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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절대 고요의 사막 Death Valley

여행 15 (5/8) November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Death Valley National Park의 서쪽 입구에 있는 표지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시작된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이곳을 통과하던 사람들이 이름 붙인 '죽음의 계곡'은 지금은 미국 본토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이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여름에 와야 했던 Yosemite National Park'에서 계속


(사진) 9일간의 전체 여행 일정 - 4일 차 : Death Valley National Park

미국에서 동부에 사는 사람이 서부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이미 엄청 무리한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비행기나 호텔에 돈도 많이 쓰게 되니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 제약이 있다.

우리가 들르기로 한 장소 모두 며칠씩 머물며 천천히 보아야 할 곳이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니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지나치는 일정이 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가진 것 내에서 최대한 열심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고 했던 8박 9일의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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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 데스밸리 국립공원 (Death Valley National Park)


오밤중에 도착한 등산 애호가의 성지 론 파인(Lone Pine, CA)

요세미티에서 티오가 패스(Tioga Pass)가 갑자기 폐쇄되는 바람에 서둘러 길을 떠나야 했던 어제.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발했지만, 밤이 훌쩍 깊은 뒤에야 론 파인(Lone Pine, CA)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저 길목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겠거니 하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피곤한 몸을 뉘인 채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쳤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었을 때 상당히 놀란 것이, 숙소 뒤편엔 범상치 않은 고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엄청난 산세에 놀라서 지도를 찾아보니,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하고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다는 휘트니 산(Mt. Whitney, 4,421m) 이다.

심상치 않은 기운과 함께 호텔 무료 조식을 먹으면서 관광 팸플릿을 뒤적거리다가 알게 된 것이 좀 있었다. 이 마을은 휘트니 산 등반의 출발점이고, 여기서 차로 30분 정도 오르면 휘트니 포탈이라는 곳에 닿아, 그곳에서 1박 2일 여정으로 저 웅장한 산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한다. '등산 좋아하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구나.'

그리고 마을 주변엔 굉장히 독특하게 생긴 바위 군락이 있는 앨라배마 힐스(Alabama Hills)와 그를 배경으로 많은 영화를 촬영했던 'Movie Road'가 주요 관광지이고, 2차 대전 당시의 흡사 독일군 유태인 수용소처럼, 미군이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만자나 수용소(Manzanar War Relocation Center)라는 역사적 장소도 있다고 한다.

이런 걸 모른 채 이곳에 온 게 좀 아쉽다. 미리 알았더라면, 하루쯤 머물며 천천히 구경할만한 곳인데...

(사진) 우리가 묵었던 숙소 풍경. 숙소 뒤편 오른쪽 제일 뒤에 보이는 산이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Mt. Whitney(4,421m)다.

빨리 떠나야 하는 게 서운해도 아무튼 다시 차에 오른다. 오늘은 세은이가 "미국에서 꼭 가보고 싶다"라고 말했던 곳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신비의 장소. 오늘 우리는 세은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사막을 간다.


지구 위 가장 뜨거운 곳 : Death Valley National Park

1840년대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주인공인 속칭 '49er'들 중 한 무리가 발견한 곳으로, 지름길을 찾아서 우연히 이 일대를 거쳐간 사람들이 '죽음의 계곡'이라 이름 붙이게 된 것이 데스밸리의 유래라고 한다. 이곳을 죽음의 계곡으로 부르게 된 것은 그야말로 황무지, 사막이고 엄청나게 더운 곳이기 때문이다. 데스밸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12월에 이곳을 지나갔기에 회고록(W. Manly, 'Death Valley in '49', 1894)에 데스밸리라고 이름 지어서 남길 수 있었지, 만약 그들이 여름에 이곳을 지나갔다면 회고록을 남기기는커녕 단 한 명도 목숨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래에 자세히 설명)


데스밸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지표 기온 측정치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이 다른 곳에 비해 유달리 더운 이유는 높은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다는 것과 깊은 분지 지형인 때문이다. 그냥 산맥도 아니며 그냥 분지도 아니고, 아주 높은 산맥과 아주 깊은 분지가 더 해져있는 곳이다. 아침에 론 파인에서 봤던 휘트니 산, 4,000m가 넘는 높은 산이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Mountains)이 데스밸리의 서쪽면에 접해 있다.

