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옷질 06화

슬랙스

합성 섬유

by 코지오


ⓒOld Hollywood, Mon Amour via Tumblr



슬랙스는 폴리에스터·레이온 혼방 소재가 입기 편하다.


플란넬 혹은 브러시드 슬랙스는 신중히 선택한다.






슬랙스는 '느슨한'이라는 뜻의 영 단어, Slack에서 유래했다. 뜻 그대로 통이 여유 있는 바지다. 1930년대 미국에서 입기 시작했으며, 세대를 거듭하면서 슬림 핏, 테이퍼드 핏, 와이드 핏 등으로 디자인이 발전했다. 영미권에서는 슬랙스에 포함되는 바지 종류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캐주얼한 정장 바지 스타일을 슬랙스라고 부른다.


슬랙스는 바지 가운데에 정장 바지처럼 줄이 잡혀 있다. 줄이 밑으로 무게감 있게 이어진다. 바지통이 무릎에 걸리지 않고 일자로 쭉 뻗는다. 덕분에 다리가 길어 보여서 옷 태가 산다. 깔끔하게 핏을 잡아주는 이 느낌이 좋아서 나는 슬랙스 애호가가 됐다. 이것저것 사 입다가 지금은 6벌만 남겨뒀다. 봄 여름용 3벌, 가을 겨울용 3벌 총 6벌이다. 두 계절에 3벌을 부지런히 입는다.


현재 가지고 있는 슬랙스의 공통점은 소재가 '합성 섬유'라는 것이다. 전 글을 보면 합성 섬유가 보풀의 근원으로 비쳤다. 그러나 특정 직조 방식으로 만든 합성 섬유 슬랙스는 보풀 없이 입을 수 있다. 합성 섬유의 직조 기술이 발전해서 원단 품질도 향상됐다. 오히려 천연 섬유 소재로 만든 슬랙스가 입기 힘든 경우가 있다.




슬랙스는 생각보다 많은 압력과 오염에 노출된다. 앉아 있을 때는 무릎, 엉덩이, 허리 부위에 힘이 가해진다. 걷거나 뛸 때는 사타구니와 밑단에 마찰이 발생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는 세균과 오염물이, 평상시에는 미세한 몸의 노폐물이 바지 안팎으로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슬랙스의 내구성이 약하고 세탁이 번거로우면, 관리의 난도가 상승한다. 그러므로 슬랙스는 가격대가 부담스럽지 않고, 세탁하기 쉽고, 늘어나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소재로 만드는 것이 적합하다.

그에 적합한 소재가 폴리에스터(Polyester)와 레이온(Rayon)이다. 각 원단의 글자를 따서 'TR 원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폴리에스터는 찢어짐, 주름, 벌레 및 곰팡이에 강하다. 형태 유지력도 뛰어나다. 레이온은 땀 흡수·배출이 빠르고, 성질이 부드러워서 원단이 수려하게 떨어진다. 이 두 가지를 혼방해서 만든 슬랙스가 탄탄하고, 세탁이 편하며, 착용감이 좋다. 가격합리적이다.


울 100% 슬랙스는 합성 섬유 슬랙스보다 압력을 받는 곳과 사타구니, 바지 밑단 등이 잘 해지는 편이다. 울이 마찰에 약하고 늘어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탄력 있고 질긴 울로 만든 울 슬랙스는 튼튼하지만, 가격이 대체로 십만 단위로 뛴다. 그런 바지를 마음껏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울 특유의 질감을 포기할 수 없다면, 울 혼방 슬랙스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합성 섬유가 섞여서 울 100% 슬랙스에 비해 내구성이 높고 가격대는 낮다.


과거에는 울이나 면과 같은 천연 섬유로 만든 슬랙스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은 섬유의 발전으로 합성 섬유로 만든 슬랙스가 많아졌다. 내구성, 활용도, 디자인, 가격 접근성 등에서 천연 섬유를 앞지른다. 또한 재생 폴리에스터와 재생 레이온으로 만들어져서 환경 보호에 일조하는 슬랙스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합성 섬유 슬랙스는 분명 괜찮은 옷이다.


표면이 매끄러운 원단 (좌) / 표면에 털실이 일어난 원단 (우)


소재 외에도 '직조 방식'을 확인해야 한다. 직조 방식은 원단 표면을 보면 알 수 있다. 표면이 매끄러운 슬랙스가 보풀이 덜 생긴다. 반면 원단 털실을 보송보송하게 직조한 슬랙스가 있다. 대게 '플란넬(Flannel)' 혹은 '브러시드(Brushed)' 슬랙스라고 부른다. 이런 슬랙스는 마찰이 발생하면 털실이 뭉치면서 보풀이 일어날 수 있다. 보풀은 구르면서 주변 털실을 끌어당긴다. 이때 원단 표면이 깎인다. 깎일수록 원단이 얇아지고 바지의 강도는 떨어진다. 플란넬·브러시드 슬랙스는 니트웨어처럼 관리해야 깔끔하게 입을 수 있다. 신중하게 구매할 것을 권한다.




내가 슬랙스를 처음 구매했을 때가 2013년도였다. 당시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슬랙스가 출시되었다. 소재는 울(혼방)과 합성 섬유로 갈렸다. 나는 고민 없이 울 슬랙스를 구매했었다. 울의 고급스러움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며칠 입어보니 울 슬랙스는 단점이 많았다. 손세탁도 할 수 없었고, 한 해 지나면 무릎과 허리가 늘어났다. 사타구니에 보풀도 가득했다. 가격이 한 두 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속상해하던 찰나, 친구의 소개로 합성 섬유 슬랙스를 접했다. 전혀 다른 옷이었다. 막 입어도 멀쩡했고 손세탁이든 기계 세탁이든 가리지 않았다. 옷이 늘어나는 현상도 별로 없었다. 전에는 슬랙스를 입을 때마다 신경이 온통 바지로 쏠렸었다. 옷이 사람보다 위였던 것이었다. 지금은 걱정 없이 입고 다닌다. 슬랙스는 애초에 일상에서 편하게 입기 위해 만들어진 바지다. 따라서 소재와 가격도 그에 준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슬랙스이다.






*소재가 폴리에스터·비스코스인 슬랙스가 있다. 비스코스는 레이온과 같다.


*품질이 낮은 합성 섬유 슬랙스는 원단 표면에 광택이 난다. 그런 슬랙스는 구매하면 안 된다. 마찰이 일어나는 부위가 번들거릴 수 있다.


*청바지와 면바지는 내 다리 체형에 어울리지 않아서 입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첫 글에서 밝힌 것처럼, 경험이 부족한 옷의 소재는 쓰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목차에서 제외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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