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5 (4/8) November 2022
(커버 이미지 : Yosemite 국립공원의 필수 방문지인 Tunnel View Point의 풍경. 빙하로 인해 만들어진 U자형 계곡과 그 옆으로 거의 수직으로 깎여진 암석 절벽을 볼 수 있다. 사진 왼쪽 큰 바위가 암벽등반으로 유명한 El Capitan, 중앙 멀리에는 등산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상징이 된 'Half Dome', 오른쪽엔 Bridalveil Falls를 볼 수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San Jose, CA : 새너제이의 중심에서 산호세를 외치다'에서 계속
미국에서 동부에 사는 사람이 서부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이미 엄청 무리한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비행기나 호텔에 돈도 많이 쓰게 되니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 제약이 있다.
우리가 들르기로 한 장소 모두 며칠씩 머물며 천천히 보아야 할 곳이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니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지나치는 일정이 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가진 것 내에서 최대한 열심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고 했던 8박 9일의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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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자연공원
오늘 우리가 여행할 곳은, 미국 서부투어 패키지여행 코스에 꼭 들어있는 이곳, 서부 캘리포니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이다. 면적으로 치면 제주도의 두 배가 조금 못 되는 크기의 거대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꼭 가봐야 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곳은 세계 자연공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건 세은이를 위해서라도 간략하게 역사 공부를 좀 해야 한다.
우리가 8월에 이미 다녀온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 1872)은 국가에서 지정한 자연공원 중 세계 최초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보존한다는 자연공원이라는 개념 자체는 요세미티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은 국립공원의 나라가 아닐 수 없고 그들의 자부심도 이해되는 바다.
이곳을 공공공원으로 만든 사람은 노예해방으로도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1864년 링컨은 이 지역을 캘리포니아 주 소유로 하여 ‘공공을 위해 자연을 보존한다’는 세계 최초의 자연보호법을 제정하였다. 이는 옐로스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8년이나 앞선 것이다. 국립공원이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에 무차별적인 상업 개발로부터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현실화까지 했다는 것은 지금이야 당연해도 그야말로 법보다는 총이 가까웠던 그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역사 기록에 있으니 그 오래전에 이렇게 앞선 생각을 했다는 것을 믿기는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링컨이 갑자기 무슨 깨달음이 왔나? 미래의 누가 와서 계시를 줬나? 그럴리는 없지 않은가.
그 깨달음의 배경에는 기술의 발전, 특히 사진술과 인쇄술의 발달이 있었다고 한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오지의 풍경을, 사진가들이 그나마 가벼워진 무거운 장비를 메고 찾아가 직접 찍어 올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진을 판화로 옮겨 대량으로 신문에 인쇄하여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 핵심이다.
이 시대가 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글이 아닌 ‘이미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고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그 경이로운 풍경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마도 이를 바탕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퍼졌던 건 아닐까 싶다. (초기 국립공원 지정에 기여한 사진사들은 미국 공원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Yosemite : Carleton Watkins, Yellowstone : William Henry Jackson)
거대한 인류 역사의 시작점에 또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사람이 있다. 요세미티뿐만 아니라 미국 국립공원이라는 제도 자체를 얘기할 때 존 뮈어(John Muir)라는 환경운동가를 빼놓아서는 안된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요세미티에 거주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했고, 수많은 편지를 쓰고 글을 남기며 사람들에게 이 땅을 지켜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학자는 아니었던 그는, 산과 계곡을 직접 다니면서 요세미티 지형이 빙하에 의해 형성됐다는 사실을 밝혀내 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엔 많은 무시를 감수해야 했지만... 그 정도로 애정과 집착이 있었던 것이다.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데에 그의 영향이 컸는데, 자연을 단순히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는 철학을 전파하고, 이는 미국 전역에 국립공원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데 밑바탕이 됐다. 지금은 미국 최대 환경단체가 된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을 창립해 조직적인 자연보호 운동을 시작한 그야말로 선구자이다.
이 정도 공부했으니 이제 일정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세은이와 아내에게 아는 척을 하며 여행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
San Jose에서 Yosemite까지 계절을 건너온 여정
어제 우리는 산호세에서 출발해 늦은 밤에야 요세미티 근처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반나절밖에 안 달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추워질 수가 있나 하는 거였다. '여기가 너무 추운 건가, 산호세가 너무 더운 건가… 아니면 둘 다?'
