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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zy canvas Oct 18. 2020

잡초와 잡초가 아닌 것의 애매한 경계 - 유홍초

잡초가 있다.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텃밭에 뿌리를 내려서 자라는 식물. 이게 또 유용하게 쓸모가 있다거나 먹거리를 생산한다거나 하면 좋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이런 식물(대부분 풀)을 잡초라고 한다. 잡초라는 이름은 사람의 편의에 따라 멋대로 이름 붙인 것이다. 자기가 심은 식물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심지어 애지중지 키우는 식물의 앞길을 가로막기도 하는 것 같아서 눈에 보이는 족족 뽑고 독한 약을 뿌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 텃밭 생물들의 입장에서는 잡초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땅에 뿌리내려 자라면서 토양을 피복해 흙이 건조해지지 않게 만들어 주고 그곳에서 꽃을 피워 다른 벌레들이 모여들게 하고, 깊게 뿌리를 내려서 토양 아래쪽에 있는 영양분을 지표로 끌어올리는 선구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생태 텃밭을 알게 된 뒤부터는 '쓸모없는 풀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텃밭을 가꾸고 있다. 내가 심지 않은 풀이 자라면 어느 정도 자라게 두었다가 가끔씩 짧게 베어내고 그 자리에 두어 토양을 피복한다. 혹 그중에 조금 관심 가는 새로운 풀이 자라면 또 자라게 그냥 둔다. 그렇게 키운 것이 둥근 잎 유홍초.

둥근 잎 유홍초는 채소를 심은 담벼락 아래 자라고 있었다. 처음에는 잎사귀가 콩같이 생기기도 하고 덩굴로 자라길래 '혹시 콩인가?'싶어 자라도록 두었는데 이게 담을 타고 올라가 옥상까지 자라났다. 몇 줄기 안 되는 것 같았는데 담 한쪽을 무성히 덮을 만큼 자라기도 했다. 그냥 두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꽃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꽃을 본 순간 둥근 잎 유홍초라는 것을 알았다. 유홍초(정확히는 새깃 유홍초)를 키우고 싶어서 씨앗을 얻었는데 밭에서 둥근 잎 유홍초가 자라고 있으니 아주 조금은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둥근 잎 유홍초의 꽃들을 감상하였는데 10월이 되니 낙엽이 지고 꽃이 피었던 자리에 작은 열매(씨앗)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씨앗 달린 것을 보니 괜히 잡초라고 한 게 아닌 모양이다. 채종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렇게 많이 달려도 되나 싶을 만큼 다글다글 하게 씨앗이 맺혔고 채종을 하지 않아도 마르면 알아서 땅에 떨어지기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 씨앗들이 내년에 몽땅 발아한다면 텃밭은 유홍초 천지가 되겠지. 괜히 일부에서는 생태 교란종이니 뽑아 버려야 할 잡초이니 한 것이 아니었다.

가을이라 옥상 채광도 확보할 겸, 씨앗도 정리할 겸 해서 둥근 잎 유홍초를 정리해 주었다. 담을 타고 올라온 줄기를 가만히 보니 질기기도 하고 튼튼해 보여서 리스 틀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열심히 키워서 줄기를 수확한 느낌이다. 그리고 나머지 잎들과 짧은 줄기는 한쪽에 모아 두었다. 잘 말렸다가 잘게 잘라서 텃밭에 피복용으로 덮어 주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런 풀들로 토양을 피복해 주면 토양의 수분이 쉽게 마르지 않아서 한여름철에도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다. 생 풀을 잘라서 두어도 되지만 찝찝하다면 풀을 한쪽에 모아두어 잘 말린 뒤 작게 잘라서 텃밭 위에 뿌려 주어도 좋다.  이렇게 되면 나에게는 잡초가 아닌 게 되는 건가?

쓸모는 부여하기 나름이다. 누군가에게는 잡초라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어차피 그런 아이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랄 것이니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쓸모를 부여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특정 식물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 농약을 뿌려 흙도 죽이고 벌레도 죽이기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특정 식물 혹은 벌레만 죽이는 약은 없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개체들을 죽여버린다. 심지어 익충들도)

아마 내년 봄에도 유홍초가 올라올 것 같다. 내가 거두기 전에 떨어진 씨앗들이 보나 마나 상당할 테니까. 내년에는 일부는 씨앗을 맺기 전에 잘라 피복재로 사용하고 일부는 길러서 새로운 리스틀을 만들어야겠다.


 ABOUT. 둥근 잎 유홍초

메꽃과 한해살이 덩굴 식물

원산지 : 열대 아메리카(현재는 귀화 식물이 되었다)

씨앗을 스스로 떨어뜨려 매년 자연 발아한다 - 둥근 잎 유홍초가 매년 자라는 것이 싫다면 꽃이 피기 전 줄기를 잘라 주는 것이 좋다.

덩굴이 3m 이상 자라며 주변의 다른 물체를 왼쪽으로 감아서 올라간다.

환경과 토양을 가리지 않고 웬만한 곳에서 모두 잘 자란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주황색의 작은 나팔꽃 모양과 같은 꽃이 핀다.

꽃말은 사랑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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