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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미국 주재원은 골프가 필수? 이민의 뒷면

Apirl ~ August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이미지 : 친구들과 즐거운 라운딩 - 생성된 이미지)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미국 사는 한국 주재원이 빠지기 쉬운 함정


해외에 지사를 두고 있는 회사는 다양한 목적으로 주재원을 파견할 수 있다. 우리 회사가 뉴욕에 16명이나 되는 주재원을 보내는 이유는 고객사와의 협업 연구소를 위한 순수 기술파견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흔히 떠올리는 주재원과는 성격이 다를 수도 있겠다. (연구소 전반적 운영 대응은 상주 인력인 Jason이 전담함)

우리 주재원들 업무는 장소와 아이템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한국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어서, 담당 업무나 주재원들 간의 관계는 한국의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연구소에서 내가 담당하는 분야에서는 주재원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나는 Ushik, Yuanjing 같은 파트너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한국 주재원이 두 명 이상 비슷한 일에 배치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이것을 '운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일 하는데 영어 쓰는 파트너들 보다는 한국인들끼리 한국어로 말하는 게 훨씬 편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걸 테다. 어차피 1~2년 뒤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미국에선 그저 임시 파견직일 뿐이니 굳이 적응과 소통에 노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만약 파트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차피 곧 떠날 & 떠나고 싶어 하는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파트너들과 잘 지내는 걸 원하지 않으니 멀어지고, 멀어지니 잘 지내고 싶지 않게 된다.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거다.

그런데 미국 직장에서 한국어로 일을 하게 된 게 운이 좋은 게 맞는 걸까? 정말? 그래도 괜찮은 게 맞아?


출근이 재개되어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다들 '임시직' 주재원들이라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건가? 정규직이면 다를까? 헷갈리는 것이 많다.


'미국에서 골프를 안치면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Jason은 주 3일 출근 중에 금요일은 모든 주재원들이 출근하도록 했다. 그동안 잘 만나지 못하고 지냈으니 이렇게라도 친목을 쌓고 지내라는 배려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금요일마다 회사 런치룸에 다 같이 모여서 식사도 하고 정보도 나누고 어려운 것도 얘기하곤 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회사 이야기, 여행이나 생활 팁 같은 것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메신저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활발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사람들의 대화가 하나로 수렴되는 주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골프였다. 미국은 한국보다 골프 비용이 싸서 전체 주재원의 절반정도는 골프장을 다니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한국에서부터 치던 사람들은 아니었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친한 사람들 따라 배우러 다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골프 얘기를 했다.


사실 나 역시 미국으로 오기 전에 '미국 가면 골프 배워와야 한다'는 말을 수백 번도 넘게 듣고 뉴욕에 왔다. 나는 골프를 쳐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번 해볼까'하는 호기심 정도는 있었다. 장인어른께서 당신의 골프채 한 세트를 우리 이삿짐에 실어서 보내주셨으니 맘만 먹으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집안일도 회사일도 너무 바쁘고, 여행 PPT도 만들어야 하고, 도서관 수업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몇 달 동안 할까 말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아예 마음을 접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골프가 꼭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하겠다면 한국에서 돈을 좀 더 내고 해도 된다. 집에서 혼자 운동도 하고 있으니 굳이 골프까지 하면서 운동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미국에 와서도 골프 얘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는데 취미생활이야 각자의 사정대로 선택하는 거니까. 어쨌든 더 이상 골프하는 걸로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주재원들의 골프 사랑은 좀 도를 넘는 것이었다. 무슨 대화를 해도 마무리는 항상 골프 얘기로 끝난다. 시도 때도 없고 끝없이 골프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무 장소에서나, 아무 하고나, 아무 때나 골프 얘기를 한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간단다. 가격도 싸고 건강에도 좋고 가족애도 생기고 영어도 배우고 친목도 생긴단다. 이렇게 모든 것에 장점이기만 한 일이 있다고? 그런데 과연 한국에 돌아가면, 골프를 찬양하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계속 골프를 치는 걸까? 나는 애초부터 사람들에게, 회사일이 바쁘고 도서관을 다녀야 해서 아예 안 하기로 결심했다고 얘기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권한다. 내가 안 한다는데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심지어 "시간도 없고 고민하기 싫어서 골프는 생각도 안 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대놓고...

