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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새너제이의 중심에서 '산호세'를 외치다.

여행 15 (3/8) November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스탠퍼드 대학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Hoover Tower. 스탠퍼드 첫 졸업생 중 하나인 Herbert Hoover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현재 용도는 자료실 및 도서관이다. 관람객은 입장료를 내면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관광과 현실 : San Francisco, CA'에서 계속


(사진) 9일간의 전체 여행 일정 - 2일 차 : San Jose

미국에서 동부에 사는 사람이 서부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이미 엄청 무리한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비행기나 호텔에 돈도 많이 쓰게 되니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 제약이 있다.

우리가 들르기로 한 장소 모두 며칠씩 머물며 천천히 보아야 할 곳이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니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지나치는 일정이 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가진 것 내에서 최대한 열심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고 했던 8박 9일의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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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샌프란시스코 주변 지도.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 정도 남쪽에 있는 산호세 주변에는 미국의 첨단 IT 기업들이 위치해 있다.

Day 2 : San Jose, CA

San Jose는 세너제이가 아니고 '산호세'라고!!

1996년 국립국어원의 결정에 따라 한국에서는 '새너제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곳. 하지만 나는 미국엔 산호세는 있어도 새너제이라는 곳은 없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스페인 선교사들이 세운 성 요셉(Saint Joseph)의 도시, 영어 쓰는 미국에서도 스페인 식으로 "쌘 호쎄"라고 해야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영어식으로 '샌 조스'라고 부를 법도 하지만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일수록 '쌘 호세'라고 부르며 미국 TV/라디오 뉴스에서도 쌘 호세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의 결정이 참 의아한 것이, San Antonio는 한국어로 '새난토니오'가 아니라 '샌안토니오'로 쓰고, Los Angeles는 '로산젤레스'가 아닌 '로스앤젤레스'라고 표기하는데 유독 '산호세'만 명백히 틀리게 쓰고 있으며 고집부리면서 고치지도 않고 있다.

타국의 지명을 그 나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정해 놓고, 수많은 지적에도 '우리 고유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것이라고만 하니... 그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이해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산호세라고 표기하려고 한다. 나는 교육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니까.

(사진) 산호세 거리 풍경

인구수로 따지면 산호세는 캘리포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LA > SD > SJ)로 샌프란시스코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곳엔 전 세계 IT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실리콘 밸리가 있고 그를 뒷받침하는 명문대학인 스탠퍼드 대학교도 산호세 근처에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여행을 시작한 우리는 남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산호세를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서 이곳에 하루 일정을 넣었다.


Stanford 가족의 역사에서 시작한 스탠퍼드 대학교

미국의 동부 지역의 오래된 대학들은 미국 독립이전에 세워진 곳도 많지만(예. Harvard Univ), 서부의 대학들은 그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곳은 없다. 미국 서부의 인프라는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이후에 급속도로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서부에서 오래된 축에 드는 스탠퍼드(Stanford Univ.) 대학도 1891년이 되어서야 세워졌다.

정치인이자 철도 사업가였던 Leland Stanford와 그의 아내 Jane Stanford는 어린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이 있었는데, 'Leland Stanford Jr.'를 기리면서 같은 나이 또래의 학생들을 위해 '릴랜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을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서부 최고의 명문대학인 스탠퍼드 대학의 유래이다.

본디 가족 농장이었던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는 산호세에서 20분 정도 북쪽에 있는 팔로알토(Palo Alto, CA) 인근에 있고 여의도 면적의 4배(여의도 공원 말고 그냥 섬 여의도)에 달하는 그야말로 광활한 곳이다. 캠퍼스 전체 크기가 거의 작은 도시 하나와 맞먹을 정도니까 모든 것을 보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해야 한다.