아내가 힘들게 구한 숙소는 요세미티 입구에 있는 로지(Lodge)였는데, 위치가 정말 깊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밤, 날이 약간 흐린 듯 까만 커튼을 친 것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고, 공기도 쨍하게 차갑다. 어디선가 곰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 같기도 하다.
당연히 전화는 물론, 인터넷도 안 터지는 곳이어서 와이파이도 기기 한 대만 무료연결되고 추가 사용하려면 하룻밤에 $10씩을 내야 한다. 그 탓에 세은이는 자기 태블릿을 못쓰게 되어 조금 실망한 눈치다. 이래저래 더 볼 것도 없고 멀리 이동하느라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찬기운이 느껴진다. 커튼을 열고 베란다 문을 여니 맑은 하늘 아래에 그림처럼 펼쳐진 산과 계곡이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숙소 예약하려고 고생깨나 했다고 얘기했는데 이걸 보니 이해가 간다. 세은이도 어젯밤 실망감은 온 데 간데없고 베란다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숙소 풍경이 좋아서 엊저녁 해지기 전에 여기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잠깐 스쳤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산호세에서 보낸 시간도 나름대로 유익했으니 괜찮다. 오늘을 잘하면 된다.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로지를 떠나 탐험을 출발한다.
차를 몰고 구불구불 강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가는데 양옆으로 큰 바위와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다. 영하의 날씨에 길가에 눈이 살짝 쌓여있는데 어제 있었던 산호세라면 상상도 못 할 풍경이다. 하루 만에 가을에서 한겨울로 순간 이동했다. 캘리포니아 안에서 고작 몇 시간 움직였을 뿐인데도 아예 계절이 바뀌어 있으니 새삼 미국은 정말 큰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Tunnel View Point : 빙하가 만들어낸 거대한 자연의 풍경
우리가 요세미티로 들어와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은 '와워나 터널(Wawona Tunnel)'이다. 와워나 터널은 요세미티 공원의 핵심 지역인 요세미티 밸리(Yosemite Valley)와 남쪽에 있는 와워나 리조트 및 서쪽 대도시들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길목이다. 우리는 이 터널의 출구에 있는 전망대를 찾아간다.
와워나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이름인데, 근처에 있는 골프 리조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국립공원 안에 골프장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보존한다’는 미국인들의 국립공원 철학과는 어긋나 보이지만 이 리조트는 예외라고 한다.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리조트로 존재하던 곳이었고 초창기의 공원 구역에는 사유지인 와워나 리조트는 아예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후 국립공원 영역이 확장되면서 와워나 리조트 지역도 공원에 편입되었는데 리조트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그대로 운영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국립공원에서 휴양을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골프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는 골프 같은 것에 쓸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터널 바로 끝에 있는 전망대, 요세미티 밸리의 핵심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터널 뷰(Tunnel View Point)' 전망대에 도착했다. 요세미티를 찾은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찾는 이곳, 산 중턱 높은 위치에 있는 터널 뷰에서 보는 풍경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핵심 요약판이다. (이름은 참 단순하게도 터널 끝에 있어서 터널 뷰라고 한다. 터널을 개통한 1930년대 미국인들은 작명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큰 나무로 빽빽하게 채워진 넓은 바닥의 U자형태 계곡이다. 일반적으로 물이 흐르면서 만들어지는 계곡은 침식의 중심이 바닥에 집중되기 때문에 좁고 경사가 급한 V자 모양이 된다. (예. Grand Canyon of Yellowstone) 그에 반해 이곳은 한때 거대한 얼음 덩어리, 즉 빙하가 천천히 흘러내리던 곳이었다. 빙하는 조금씩 흐르면서 주변의 암석 벽과 바닥을 거대한 압력으로 밀고 깎아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닥이 넓고 둥근 계곡이 형성되며 그 양옆은 수직으로 가파른 절벽이 되어 U자형 단면으로 보이게 된다. 요세미티 계곡은 바로 이런 빙하 침식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는 눈앞에 보이는 1,000m가 넘는 산들의 꼭대기 넘도록 두껍게 빙하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숲으로 채워진 이 계곡에서 빙하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그 거대한 자연은 요세미티의 상징이 된 바위 조각 작품들을 남기고 사라졌다. 계곡 정면을 보고 서면 요세미티의 상징 바위들 한꺼번에 볼 수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높이 1,000m에 달하는 거대한 한 덩어리로 된 화강암 '엘 캐피탄(El Capitan)'과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하프돔(Half Dome)'이 그 주인공이다. 하프돔이라는 이름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가 한쪽이 쓸려나간 듯한 반구(半球) 모양으로 생겨서 인데, 이 바위는 유명한 등산복 브랜드인 '노스페이스' 로고의 모델이 된 곳이다.