우리나라 대관령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처럼, 바다 앞에 높은 산맥이 놓여 있을 경우 바다를 향한 쪽은 비와 눈이 풍부해지고, 그 산맥을 넘은 지역은 급격히 건조해진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역시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서풍을 정면으로 맞아 수분을 눈과 비로 대부분 소진(푄 현상)시킨다. 그 결과 산맥을 넘어가는 공기는 이미 습기를 잃고 매우 건조한 상태가 된다.

이 산맥 바로 동쪽에 인접한 분지 지형의 데스밸리는, 우리나라의 대구 분지와 마찬가지로 열이 내부에 쉽게 축적되고 외부로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를 지닌다. 여기에 건조한 바람이 더해지면서 극도로 덥고 메마른 기후가 형성된다. 메마른 기후로 나무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되자 지표를 덮어줄 식생마저 사라지고, 이는 다시 열과 건조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데스밸리는 매우 더운 사막이 되었다.

하지만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은 수만 년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던 지역이라고 한다. 지금의 모습을 떠올리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거꾸로 일어난 셈이다.


미국 내 사막지역은 1990년대 클린턴 정부 때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시작되었는데, 데스밸리는 미국 사막들 중에서도 매우 초기에 국립공원이 된 경우다. 크기로 치면 요세미티보다도 크고, 우리나라 전라남도보다도 커서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하고는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이런 곳을 하루 만에 구경을 하고자 하니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아쉬워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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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진짜' 카우보이들이 소를 몰고 길을 건너고 있다. (오른쪽) 공원 입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 다니는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처음 보는 사막 풍경. 그 절대적인 고요함

론 파인을 떠나 휘트니 산을 등지고 황무지를 향해 달려간다. 간신히 보이던 초록색이 어느덧 완전히 없어지고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새로운 세계가 희망의 나라 같은 느낌은 아니다.

여기가 사막지역이라고는 해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래사막은 아니다. 길가엔 흙과 바위 그리고 사막 덤불이 자라고 있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겐 그저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이다. 아직 국립공원 입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중간중간 차를 세우라며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린다. 황량한 들판과 그 뒤에 펼쳐진 4,000m가 넘는 휘트니 산의 조화는 마치 지구상에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이다. 이 척박한 곳에도 이 근처 어딘가 목장이 있는 건지, 로데오 쇼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진짜 카우보이들이 소떼를 몰고 길을 건너고 있다. 이 광경도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재빨리 사진을 찍는다.


데스밸리 입구로 들어서자 더욱더 황량하고 인적 없는 고요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 표지판에서 만나 사진을 찍어드렸던 멋진 오토바이의 노부부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가 있는 이곳엔 사람도, 동물도, 흔한 벌레 한 마리도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들판에 띄엄띄엄 자라고 있는 사막나무 '조슈아 트리(Joshua Tree, 선인장 같은 다육식물이다. 실제는 나무가 아님.)'를 보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이 황량한 벌판 한 복판, 얼굴로는 바람이 느껴지는데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희한한 느낌이다. 바람에 부딪힐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 것인데, 바람소리 마저 없는 절대적 고요함이 신기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은이도 이 느낌이 이상한지 갑자기 '으악'하고 크게 소리를 내질렀지만 메아리도 없고 소리는 금세 사라진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이 완벽한 고요함이 세은이도 나도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사막 풍경이 낯선 토종 한국인인 우리에게 데스밸리는 가는 곳마다 신기하고 장관으로 느껴진다. 아내가 미리 정해둔 관람 포인트가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그런 건 잊고 수시로 차를 세워가며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 신기함을 몸소 느껴보고자 했다.

