주었으면. '알아서 좀 잘 클 때도 되지 않았어? 이제 아기 아니잖아'라는 말도 아주 가끔씩,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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