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강의를 하시는 '최진석'교수님의 말씀이 나를 치료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궁금해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얻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할 때, 별처럼 빛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나에게 놀라운 위로가 되었던 것은 세 번째 문장이었다.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말은 커다란 위안과 동시에 늘 따라다니던 물음표 하나를 지워주었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 맞아! 이건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야. 그리고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지.'
마치 지금까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돛단배인 줄 알았다가 다른 배들을 발견하고 느끼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빨리 안 눌렀다고 짜증 낸 아저씨에 대한 분노, 내가 보낸 카톡이 혹여 예의가 없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짜증 나게 했던 과거 기억의 파편들,,,
'나는 이런 것들로 치열했구나!'
이제껏 나는 승리도 패배도 없는 전쟁터에서 혼자서 화내고 상처받으며 싸우고 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나는 도대체 몇 근이나 소비한 걸까?'
정작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 중요한 일에서, 나는 스스로를 한없이 내려치기 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그걸 못 찾았어? 가망 없어. 그만 생각하고 적당히 살아.' 쉽게 타협하고 그 골치 아픈 생각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서 나는 나를 올려 치지 못해 분해하고 억울해했다. 혹시 무시라도 받았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공허했던 저울의 한쪽에 이제 '나를 향한 이해의 추'를 좀 올려놓기로 했다. 꽉 차서 한 참 기울어진 반대쪽 저울에서 추를 좀 걷어내고 말이다. 높낮이를 조정하니 포장이 훨씬 더 그럴 듯 해졌다. 나는 이제 감정의 무게를 나를 위한 쪽에 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