(사진) 사막 나무인 'Joshua Tree'.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고 선인장과 비슷한 종류인 다육식물의 일종이다.
(왼쪽) 아무것도 없는 사막. 그 위로 작열하는 태양.
데스밸리 관람 포인트 : 생명의 자취가 있는 모래사막 'Mesquite Flat Sand Dunes'

돌과 흙으로 가득한 황량한 풍경이 대부분인 데스밸리에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래사막’이 있다. 바로 메스퀴트 플랫 샌드 듄(Mesquite Flat Sand Dunes). 메인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아 접근이 쉬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명소다. 이곳의 이름인 ‘메스퀴트’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라나는 키 낮은 나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이렇게 척박한 모래 언덕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가 있어서인지 개미처럼 작은 생명체들도 볼 수 있었다. 생명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름의 ‘Death Valley’에 이렇게 분명한 ‘Life’가 존재한다는 건, 새삼 경이롭기까지 하다.


모래 언덕 안으로 한 발짝 더 들어서면, 거대한 파도처럼 이어진 모래의 능선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크고 작은 언덕들이 쌓이고 흘러,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산맥처럼 느껴지는데, 그 뒤로 펼쳐진 바위산들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현실이라기보다 외계의 어느 행성 같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다이의 귀환, 1983)

우리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걸었다. 발아래 모래는 수분기 없이 완벽하게 건조하고, 너무 고와서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스며든다. 11월 말의 늦가을이었지만, 햇볕에 데워진 모래는 놀랄 만큼 뜨거운데 발을 깊숙이 파묻으면, 그 속은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든다. 세은이에게 물리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기 좋은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모래 언덕에서 우리는 걷고, 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아, 차에서 너무 멀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막상 모래에 발이 빠지고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 한참을 놀다 보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늘어나 있었다. 그중엔 썰매를 가져와 모래언덕에서 신나게 타는 사람들도 있다. 옆집 Tim이 우리에게 선물해 준 딸들의 썰매를 가져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랬다면 뉴욕 돌아가서 Tim과 나눌 얘깃거리가 되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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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스퀴트 샌드 듄. 사진에 보이는 모래사막 한 가운데 작은 나무가 메스퀴트 나무다. 사막에도 식물과 작은 벌레들은 살고 있다.
데쓰밸리 관람 포인트 : 가혹한 자연 속 생존의 역사 'Stovepipe Wells'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매스퀴트 플랫 사구(Mesquite Flat Sand Dunes)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작은 휴게소 마을이 있다. 이름은 스토브파이프 웰스(Stovepipe Wells). 데스밸리 사막 한가운데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다. 황무지 한가운데를 지나던 관광객에게,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야말로 살고 싶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이 아주 작은 마을은 생각보다 꽤 살벌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49년,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를 차지했고, 그 직후 금광이 발견되면서 이 외딴 땅은 순식간에 기회의 땅으로 변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전국에서 기회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금광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당시엔 미국 동쪽 지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려면 시에라네바다 산맥 북쪽의 도너 패스(Donner Pass)를 넘어 북쪽 도시인 새크라멘토를 통해서 들어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와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폭설에 갇혀 사망자의 시신을 먹으며 연명했던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던 곳이니까. (Donner Party 사건, 이 길의 이름으로 붙게 된 사건이다.)

1849년 12월, 유타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던 한 무리의 이주민들이 있었다. 겨울철 이동이기 때문에 그들은 '재난의 길' 도너 패스를 피해, 잘 알려지지 않은 남쪽 경로를 따라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길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광활한 사막지대였고 그들은 이곳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 그들은 어떤 지역에 이르러서는 생각보다 너무 덥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막을 헤매게 된다. 이미 깊이 들어와 되돌아갈 수 없게 되어서 썩은 물이라도 구할 수 있는 곳에 간신히 도달한 뒤 더 이상의 이동을 포기하게 된다. 이곳에서 식량이 바닥났고, 마차를 끌던 말과 소를 잡아먹으며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난자들은 두 명의 젊은이(William Manly & John Rogers)를 구출대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구출대 두 명은 약 300km 이상 되는 거리를 거의 한 달 동안 걸어서 로스앤젤레스 인근 도시까지 무사히 도달했고, 그곳에서 구조대를 모집해 다시 한 달 동안 걸어서 조난 지역으로 되돌아와 조난자들을 구하는 데 성공한다. 무려 두 달이나 걸린 이 작전이 구출대나 조난자들에게 얼마나 외로움과 공포를 주었을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두 달 만에 마침내 재회한 그 순간, 그들이 서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며칠을 울지 않았을까?

