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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Mar 03. 2021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

보고 싶은 소중한 사람

2018년 04월 08일.


나를 사랑해주셨던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날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슬픔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유독 하루가 고단할 때 할아버지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집안의 첫 손자이자 동시에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가족의 이쁨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그중에서 할아버지가 유독 날 무척 예뻐하셨다. 다른 사람한테는 무뚝뚝하시더라도 나한테는 당신의 모든 사랑을 베푸셨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곳곳에 할아버지와 함께 찍힌 사진이 많다. 조그마한 나를 할아버지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시다.


할아버지와 함께 동네 공원을 걷고 비둘기에게 과자를 나눠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배고프다고 투정 부리고 울어도 할아버지는 늘 웃으면서 안아주셨다. 길가다 멋있는 장난감을 보고 걸음을 멈추면 몇 개라도 사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애 버릇 나빠지면 어떡하냐고 성화를 내셨다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면서 나를 안으셨고 한다.


시간이 흘러 내가 초등학생에 입학할 때쯤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당시 조부모님 댁과 내가 사는 곳이 왕복 2시간은 족히 넘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일이 끝나시고 매일 나를 보러 우리 집에 오셨다. 바쁘시면 전화라도 꼭 하셨다. 오실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 빵 등을 사 오셨다. 숙제를 끝마치면 함께 놀이터에 가서 놀거나 동네를 산책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무척 좋았다.


그러다가 부모님 일이 다시 바빠지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조부모님 집에서 다시 살게 됐다. 난 오히려 좋았다. 예전부터 살던 곳이어서 익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두 분께서 워낙 잘 챙겨주셨기에 학교 생활도 빠르게 적응하며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 어느 순간 귀찮아진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은데도 자꾸 방으로 들어오셔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거나, 주말에 목욕탕에 가자고 말씀하시는 것 등이 싫었다. 난 내 방에서 게임을 하고 싶었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여타 사춘기 학생들이 겪는 것처럼 나도 가족 외의 것들에 더 흥미를 느꼈다. 


철이 없었던 나는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다가올 때마다 짜증을 부렸고 어쩔 때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아마 당신께선 무척 속상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으시고 늘 웃으시면서 내 기분을 풀어주셨다. 내가 어떠한 태도로 나와도 할아버지는 항상 날 감싸주셨다. 성적이 안 나와 속상할 때는 옆에서 몇 시간이고 다독여주셨고, 아플 때는 밤을 새우시면서 내 곁을 지켜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이 소식을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얼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고 난 넋이 나간 상태로 책가방을 챙긴 후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도착하니 이미 가족이 와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으셨다. 언제나 강인하신 할아버지가 그날 유독 작아 보였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사고가 나고 엠뷸런스를 타고 오시는데도 내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손자 걱정하면 안 되니 학교 수업 다 끝나고 전화하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아버지 앞에서 크게 울었다. 그런데도 내 손을 꼭 잡으시곤 빙그레 웃으셨다. 오히려 날 위로하시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때의 위로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온기로 남아있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이 되었다. 졸업 후 생각보다 취업이 안 돼서 고생하던 때였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매일 밤을 지새울 때마다 할아버지가 내 옆에 계셨다. <걱정마라, 우리 손자처럼 잘난 사람을 뽑지 않았으니 후회할 것이다, 이 할아비가 보장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넌 나에게 보물이다, 아주 잘하고 있으니 천천히 해라, 내 복을 너에게 다 줬으니 분명 잘 될 것이다> 누구보다 진심이 가득 담긴 말씀을 해주셨다. 


정말 할아버지의 응원이 통해서일까. 원하던 기업에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다. 이제 마지막 신체검사만 남은 상태였다.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최종 합격과 다름없었다. 우리 집안은 다시 행복으로 넘쳤다. 할아버지는 드디어 우리 집 장손이 사회인이 됐다며 주변 분들한테 자랑하고 다니셨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합격 발표일 이주일 전. 나와 조부모님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점심을 같이 먹고 할아버지께서 피곤하시다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거실에서 TV를 보셨고 나는 내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방으로 들어가신 지 한참이 지나셨는데도 나오질 않으셨다. 할머니께서 부르셨지만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나와 할머니는 할아버지 방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찬 공기가 느껴졌다. 밑을 보니 할아버지가 바르게 누워계셨다. 눈을 감은채 옅은 미소를 띠고 있으셨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목 주변을 만졌는데 맥박이 뛰질 않았다. 손 발은 차가웠다. 난 당장 119에 전화했고 소방대원의 안내에 맞춰 심폐소생술을 했다. 할머니는 패닉에 빠지셨다.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손등에 눈물이 떨어졌다. 제발 깨어나시라고 소리를 지르며 안간힘을 썼다. 내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뒤덮였다. 몇 분 후 소방대원들이 왔고 그들은 들것에 할아버지를 실어 인근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난 할머니와 다른 엠뷸런스 차를 타고 뒤따라갔다. 그날따라 비가 내렸다. 엠뷸런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닥이 빗줄기에 의해 축축이 젖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나오더니 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셨고 나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일까.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우리의 슬픔을 알기라도 하듯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하늘은 검게 그을렸다.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했다. 할아버지께선 유독 다이어리에 글을 많이 쓰셨다. 시시콜콜한 일기부터 가계부, 그날 날씨, 읽으신 책이나 신문 감상평 등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장씩 넘겨보다가 하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2018.01.14. 일


내가 사랑하는 손주가 요즘 힘들어한다. 취업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면접을 보러 다니던데 잘 풀렸으면 좋겠다. 

이놈들, 인재를 못 알아보는구나. 얼마나 잘난 녀석이거늘.

오늘 저녁에 고기를 먹었더니 복돌이 낯빛이 나아진 듯하다.

복돌이에게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있기를.


사랑한다 우리 손주. 



난 할아버지에게 받기만 했다. 당신께선 상황이 어떠하든 늘 나를 사랑해주셨다. 이제 번듯한 직장도 가져 제대로 된 효도를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할아버지와 이별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간 짜증 부리고 툴툴거리기만 한 나의 못난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다이어리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 가슴이 저미는 슬픔에 짓눌려 하염없이 울었다.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같이 찍었던 사진을 꺼내서 본다. 돌아가신 지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옆에 계시는 듯하다. 빛바랜 사진 속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비록 하늘에 계시지만 항상 나를 지켜주고 있으시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할아버지한테 못한 효도를 할머니와 부모님에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이별로 마음의 아픔은 있었지만 내적으론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가족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으며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음을 배웠다. 


떠나가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러니 내 옆에 소중한 누군가가 있을 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 나에게 작은 소원이 있다. 바로 다음 생에도 할아버지 손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번 생에 못다 한 효도를 마음껏 해드리고 싶다. 할아버지와 걸었던 공원도 걷고 바삭한 과자도 먹을 것이며, 평소 좋아하시던 브랜드 옷도 부족함 없이 사다 드릴 것이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드릴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 무슨 말을 처음으로 할지 생각했다.

아마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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