저렇게 깎아지른 하프돔을 등반하는 사람들(예. Devil's Tower, WY)은 이곳에도 당연히 있는데 짧은 코스가 아니라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와야 한다고 한다. 왕복 12시간 정도?
옆집 Mark와 Sarah는 결혼 초반에 Half Dome을 등반했다고 했다. 여기는 전화나 인터넷이 안되기 때문에 조난당하면 위험해서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다. 그들은 당시에 욕심을 좀 부려서 계획보다 멀리까지 갔다가 하산할 때 해가 지는 바람에 정말 죽을 뻔했다며 웃으면서(?) 얘기해 주었는데 정말 대단한 부부다. 아쉽지만 우리는 그렇게 까지는 시간이 없었고,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데다가 11월엔 등반허가가 나오지 않으니 애초에 우리 몫의 추억은 아닌 것 같다. 아내나 세은이는 원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계곡의 오른쪽 절벽에는 폭포가 하나 보이는데(Bridalveil Falls), 이것도 빙하가 만든 작품이다. 지세히 보면 폭포 위치한 곳 역시 바닥이 U자 형태로 되어있어서 이 폭포 역시 빙하 침식 계곡의 일부인 걸 알 수 있다. 빙하의 지류가 본류에 합류하면서 생겨난 것인데, 본류의 측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빙하가 사라진 지류 쪽 하천은 필연적으로 폭포가 된다. (이런 지형을 Hanging Valley (현곡, 懸谷)라고 부른다.) 빙하 침식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지형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차를 타고 돌아보는 요세미티의 이곳저곳
우리는 터널뷰 포인트를 나와 멀리서 봤던 브라이덜 베일 폭포와 엘 캐피탄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공원 전체에 쭉쭉 뻗은 세퀘이어 나무가 깎아지른 바위 절벽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자연 공부는 터널뷰에서 충분하게 했으니, 620m에 달하는 폭포를 배경으로 재밌는 사진도 찍고 생각보다 일찍 만난 겨울 풍경에 세은이랑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높이 1,000m에 달하는, 하나의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바위 절벽 엘 캐피탄은 요세미티 계곡 어디서나 잘 보이는 그야말로 랜드마크다. 우리는 약간 떨어진 자리인 '엘 캐피탄 뷰 포인트'에 차를 대고 보았는데, 스페인어로 '대장'이라는 뜻의 이름답게 역시 주변 경관을 압도한다. 뷰 포인트 앞 작은 샛강에는 강변 평지가 있는데 이곳은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인 존 뮈어가 당시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만났다는 캠핑장소가 있다. 이런 곳에서 별을 보며 국립공원에 대한 논의를 했다면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다.(엘 캐피탄 동쪽 벽에는 폭포 'Horsetail Falls'가 있다. 2월 특정 기간엔 이 폭포에 석양이 비추면서 황금빛 물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Firefall' 역시 엄청난 볼거리라고 한다.)
우리는 엘 캐피탄을 떠나 조금 더 계곡 안쪽에 있는 비지터 센터(Yosemite Valley Welcome Center)에 가서 기념품도 좀 사고 점심도 때울 요량이었다. 옐로우스톤에서 갔던 식당 정도를 기대하고 갔지만 이곳은 상당히 작은 곳이라 식당은 없다. 허기진 관광객 들로 가득 찬 비지터 센터에서 허기를 달랠만한 간단한 먹거리를 경쟁하듯 간신히 집어 들고 나왔다. 점심을 때우면서 바깥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커다란 까마귀들이 세은이 뒤편에 앉아서 우리의 소시지를 너무 대놓고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뺏기지는 않았다. 위험한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세은이가 까마귀를 무서워하는 표정이 엄마 아빠에겐 귀여운 볼거리가 되었다. "워이, 저기 까마귀 좀 봐라~! 너의 소시지를 노리고 있다." "아빠, 하지 말라고!"