"여기까지 와서 골프 안 치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생각 자체나, 그걸 입 밖으로 꺼내서 말로 하는 것까지도 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어째서 남을 이리도 괴롭히는가. 골프 안 치는 사람들은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그거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는데, 골프 치는 사람들은 골프 안 치는 사람들에게 골프 치라고 말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으쌰으쌰_신화.jpg (사진) 신화 1집 - 으쌰! 으쌰! (SBS 인기가요, 1998)

내가 보기엔 참으로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부터 골프를 좋아하던 사람 몇 명을 제외하면 미국에서 시간 보낼 일을 찾지 못해서 저리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진지하게 "골프 안 치면 도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이 질문도 무례하긴 마찬가지지만, 질문자의 눈빛에 정말 호기심에 가득 차서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내 또래들에게 골프라는 것은 '그 나이 되면 쳐야 한다.'라거나 '사회생활 하려면 쳐야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며 의무감으로 시작하는 운동이다. 이런 걸 진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짜 운동이라면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사회생활 때문이 아니라 건강하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골프는 운동보다는 그냥 재밌는 게임 정도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나 같은 초보는 골프를 배워서 시작해야 하니 골프장 이용료에, 온갖 장비, 옷 값 그리고 레슨비 등 생각보다 쓰는 돈이 많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과 같이 가면 게임 끝나고 다 같이 커피, 밥, 술 먹는 일도 많다. 이런 걸 다 감안하면, 미국 골프가 한국보다는 싸다고 해도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에 비해 절대 저렴하지 않다.

골프장 직원들과 몇 마디 나누는 걸로 영어 연습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이지 어떻게 그런 게 공부가 되겠는가. 그 시간에 옆집 아저씨랑 풋볼 보면서 맥주 마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도서관 수업에 나가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적어도 나는 영어 배우러 골프장에 갈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취미'는 될 수는 있을지언정 '가족의 취미'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아내와 세은이랑 보낼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골프장엔 못 가겠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달리 미국에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골프를 쳐야 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다. 상황이 되시는 분, 골프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서 즐기시면 되고 그렇지 않은 나와 우리 가족은 골프 안 할 거다. 이 간단한 걸 왜 자꾸 남들에게 설명해야 하나.


골프장에 가면 너무나 편안한 한국 사람들이 있고,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해내는 느낌에 보람이 있을 거다. 친구랑 있으니 마음이 편안한 데다 스스로 뿌듯하니 남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된다.

나는 미국 사람들도 골프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 우리 동네 이웃들, 도서관 선생님, 회사 파트너들에게도 골프 치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내가 알고 지내는 미국인 중엔 골프 치는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골프 저변이 넓은 미국이라지만 정작 미국 사람이 그렇게 까지 많이 하는 '게임'은 아닌가 보다. 옆집 Mark는 은퇴하면 골프나 치면서 Sarah가 벌어오는 돈을 쓰면서 다니는 게 꿈이라고 말하기는 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미국에서 골프를 안치다니, 미국인들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여행하러 온 것이 아니고 살기 위해서 미국으로 왔다. 흥미도 없고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골프에 시간을 써야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미국은 넓은 곳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은데 편한 분위기에 취해서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릴 수 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미국에서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이런 이유로 나는 미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골프장 다니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2년짜리 여행 온 건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해요?'

금요일 식사에선 각자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교류가 된다. 골프 얘기는 지겨웠지만, 다른 가족의 여행 얘기는 잘 들어둬야 했다. 사람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때로는 여러 가족이 한 팀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미국에 파견 온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는 짧아서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나는 학교에 보냈던 PPT자료를 주재원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는데, 호기심 있게 보면서도 "멋지네요. 우리 애 엄마가 이런 거 알면 안 되는데..."라며 너스레 떨기만 할 뿐 자료를 보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재원들 반응이 미국 사람들과는 달라서 좀 의아했다.

'다들 이미 다녀온 곳이라 관심이 없나? 달라고 하면 그냥 주려고 했는데... 이것도 친분이 없어서일까?'


런치룸에 모일 때면, 나는 옆집 사람들 & 도서관 얘기를 자주 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 페이스북 & TV 안테나, 도서관 수업, 옆집에 인사 편지 보내기나 학교에 여행사진을 보내는 것 등도 알려 주었지만 사람들은 크게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가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에게 미국까지 왔으니 진짜 미국 사회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을 권해주고 싶었다. 여행과 골프만으로 미국에서의 2년을 채우기엔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진심이 전해지는 건 쉽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저는 여기 2년짜리 여행으로 생각하고 온 건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해요? 김 부장님은 대단하시네요."라는 말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에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루한 얘기 그만하라는 뜻이었을까?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을 2년짜리 여행으로 생각하다면 내가 말하는 것 들은 다 의미 없는 일이다.

미국 자기 동네는 잘 몰라도 유명한 여행지만 찾아다니고, 집에선 VPN으로 한국 방송 보면서, 한인 마트에서 한식만 사 먹어도 아무 문제없다. 한국 사람들 하고만 어울려 다니며 사는 것도 미국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미국에서 미국 사람들을 가리키며 '외국인들 많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10는 '텐 달러'가 아니라 '십 불'로 읽는 게 더 편하다고 한다. 미국에선 본인이 외국인이고 미국인은 현지인이지만, 여행자로 지내고자 한다면 그 정도는 별로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일주일 내내 한국 주재원들과 골프 치는 것 역시 무슨 상관이랴.