비록 조난 과정 중에 일부는 사망했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결국 샌프란시스코에 도달했다. 훗날 이 극적인 여정은 회고록으로 남았는데, 누군가 그곳을 떠나며 했던 말 “Goodbye Death Valley”는 오늘날 데스밸리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당시 아마 그들은 몰랐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조난 시점이 겨울이었다는 것인데 데스밸리라 해도 겨울철 기온은 3~20°C 정도로 비교적 견딜 만했을 것이고, 적은 양의 물이라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당시 조난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며 구조를 기다렸던 장소가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스토브파이프 웰스이기 때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그들이 직접 우물을 팠던 장소다. 여기 와서 주변 환경을 돌아보면, 당시 조난 당한 사람들이 느꼈을 절망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는 조난 사건을 상징하는 버려진 마차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 분위기를 더욱 실감 나게 해 준다. 이 작은 마을에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몇 곳 있고, 주유소와 호텔이 하나씩 있다. 사실 마을이라고 할만한 곳도 아니지만 데스밸리 내엔 이런 편의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실 여기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점심은 굶을 수밖에 없다. 식당은 마치 옛 헛간을 개조한 듯한 분위기다. 사막 한가운데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고, 음식도 꽤 괜찮았다. 신선한 채소는 없지만 생당근과 샐러리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먹을 걸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휘발유 가격은 뉴욕의 두 배가 조금 넘을 정도로 비싸다. 아마 내가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봤던 어느 주유소보다도 비쌌지만 망설이지 않고 연료통을 가득 채웠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는 주유소가 보이면 무조건 주유를 해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는 이미 옐로스톤에서 배운 바 있다. 하물며 이곳은 조난자의 마을이니 기름값을 아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기름 팔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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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뉴욕보다 2배는 비싼 휘발유. (오른쪽) '화염 골짜기'라는 뜻의 Furnace Creek. 1913년 7월 이 곳은 지구 위 최고 기온인 56.7C를 기록했다.
데쓰밸리 관람 포인트 : 극한의 더위 'Furnace Creek' & 소금으로 뒤덮인 평원 'Badwater Basin'

'용광로 계곡'이라는 뜻의 퍼니스 크릭(Furnace Creek). 데스밸리 내에서도 가장 더운 곳이며 1913년 56.7°C로 전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관측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비지터 센터 입구에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온도계를 세워놓았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왜 이곳이 더운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비지터 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리조트가 있는데, 사막에 있는 호화로운 리조트라니 처음엔 눈이 믿기질 않았다. '야자수와 수영장도 있어 보이는데 물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다음 목적지로 운전하는데 차 옆으로 코요테 한 마리가 홱하고 지나간다. 세은이랑 아내는 보지 못하고 나만 봤는데 이 또한 엄청 놀라웠다. '너 여기서 뭐 먹고 사니? 뭐가 있니?'


스토브파이프 웰스를 지나 퍼니스 크릭을 통과하면, 데스밸리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인 배드워터 베이신(Badwater Basin)에 도착하게 된다.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이 광활한 소금 평원은, 그 이름처럼 ‘물이 나쁘다’는 뜻을 가졌지만 사실은 데스밸리의 자연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베이신(Basin)’은 주변보다 낮은 지형인 분지(盆地)를 의미한다. 데스밸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분지이긴 하지만, 배드워터 베이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분지 지점인데 해수면보다 86미터나 아래에 위치해 있다. 미국 내에서 해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저지대다.