비지터 센터 주변엔 아담한 산책길이 있고 그 끝엔 작은 박물관이 있어서 이곳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국립공원이 되기까지의 역사, 공원 내의 자연과 즐길 거리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당시의 빙하 지형 모형을 눈으로 보면 요세미티의 현재 모습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비지터 센터에서 거대한 세퀘이어 나무들이 즐비한 숲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면, 요세미티가 보유한 또 다른 장관인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가 있다. 총 높이 약 740m에 달하는, 미국 내 최대 높이의 이 폭포는 3단에 걸쳐 떨어지는데 Upper, Middle, Lower로 나뉘어 있다. 비지터 센터에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가면 Lower Falls의 아랫부분까지 가 볼 수 있다. 바위가 잔뜩 쌓인 위로 물이 쏟아지는 모습이 제주도 정방폭포와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크기나 높이면에서 요세미티가 훨씬 크긴 하다.
그런데 우리가 한적하게 요세미티의 풍경을 즐기는 사이 불운의 기운은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마주한 불운 - 요세미티는 여름에 와야 하는 이유.
사실 요세미티에는 겨울에 출입제한이 되는 곳이 많다. 엘 캐피탄이나 하프돔 같은 절벽 등반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주요 관람 포인트도 들어갈 수가 없다. 아내는, 그 탓에 하프돔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글래이서 포인트와 요세미티 폭포의 상부인 Upper Falls에 갈 수 없음을 굉장히 아쉽게 생각했는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요세미티 폭포를 보고 나서, 우리의 계획은 계곡 지역을 벗어나 해발 2,600m 고지대인 투올러미 초원(Tuolumne Meadows)을 지나, 바다보다 짜다는 모노 호수(Mono Lake)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 루트를 타고 요세미티의 남동쪽으로 이동하면 네바다주로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의 다음 여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건데...
이동을 위해 차에 앉아서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유일한 고지대 연결 도로인 '티오가 패스(Tioga Pass)'가 폐쇄된 것으로 나오고 있었다. 저절로 '헉'하는 소리가 나왔다.
티오가 패스는 요세미티의 동쪽 고산 지대를 가로지르는 고갯길인데 이 길이 막히면 관광하려던 곳을 못 가는 것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티오가 패스가 막히면 요세미티 동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없어지는 거여서, 다음 일정인 네바다로 가려면 요세미티 공원 전체를 남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 즉, 2시간 거리의 길을 8시간 걸려서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유 있던 일정이 '이미 늦은 상황'으로 바뀌었다.
나는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이미 시골길을 밤운전하는 게 정해졌고,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저녁도 굶게 될 판이다. "우리 바로 지금 여기 떠나야 해. 요세미티 아쉽지만 여기서 그만"
"헉! 이게 말이 돼? 안돼. 우리 여기 어떻게 왔는데..." 아내가 억울해 하지만 소용없다. 요세미티 계곡을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은 뒤, 아내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풍경을 남겨둔 채,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요세미티를 빠져나와서 지방도로를 따라 프레즈노(Fresno, CA)를 지나 베이커즈필드(Bakersfield, CA)까지 270km나 남쪽으로 와서야 비로소 동쪽 방향으로 차를 돌릴 수 있었다. 동쪽으로 가는 길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계속 이어지고 해는 이미 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옐로우스톤으로 갈 때 경험하긴 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길 위에서 동물을 만나는 사고도 없었고, 여러 번 마주친 경찰 단속도 잘 지나쳐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숙소가 있는 론 파인(Lone Pine, CA)에 도착했다. 요세미티에서 여기까지 700km는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정말 운전 많이 늘었다.
우리는 론 파인 읍내에 아직 문 닫지 않은 식당이 있기에, 패스트푸드점 하나를 찾아 저녁을 먹었다.
아쉬웠던 요세미티를 추억하며, 내일 보게 될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일찍 잠이 들었다.
'사막, 절대적 고요함 Death Valley National Park'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