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셔츠에 취했었다. 무심하게 걷어 올린 소매와 흐르는 듯한 실루엣. 그 멋에 매료되어서 친구들이 티셔츠 차림으로 다닐 때 나는 셔츠 차림으로 다녔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셔츠만 입다가 늦가을부터는 자켓, 수트, 코트, 점퍼 등 여러 겉옷과 입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셔츠에 빠져 살면서 나는 어떤 소재가 셔츠와 어울리고, 또 오래 입을 수 있는지를 공부했다. 꽤나 값진 경험이었다.
17세기 유럽에서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당시 귀족들은 값비싼 코트를 입고 다녔는데, 땀과 같은 몸의 노폐물이 코트 안감에 묻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셔츠를 만들었다. 일종의 속옷인 셈이었다. 수 세기가 흘러 지금의 셔츠는 정장에 입는 '드레스 셔츠'부터 자켓 디자인의 '셔켓(셔츠와 자켓의 합성어)'까지 그 모습이 여러 가지다.
디자인이 다양해진 만큼 셔츠의 소재도 다양해졌다. 면, 리넨, 울, 가죽, 합성 섬유 등 많은 소재가 쓰이는데, 이 중에서 '면'이 단연 으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셔츠는 속옷의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속옷은 피부 위에 바로 닿는 옷이다. 따라서 자극적이지 않고, 땀 흡수율이 높은 면이 예로부터 셔츠 소재로 사용되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셔츠 소재=면'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셔츠는 크게 정장 셔츠와 캐주얼 셔츠로 나뉜다.
정장 셔츠
반팔 티셔츠와 더불어 소재의 품질 기준이 낮다. 정장 셔츠를 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루만 입어도 목 뒷부분과 소매 안쪽에 때가 탄다. 빨리 세탁하지 않으면 때가 원단에 깊이 스며들어서 제거하기가 어려워진다. 정장 셔츠는 원단 두께가 얇아서 내구성도 떨어진다. 오염 제거의 어려움, 낮은 내구성. 옷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장 셔츠는 인터넷에서 1~3만 원에 판매하는 셔츠를 여러 벌 구해서 한 철 입는 것이 낫다. 요즘은 구김 및 오염 등 관리의 편의성을 높이고자 합성 섬유를 섞거나, 목 뒷부분에 배색 원단을 덧댄 저렴한 셔츠가 많다. 그런 셔츠는 세탁만 제때 하면 된다.
정장 셔츠에 돈을 조금 더 쓰고 싶으면 '링클프리(Wrinkle Free)' 혹은 '논 아이론(Non Iron)' 처리된 셔츠를 사면 된다. 면에 특수 가공을 해서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만든 셔츠다. 이 가공이 적용된 셔츠는 원단 강도가 소폭 향상되고, 오염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무엇보다 바쁜 직장인들이 다림질할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일반 정장 셔츠보다 수명이 길어서 1년~2년 입는다.
정장 셔츠의 수명은 짧다. 나 역시 셔츠를 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에 다녔었다. 비싼 것도, 저렴한 것도, 별도의 가공을 한 것도 품질과 수명에 큰 차이는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장 셔츠를 입고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간편하고 실속 있는 정장 셔츠가 경제적이다.
캐주얼 셔츠
캐주얼 셔츠는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원단이 있다. 먼저 여름이다. 여름에는 '리넨(Linen-마)'으로 만든 셔츠를 추천한다. 리넨은 '아마(Flax)'라는 식물의 줄기에서 얻은 섬유다. 천연 섬유이며 면과 비교해 약 두 배 질기고 튼튼하다. 또한 리넨은 피부에 잘 달라붙지 않아서 바람이 옷과 피부 사이로 통할 수 있다. 땀 흡수까지 잘되니 여름 셔츠 소재로 제격이다.
그러나 리넨은 구김이 많이 가는 단점이 있다. 그것을 보완한 것이 리넨·면 혼방 셔츠이다. 각각의 장점이 합해져서 구김이 덜 생기고 통기성은 준수한 수준이다. 보통 리넨과 면을 5:5 혹은 6:4 비율로 섞는다. 리넨의 비율이 높을수록 구김이 잘 가지만, 통기성은 높다. 면의 비율이 높을수록 구김이 덜하지만, 통기성은 낮다. 만약 시원하게 입는 것이 최우선이라면 리넨 100% 셔츠를, 구김도 신경 쓰고 싶으면 리넨·면 혼방 셔츠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트윌 원단 (위) / 옥스포드 원단 (아래)
봄·가을·겨울 셔츠는 '트윌'과 '옥스포드' 면 원단이 소재로 알맞다. 트윌과 옥스포드는 소재가 아닌 면의 직조 방식을 뜻한다. 패션 브랜드에서 캐주얼 셔츠 소재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원단이기도 하다. 원단에 힘이 있고 결이 치밀해서 쉽게 헤지거나 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탄탄함의 정도는 옥스포드> 트윌> 일반 면 순이다. 디자인에 따라 다르지만, 옥스포드 셔츠가 트윌 셔츠보다 캐주얼한 느낌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캐주얼 셔츠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옥스포드 셔츠부터 입어볼 것을 추천한다. 더 편하게 입기에 좋을 것이다.
캐주얼 셔츠는 최소 5~6만 원은 투자하는 것이 좋다. 계절별로 2~3벌을 다른 상의와 번갈아 입으면 최소 3년 이상은 입는다. 1~2만 원 대의 저렴한 것은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세탁하면 사이즈가 줄고, 재봉선은 튿어질 확률이 높다. 확실하게 10만 원 이상인 제품을 경험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중저가 셔츠와 비교했을 때 원단 가공, 바느질, 단추 구멍 등에서 품질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셔츠에는 티셔츠와 니트웨어와 다른 단정함이 있다. 왜 그런 것인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찾은 나의 답은 '균형'이다. 목을 수놓는 셔츠 칼라와 수직으로 절도 있게 자리 잡은 단추들과 풍성한 몸의 품이 균형을 이루면서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것이 단정함이다. 드레스 셔츠든 캐주얼 셔츠든 단정함이 공통분모를 이룬다. 태생이 귀족들의 옷이어서 그런 것인가 싶다. 아무튼 나는 그 단정함이 마음에 든다. 셔츠를 입으면 나의 언행도 단정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