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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zy canvas Oct 12. 2020

어른들이 밭 가장자리에 콩을 심은 이유

버릴 것이 하나 없는 팔방미인 콩

콩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도 첫 해에는 콩을 따로 심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은 작물들-토마토와 오이 위주로만 심고 가꾸었던 텃밭. 묵었던 땅이라 그런지 첫해에도 식물들은 잘 자라기는 했지만(잡초도 함께 잘 자랐다) 열매는 그다지 많이 수확했다고 할 수 없었다. 특히 오이의 경우 꽃은 많이 피었지만 열매가 잘 달리지 않았고 심지어 기형으로 자랐다. 식물이 열매를 달고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뭔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해를 보내고, 동네 어르신들이 가꾸는 텃밭을 견학삼아 구경하였다. 한시도 밭을 놀리지 않고 겨울에 심었던 마늘을 수확한 자리에 초 봄에 심는 작물을 심었다가, 초봄 작물을 심고 그걸 수확한 후에는 그 자리에 당근이나 깻잎을 심는다. 그리고 당근과 깻잎을 수확하고 나면 그 자리에 파를 심으신다. 동네 어른들의 밭을 보다 보면 '아 지금은 이걸 심을 때구나'라고 알아차리고 얼른 따라 심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 내가 심고 싶은 계절에 심고 싶은 작물을 심긴 하지만.

어른들의 텃밭에는 각자 심으시는 작물이 조금씩은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밭 가장자리도 비우지 않고 콩을 빼곡히 심으신다는 것. 텃밭이 아니라 과수원도 마찬가지였다. 과수원의 가장자리, 그러니까 울타리를 쳐 둔 곳으로 콩을 쭉 심어 두셨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모두 콩을 좋아하셔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밭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콩을 심는다는 것이었다.

생태 텃밭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 가지 작물이 하는 다양한 역할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 콩은 정말 팔방미인으로 인간들에게는 영양이 풍부한 열매를 제공하고 토양에는 질소를 공급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영양소이다. 열매를 잘 맺게 한다. 특히 오이는 질소가 부족하면 모양이 휘어지게 자란다. 이처럼 콩과 식물은 뿌리 부분에 작은 혹이 달려 있는데 뿌리혹 박테리아라고 불리는 미생물이 공기 중에 질소를 다른 생물들이 사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 토양에 고정시켜 준다. 그럼 비로소 그 주변의 식물과 미생물들이 그 질소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콩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뿌리에 기생하는 뿌리혹 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해 주고 콩이 시든 다음에는 콩 대를 태우거나 말려 다시 밭에 뿌려 주는 등으로 콩이 가지고 있던 영양분들을 다시금 토양에 환원시켜 준다. 콩의 열매뿐 아니라 콩이라는 식물 자체를 텃밭에 활용하는 것이다.

텃밭에 콩과 식물을 많이 키우고 있으면 따로 노동력을 들여서 질소비료를 줄 필요가 없다. 이런 인공적인 비료는 일시적으로 식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화학 물질을 토양에 남아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거나 다른 미생물들을 죽일 수도 있다. 화학비료를 주는 대신 콩과 식물을 키운다면 토양도, 식물도 건강한 생태 텃밭을 만들 수 있으며 비료를 사서 밭에 주는 수고도 덜 수 있다.

생태 텃밭의 목적은 잡초가 우거진 정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텃밭에서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을 보존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돕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연이 일 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수고를 더는 데 있다. 생태 텃밭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토양 생물과 자라는 식물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식물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것뿐이다. 노동력을 줄이면서 텃밭을 가꿀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서 올봄에는 크림슨 클로버(역시 콩과 식물)를, 그리고 여름에는 여러 가지 콩 씨앗을 밭에 심어 주었다. 세 걸음이면 끝나는 손바닥만 한 밭이어도 작지만 그 안에서 견고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ABOUT 콩

콩과 1년생 초본

종류에 때라 발아부터 수확까지 90일에서 200일까지 다양하다.

늦서리의 피해가 없고 토양 온도가 15℃이상이면 파종이 가능하다. 보통 4월 말부터 파종

실내에서 키우는 경우는 상관없지만 실외에서 키우는 경우 직파할 때 새들이 콩 씨앗을 먹어버리는 수가 있으므로 발아할 때까지 비닐이나 한랭사를 덮어두거나 아예 모종까지 키운 후 옮겨 심어 주는 것이 좋다.

콩이 감고 올라갈 수 있는 지주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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