스탠퍼드 부지 인근에 도착한 우리는, 학교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학교 병원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천천히 걸었다. 야자수가 쭉뻗은 대로를 걷다 보면 너른 잔디밭이 나오고 스탠퍼드 특유의 빨간 지붕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넓고 평평한 대지, 미국 서부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이곳엔 높게 치솟은 건물이 거의 없어 시야가 탁 트여 있는데,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높은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후버 타워다. 이 학교의 첫 졸업생이었던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딴 건물로, 스탠퍼드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다. 후버타워를 보고 걸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스탠퍼드엔 특별한 ‘정문’이 없는데 중앙의 잔디밭과 그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이 자연스럽게 입구 역할을 한다. 그 길 어귀에는 단체 캠퍼스 투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미래의 학부모들일까? 미국도 엄마 아빠들은 학구열이 대단하다.

(사진) 스탠퍼드 대학교 입구로 가는 길. 왼편에 Hoover Tower가 보인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캠퍼스가 인상적이다.
(왼쪽) 로뎅의 작품 '깔레의 시민들'이 통행로 바로 옆에 전시되어 현실감을 준다. (오른쪽)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스탠포드 메모리얼 교회.

조금 더 들어가면 스탠퍼드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들이 이어진다. 낮고 긴 건물들이 아케이드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스탠퍼드의 메인 쿼드(Main Quad)로 들어가면 중앙 잔디마당에 로댕의 대표작 '깔레의 시민들(Les Bourgeois de Calais)'을 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 : 깔레의 시민)

이 작품은 14세기 영국과의 전쟁 당시, 도시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선 프랑스 깔레의 귀족 여섯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록 그들은 결과적으로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선택의 순간에 느꼈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댕은 바로 그 찰나의 마음을 조각으로 붙잡아 두었다. 힘차게 전진하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무거운 걸음과 굳게 다문 표정, 망설임과 공포가 스며 있다. 역사의 기록 속에서는 영웅으로 남았지만, 그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로댕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 작품이 스탠퍼드에서 유독 인상적인 이유는, 뉴욕시티(MET)이나 도쿄(우에노 공원)의 미술관에서처럼 단 위에 세워져 있거나 관람 동선이 따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가는 길 옆에 ‘그냥’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학생과 교수, 관광객들이 그 옆을 지나다니고,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심지어 살며시 손을 대기도 한다.

거대한 명문대 캠퍼스 한복판에서 이 작품이 보내는 메시지는 또렷하다. 스탠퍼드의 이름이 주는 자부심만큼이나 그 무게와 책임도 잊지 말라는 듯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안을 견디고 옳은 선택을 해야 했던 옛날 깔레의 귀족처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을 이렇게 가까이,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작품의 의미와 스탠퍼드의 전시 방식이 묘하게 겹치면서, 무심하게 놓인 이 조각들에서 어떤 위엄과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메인 쿼드의 제일 안쪽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내인 Jane이 남편을 기리며 세운 교회(Stanford Memorial Church)가 있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의 그리움을 담은, 커다란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이 교회는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실리콘 밸리의 산실 스탠퍼드. 그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이름들

IT·전자 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 밸리는 북쪽으로 스탠퍼드 대학, 남쪽으로 산호세까지 이어지는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엔 반도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실리콘 밸리가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데에는 명실상부 스탠퍼드 대학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인재 양성과 연구 환경 구축, 창업 인프라 조성 등에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기원이 된 곳이며,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등 현대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가 스탠퍼드의 연구실이나 졸업생의 손길을 거쳐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 출신의 창업자들이 HP, 구글, 유튜브, 시스코, 인스타그램 등 실리콘 밸리의 대표 기업들을 세웠고, 그 외 지역/학교에서 온 인재들도 스탠퍼드의 창업·연구 인프라 덕분에 이곳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스탠퍼드는 실리콘 밸리 그 자체이자, 그 이상으로 세계 기술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


스탠퍼드 캠퍼스 안에는 성공한 기업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이 많다. 그 이름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전자공학과 건물에는 HP의 창업자 Willam Hewlett과 David Packard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고, 첨단 반도체 연구소에는 MS의 공동 창업자 Palu Allen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컴퓨터공학과 건물의 이름은 'William Gates Computational Center'. 낯익은 이름들이 캠퍼스 곳곳에서 눈에 띈다.

