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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Sep 12. 2020

편입 공부에서 배운 '할 수 있다' 정신 (1)

이 악물고 버티면 된다

'코지오님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2년 2월. 나의 대학 편입 시험 합격 문자.

이날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버티고 버텼더니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나는 2010년에 2년제 전문학교로 진학했다. 허리디스크 재활 치료를 받느냐고 수능을 보지 못했다.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앉아서 공부를 하는 건 위험했었다. 병원에서도 디스크와 신경이 안정될 때까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무엇보다 치료 과정에서 너무 많은 돈을 썼기에 재수를 할 형편이 못됐다. 설상가상 갑자기 부모님 일도 안 풀리셨고 아버지도 건강이 나빠지면서 우리가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숨이 좀 트이나 싶더니 이내 어두운 분위기가 다시 우리 집안을 감쌌다. 결국 몸을 조금 더 다독이고 집안 형편에 맞춰서 학교를 골라야 했다. 찾아보니 면접과 그간의 내신 성적만 가지고 신입생을 뽑는 곳은 '전문학교'뿐이었다.


  고졸로 있기엔 그래서 2년제 전문학사라도 따고 사회에 뛰어들고자 마음먹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호텔업'에 관심이 있었기에 관광학과를 중심으로 학교를 알아봤다. 그중 평이 그나마 괜찮고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해 입학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렇게 나의 2년간의 전문학교 생활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학교 커리큘럼은 나쁘지 않았다. 4년제 대학에 비하면 조금 더 실무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취업 후 업무 적응에 이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뭔가 아쉬웠다. 어디가 문제일까... 계속 생각을 했더니 답을 찾았다. 바로 '학업'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 스스로도 4년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그러질 못해 선택해서 온 곳이 전문학교였다. 애써 외면했지만 나는 이미 이에 대해 뭔가 모를 아쉬움과 슬픔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걸 전면으로 마주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다시 수능을 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몸도 꽤 좋아져서 그런지 도전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고등학생 때 반에서 5등 안에 들었던 공부머리였다. 그래서 내가 허리를 다치고 전문학교를 선택했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아쉬워했던 건 나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별 수 있나. 누구에게나 아픈 사정이 있길 마련이니까.


  그렇게 고민에 밤을 지새우며 학교를 꾸역꾸역 다녔다. 몸이 좋아진 건 사실이었지만 한번 크게 다쳐본 기억 때문에 막상 하려니 또 머뭇거리게 되더라. 장기간의 공부는 학교 공부처럼 잠깐잠깐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아니까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장학금 잘 받으며 다니다가 갑작스러운 감정적 소용돌이에 빠져 2010년 막 학기 때 성적이 살짝 떨어졌었다.


  그다음 해인 2011년. 아쉬움을 애써 목 넘김 하며 다니는 학교에 애정을 붙이려고 노력했고 묵묵히 공부했다. 하지만 한번 피어오른 4년제 대학에 대한 미련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런 내 모습을 보고 한 교수님이 눈치를 채셨던 것 같다. 수업 후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셨다.


"코지오군, 잠시 시간 내줄 수 있어요?"


"네? 아 네..."


  나는 교수님을 따라 교수실로 갔다. 창 밖은 3월의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따뜻한 커피를 내어주면서 교수님은 나를 바라보셨다. 왜 날 부르신 걸까. 어색한 분위기 속에 나는 커피만 홀짝 거리며 마셨다.


"음..."


  교수님께서 운을 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 코지오군은 이 학교에 어울리지 않아요. 1년 성적을 보니까 평균적인 학생들보다 좀 월등해요. 본인 기분 좋으라고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안 맞는다는 거죠. 아무래도 2년제는 4년제와 흔히 말해서 약간... 다르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죠? 여기 학생들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아 그렇죠 교수님."


  난 교수님의 속 뜻을 대충 짐작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코지오군. 이 학교 왜 온 겁니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더라. 잠시 침묵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교수님도 내가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나 보다. 그저 따뜻한 미소로 날 지긋이 바라보며 기다리셨다.


"실은 교수님. 저는 좀 아팠습니다."


  이 말을 시작으로 내가 전에 겪었던 일들을 쭉 설명해드렸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교수님께선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눈이 붉어지셨다.


"역시... 그랬군요. 코지오 군은 더 높고 넓은 곳에 있어야 했어요. 지금은 몸은 좀 괜찮은 거죠?"


"네, 중간에 계속 병원 방문하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교수님은 갑자기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니 꽤 긴 시간 뜸을 들이셨다.


"코지오군. 2년제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내가 호텔에서 있어 보니까 백 오피스로 들어가려면 4년제 학위가 필요해요.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이니까요. 내가 봤을 때 코지오군은 프론트에서만 있기에는 아까워요. 단순히 호텔만 보지 말고 조금 더 넓게 봅시다."


-백 오피스 : 호텔의 경영 부서라고 보면 된다

-프론트 : 리셉션이나 F&B, 예약, 컨시어지 같은 업무이다. 통상 '호텔리어'라고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된다.



"해서 하는 말인데, 코지오군. 편입 도전해봐요. 내가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꼭 해봐요."


  마음이 철렁거렸다. 편입...? 내 머릿속에 아예 없었던 선택지였다.


"편입이요...?"


"네 편입이요. 1년 동안 죽기 살기로 해서 내년에 합격 목표로 해요. 어차피 영어 한 과목만 하면 되니까 수능보단 부담이 덜 할 겁니다. 허리 상태 봐가면서 해봐요."


"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


"본인 백만 불짜리 사나이 아니에요? 2% 확률에서 살아 돌아왔잖아요(웃음). 다시 기적 하나 또 만들어봅시다."


  난 교수님의 이 말에 순식간에 동화됐다.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 모를 뜨거운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내일부터 조사하고 바로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날 다독여주셨다. 할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날 배웅해주셨다.






  1년을 고민했던 응어리가 해소되는 데 1시간도 안 걸렸다. 나는 결국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힘든 재활을 이겨냈으면서도 아픔에 대한 쓰라린 기억은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근성이 생겼지만 막상 현실이 안정적으로 변하니 타성에 젖어 나약해져 버린 것이었다.


  병원에서도 이제 많이 좋아졌으니 나쁘지 않다고 했고 남은 것은 나의 의지였다. 그래 해보자. 지금 해보지 언제 해볼까. 떳떳하게 합격해서 나의 소망을 풀어보자. 그리고 가족에게 기쁨을 선물하자.


  2011년 3월. 그렇게 나의 편입 시험 대장정이 시작됐다.




-(2) 부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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