근데 정말 이게 괜찮은가? 정말 미국에서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한국을 떠나왔나?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람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모든 사람들이 Mark와 Sarah Owen, Judy 같은 친절한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더 해줄 말이 별로 없다. 그렇게 나는 다른 주재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더 이상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행자는 정착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미국에서 한인들끼리 모이게 되는 이유. 그럼에도 홀로 서야 하는 이유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오롯이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안타까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민자는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설마 미국까지 오면서 '나는 미국인들 아무도 안 만나고 한국사람들 하고만 놀아야지'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민자는 안되니까 못하고 못하니까 안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 쉽다.

페이스북 한인 그룹이나 한인들이 많은 곳에는, 미국에서 수십 년씩 살아도 미국인들과 소통이 어렵다는 얘기가 정말 많다. 1970년대 얘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도 벌어지는 일이다. 수십 년 넘게 살아도 미국인에게 전화하는 일은 한인교회 목사님 혹은 아들을 통해서만 한다는 사람도 있고, 옆집에서 인사하면 그냥 문 닫고 들어가 버린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자꾸만 한국 사람들하고만 지내려고 한다. 한국말하는 사람 외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뭐가 필요하면 한인타운으로만 가고, 미국음식 안 맞으니 한식만 먹고, 집에서는 한국 방송만 본다. 이렇게 지내면 영어는 당연히 늘지 않는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영어를 포기하게 되고, 영어만 포기하는 게 아니라 미국인들과 어울려 살려고 했던 이민 초반의 꿈이 버려지는 것이다.

LA처럼 한국 사람들이 아주 많은 곳이라면 그런 식으로 생활해도 불편함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도 생긴다.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접점, 대화의 소재가 아예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이민자들 커뮤니티는 이런 경향이 있다. 도서관 선생님 Judy는 이것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It's Not Living, Just Surviving."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이민자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주변 미국인들이 이민자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포용해 준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현지인들에게서 거부당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이민자는 쉽게 겁을 먹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당연히 오해가 있고 불편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이해해 줄수도 있지만, 어떤 누군가는 그것을 빌미로 공격할 수도 있다. 이민자는 그래서 억울할 때가 많다. 식당에서 음식이 잘못 나왔거나, 호텔 예약이 잘못되거나 하면 내 탓인지 종업원 탓인지 모를 때도 많다. 상대 잘못인 것 같아도 설명이나 요구하는 과정이 어려워서 피해자인 내가 참아야 하는 일도 많다. 여러 경로를 통해 겪은 억울함이 이민자들의 마음속에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게다가 이런 얘기할 미국 친구가 없는 사람이 말과 생각이 통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같은 나라 사람들을 찾아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이민 와서 가족이 먹고살 수 있도록 생활을 꾸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타지에서 아내와 아이가 숨 쉬고 살아있도록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건지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이민의 실체를 전혀 몰랐고 '영어 잘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각자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2년짜리 여행자가 되겠다는 그분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같은 상황에서도 돌아갈 시간을 정해 놓고 한국을 떠나온 주재원과, 돌아갈 기약 없이 미국에 온 이민자는 처지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2년짜리 여행자'라는 말은 좀 너무한 표현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려고 한다.)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자.

출근을 시작해서 주재원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어울려서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의 친분도 없고, 골프마저도 안 치고 있으니까.

나는 이미, 주재원들과는 가까워질 수 없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 걸 확인했다. 헤이니네처럼 몇몇 친절한 분들과 교류할 수는 있었지만, 전체 분위기는 이미 내가 끼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헤이니네도 골프를 치지 않는 가족이라서 우리와 어울릴 기회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웃들에게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것도 우리와 비슷했고...


나는 주재원 기간 2년이 다 끝나갈 때 동네에서도 회사에서도 미국인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할 정도로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지금의 주재원 모임은 편안하긴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덧 미국에 온 지 1년이다. 전체 기간의 절반 정도가 쏜살같이 지났다. 남은 절반도 지난 1년처럼 순식간에 지나갈 거다. 미국 생활이 끝났을 때 허무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조심하려고만 하지 말고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과감하게 시도해도 될 것 같다. 코비드 때문에, 누굴 만나기 어려워서, 회사에 출근을 잘 안 해서... 이런 건 실패의 핑계는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핑계에 기대어 살면 결국 나만 빈손이다. 아무도 대신 채워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한국인 테두리'와 '주재원의 달달함'에서 벗어 나오지 않으면, 좋은 미국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그것이 기회였는지 조차도 모르게 된다. 이젠 시간이 없으니 자신감을 갖고 좋은 기회를 찾아야겠다. 나는 이미 우리 동네에서, 도서관에서 미국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있으니까. 회사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자. 아직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하긴 했지만 이제 하면 된다.


그리고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내가 골프 권유를 싫어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내가 도서관 권하는 걸 듣기 싫어할 수도 있겠다.

더 이상 권하지 말자.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사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내 방향으로 간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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