NVIDIA 창업자인 Jen-Hsun Huang의 이름이 붙은 강당 건물 뒤편에는 커다란 나무 아래 야외 강의장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화이트보드에 컴퓨터 데이터 구조를 열심히 설명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옆에 앉아 잠시 쉬면서 세은이의 강의(?)를 들었다. 정말 언젠가 세은이가 이곳 스탠퍼드에서 공부하게 될 날이 올까? 먼 미래를 살짝 상상해 보았다.

(사진) NVIDIA 창업자의 이름을 딴 "Jen Hsun Huang" 엔지니어링 센터 앞의 야외 강의실. 세은이가 데이터 구조를 강의(?)하고 있다.
(사진)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학교에 기부하고 관련 전공 건물에 이름을 남기곤 한다. (왼쪽) 폴 앨런(MS), (가운데) 빌 게이츠(MS), (오른쪽) 데이빗 패커드(HP)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햇살 아래, 넓은 공원 같은 캠퍼스를 이곳저곳 걸어본다. 오래된 시계탑도 재미있고 잔디밭에 앉아 쉬어도 좋고, 스탠퍼드 가족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그중에도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기념품을 파는 학교 서점. 대부분의 미국 대학 서점은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데(참고 : 코넬 대학교), 스탠퍼드는 관광객이 많은 만큼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일정상 일요일에 오게 된 우리는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참 다행이다.

(사진) 로스쿨 앞 잔디마당에서 보는 Hoover Tower
(사진) 교내풍경 (왼쪽) 대학 설립자 Jane Stanford의 이름을 딴 길 (오른쪽) 교내 서점. 학교가 유명할 수록 서점도 크고 기념품도 많다.
스탠퍼드와 로댕 : Cantor Arts Center & Leland Stanford Junior Museum

스탠퍼드 대학교 한편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로댕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캔터 미술관(Cantor Arts Center)이 자리하고 있다. 규모와 내용면에서, 흔한 대학 부속 미술관이 아니라 이곳은 미술 애호가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본격적인 예술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탠퍼드와 로댕의 인연은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미술품 수집이 미국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던 시절, 공동 설립자인 아내 Jane Stanford 역시 로댕의 조각에 깊이 매료되었다. (앞서 설명한 캠퍼스 입구의 '칼레의 시민들'은 그녀가 직접 유럽에서 구매한 것이다.) 그녀는 수십여 점의 로댕 작품을 모아 학교 내에 미술관을 세웠고 아들의 이름을 딴 '릴랜드 스탠퍼드 주니어 미술관'으로 이름 지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스탠퍼드의 로댕 컬렉션은 계속 커졌는데, 특히 사업가이자 로댕 조각의 수집가였던 Cantor 부부(B. Gerald & Iris Cantor)가 이곳에 방대한 로댕 작품을 기증하면서 이 미술관은 미국 내 로댕 조각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1989년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강진은 미술관에 큰 피해를 주게 되고 (참고 : 샌프란시스코 Pier 39에 바다사자가 몰려온 ) 이후 복구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해지자 Cantor 부부가 기부와 헌신으로 미술관 재건에 앞장서게 된다. 복구가 끝난 이후 Cantor 부부의 기여를 인정하여 미술관의 이름을 ‘캔터 미술관’으로 변경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술관 입구에서는 캔터 미술관이라는 표지석이, 건물의 꼭대기에는 초기에 새긴 릴랜드 스탠퍼드 주니어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진) 스탠퍼드 대학의 캔터 미술관. 건물 꼭대기엔 원래의 이름인 "Leland Stanford Jr."이 새겨져 있다. 입구의 작품은 Deborah Kass의 'OY/YO'
(왼쪽, 가운데) 캔터 미술관엔 로뎅의 작품이 매우 많다. (오른쪽) Kwame Akoto Bamfo가 그린 '축복받은 MVP, MS의 설립자 Bill Gates'

이 미술관은 정문보다는 뒤편을 먼저 가봐야 한다. 미술관 뒤편에 있는 자갈로 된 정원엔 로댕 조각 공원(Rodin Sculpture Garden)은 굉장히 특별한 느낌의 공간이다.

