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zy canvas Dec 02. 2020

눈앞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텃밭의 장미

장미야 미안.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려 했나보다. 

세 걸음 텃밭 가장 구석 좁은 자리에는 이사 올 때부터 작은 관목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이전에 살던 분이 심어 두고 간 식물이었다. 봄이 되니 그 식물에 잎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혹시 장미인가?


장미가 자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던 시기였다. 그래서 주변에 장미 가지 꺾어 올 곳 없나 찾고 있었는데 텃밭 구석에서 왠지 자라는 모양새가 장미 같아 보였다. 


'장미면 완전 땡큐인데!'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보내고 있었는데 동네에 피는 장미들이 다 피고 질 때까지 그 아이는 장미꽃이 피지 않았다. 심지어 잎은 병이 들었고 한창 옆집 텃밭에서 자라고 있던 깻잎과 우리 집 텃밭의 유홍초, 토마토의 정글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 (세 걸음 텃밭과 옆집 노부부의 텃밭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아이였는데 꽃이 피지 않아 실망을 했고 그대로 다른 식물들 틈바구니에 묻힐 때에도 그냥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기대했던 장미가 아니었고 너무 지저분하게 자랐으며 꽃도 피지 않고 제대로 자라지도 않았기 때문에 올 겨울이나 내년 봄 사이에 뽑아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 많던 가지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아침에 나가보니 줄기가 모두 잘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줄기만 남고 모두 정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옆집 할아버지가 자신의 깻잎들을 수확하면서 내 텃밭 구석에서 숨어 자라고 있던 이 아이를 발견하고는 가지를 몽땅 잘라 내셨다.  


'뭐지, 왜 잘라내신 거지? 내 텃밭에서 자라고 있던 건데?'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는 잘린 가지들을 보았다.  줄기 마디마디에 가시가 있었다. 이 아이는 장미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그냥 댕강 잘라 버린 것이 아니라 가지 정리를 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10월 말, 옆집 할아버지네 담벼락엔 장미꽃이 피어 있다. 


옆집 할아버지네 담벼락에는 장미가 멋지게 자라고 있다. 마치 나무처럼 한 줄기가 담 아래에서 자라서 담을 넘어갈 높이쯤에서 가지가 갈라져 장미가 많이 열린다. 봄과 여름에 집 앞을 오갈 때마다 부러워하면서 조금 더 친해지면 가지 몇 개만 잘라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장미를 키우신 할아버지가 내 밭 구석에서 다른 식물들 사이에 끼여 햇빛도 못 보고 병들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장미를 발견하시고는 깨끗하게 정리를 해 주신 것이었다. 내년 봄에 잘 자라라고 수형도 멋지게 잡아 주셨다.  

내가 키우고 싶었던 장미였음에도 내가 생각하고 원하던 모습이 아니어서 눈앞에서 자라는 장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단번에 알아보신 것이다. 나름 정체를 밝혀 내겠다고 열심히 살펴봤는데 이렇게 무안할 수가.  뭔가, 할아버지에게는 감사하고 장미에게는 미안한 기분.  (사실 이 장미는 너무 빽빽하게 심겨 있어 줄기 사이가 제대로 통풍이 되지 않아 잎이 상하고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


한동안 잘 정리된 장미 가지와 그 아래 잘린 (정리된) 장미 가지를 보고 있다가 잘린 가지 중에 일부를 골라  삽목 할 준비를 해 주었다. 내년에는 텃밭에서도 키우고 또 화분에서도 키울 생각이다.  내년에는 내가 보고 싶고 기대하는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잘 살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대 인디언의 지혜로 작물 키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