이 지역은 원래 고대 호수가 존재하던 자리였다. 수천 년 전, 이곳은 강과 빙하수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였지만, 기후가 점차 건조해지면서 호수는 서서히 증발했고, 물속에 녹아 있던 염분과 미네랄이 지표에 남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하얗게 빛나는 소금 평원은 바로 그 결과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매우 적고, 지형적으로 물이 흘러나갈 출구가 없는 밀폐된 분지이기 때문에, 비가 와서 염분이 일시적으로 녹더라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고온건조한 공기의 영향으로 다시 증발하면서 더욱 고농축 된 소금 결정이 남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수천 년간 반복되면서, 배드워터 베이신의 지표는 단단한 소금층으로 덮이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Bad Water Basin의 Salt Flat. (소금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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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이 넓은 평원이 모두 소금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소금이 날려 입이 짭짤하다. (오른쪽) 바닥에 깔린 소금

배드워터 베이신은 데스밸리 필수 코스라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주차부터 쉽지 않다. 주차장에서 잠시 대기한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 차에서 내리자, 소금 섞인 짠 바람이 얼굴을 때리듯 불어온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입구 표지판 앞에 서니,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드넓은 평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그 위로는 마치 눈이라도 소복하게 내려앉은 듯 하얀 소금이 넓게 깔려 있었다. 바닥의 소금층은 생각보다 두꺼워 보였고, 실제로도 수 센티미터에 이를 정도였다. 세은이는 이게 정말 소금인지 믿기 어려웠는지 살짝 혀끝으로 맛을 본 뒤에는 “으악. 이건 보통 짠 게 아니야!”라며 깜짝 놀랐다. 역시 아이들은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사진 속 풍경은 마치 사막 속 설원 같다. 하지만 렌즈에는 공기를 타고 불어오는 짠 기운이 담기지 않는 게 아쉽다. 우리가 지금 이런 장소에 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메스퀴트 모래사막에서처럼, 이곳 역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수평선 끝까지 이어진 듯한 소금평원을 다 걸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시간도 늦어지고 해가 지기 전에 다음 숙소로 이동해야 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소금 평원을 둘러싼 산 중턱쯤에 작은 팻말 하나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그건 바로 ‘Sea Level’, 바다의 높이를 표시한 표지판이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해발 -86미터, 즉 바다보다 훨씬 낮은 지대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산의 중턱, 잘 보이지도 않는 저 높은 곳에 팻말을 설치한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데 근처에서 사진을 찍던 가족들이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하길래 오지랖을 부려봤다.

“저기 저거 보셨어요? 저게 바다 높이래요. 우리가 지금 바다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는 거예요. 이쪽으로 돌아서 한 장 더 찍어요.”

라고 알려주자, 그들도 놀란 표정으로 그 팻말을 다시 바라본다. 팻말이 뒤에 나오도록 서 보라고 해서 사진 한 장씩 더 찍어주었다. 기념이 되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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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Badwater Basin의 입구가 있는 절벽. 절벽 높은 곳에 해발 0m 푯말이 있다. (오른쪽) 'Sea Lvel'을 표시한 푯말. 이 곳은 해발 -86m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려하고 데스밸리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 신비로운 사막에서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더 욕심을 부릴 여유가 없다. 이런 곳에서는 해가 지면 위험해진다.

여행준비에 적극적이었던 아내는 아직 마음이 덜 떠났는지 창밖을 보며 아무 말이 없다. 그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아티스트 팔레트(Artist’s Palette)'에 잠시 들렀다. 다양한 광물의 존재로 인해 낮 동안엔 햇빛을 머금고 형형색색으로 빛났을 그 바위 언덕은, 이제 해가 지는 탓에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기대하던 색은 사라지고 서서히 어둠 속에 묻혀갔다. 이쯤 되니 아내도 아쉬움을 마음에 묻는 표정이다.

그 외에도 들러보고 싶던 곳은 많았다. 산 위에서 데스밸리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단테스 뷰(Dante’s View), 삭막한 소금 평원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올라 마치 악마들이 골프를 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데블스 골프 코스(Devil’s Golf Course).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는 곳들이었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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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다양한 지질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Artist Palette. 이름대로 미술가의 팔레트 같다. (오른쪽) 나가는 길에 만난 사막에 있는 고급 리조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우리의 여행은 아직도 남아있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보게 될지 기대하며 어두워진 밤길을 서둘러 운전했다.


우리는 밤 10시가 다 되어 욕망의 도시 "Fablous Las Vegas"에 도착했다.


욕망의 끝, Fabulous Las Vegas'로 계속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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