정원의 정 중앙에는 세계에 단 8점만 존재하는 로댕의 대표작인 ‘지옥의 문(La Porte de l’Enfer)’이 우뚝 서 있다. 프랑스 정부의 의뢰를 받아 신규 미술관의 정문으로 하려던 이 작품은 로댕이 살아있을 때 "문"의 형태로 완성되지 못했고 해당 미술관도 설립되지 않았지만 로댕 사후에 현재의 문 모양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인 단테가 쓴 신곡(神曲, 옛날 로마판 '신과 함께')의 지옥(infero) 편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되었다. 무려 30년에 걸쳐 만들어진 로댕 생애 최대 역작으로 수많은 작은 인물상의 조합으로 꾸며져 있다.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작은 인물상들은 다양한 크기의 단독 작품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몇몇 작품은 사실 지옥의 문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옥의 문 꼭대기 중앙에 놓여있음)

후문을 통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지옥의 문에서 봤던 ‘생각하는 사람(Thinker)’이 아주 거대한 크기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관람로를 따라 이어지는 로댕 전시실에는 수많은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거장의 작품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기에 정말 좋다.

미술관이 꽤 넓고 로댕 작품 외에도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정문 쪽으로 나오면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세은이 때문에 조금 일찍 나와야 했지만...


미술관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스탠퍼드를 떠나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스탠퍼드를 나와서... 생각보다 썰렁했던 구글 본사

산호세 일정을 마치기 전에 구글 본사가 스탠퍼드에서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구글을 잠깐 들렀다.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라 특별히 둘러볼 만한 건 많지 않다. 게다가 일요일 저녁이라 방문자 센터도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래도 여기저기 놓여 있는, 평소 핸드폰 속에서만 보던 익숙한 구글 아이콘들을 실제로 보니 세은이는 꽤 신기해했다. 넓은 잔디밭과 야외 휴식 공간, 구글 직원들이 타고 다닌다는 알록달록한 사내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는데 생각해 보면 아무리 멋지게 꾸며놔도 결국 일하는 곳이니 직원들 눈엔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사내용 자전거가 있다면, 나는 빨리 이동할 수 있으니 좋아했을까? 쉼 없이 일해야 하는 것이 싫었을까? 아마도 나는 후자일 것 같다.

아마도 일요일 저녁이라 더 조용했겠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한산한 곳이라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래도 세은이가 '구글 본사 다녀왔다!'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사진은 충분히 챙겼다.

돈은 많이 벌어도 물가가 비싸 살아가기 팍팍하다는 산호세의 직장 분위기를 수박 겉핥기로 맛보고 우리는 다음 일정을 향해 달렸다.

(왼쪽) 이 곳이 구글 캠퍼스임을 알려주는 독특한 '핀' 표시가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캠퍼스내 잔디밭과 의자들
(사진)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해 두었다.

우리는 날씨 좋고 여유로운 남쪽 캘리포니아 도시의 풍경을 떠나서, 이번 여행에 아내가 기대하고 있는 대자연을 향해서 이동했다. 구글 본사를 떠나서 밤이 될 때까지 부지런히 달려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내 숙소다. 이곳은 세계 최초 국립공원인 옐로우스톤 국립공원보다도 앞서서 대중을 위한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던 곳이다.


고도가 높은 이곳에서는, 산호세의 11월에도 따뜻했던 기운은 이미 온 데 간데없고 말 그대로 한 겨울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패딩을 꺼내 입고 체크인부터 했다.


여름에 와야 하는 Yosemite National Park로 계속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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