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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미국 사무실 첫 출근

Apirl ~ August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이미지 : 구획으로 나뉜 개인 공간, 한국에서 셀이라고 부르는 걸 미국에선 'Cubicle'이라고 부른다. 내 자리는 3층 Cubicle N11이었다. 한국에 있던 내 자리보다 1.5배는 넓은 자리였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저는 IT 계열 제조업 회사의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1년 만의 사무실 출근

드디어 출근을 위한 준비를 하다.

미국 전역의 코비드 감염자는 날마다 확실히 줄고 있다. 미국 내 여러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파트너사 역시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주재원 매니저 Jason은 다음 주부터 주 3일 출근을 시작할 것이라고 공지를 했다. 그전에 각자 한 번씩 나와서 사무실 구경도 하고 자기 자리 청소도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얘기 했던 터라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했다.

코비드로 사무실 출입이 금지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마치 전쟁 때 피난 가는 것처럼 갑자기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청소하러 사무실에 가보니, 그때 사람들은 곧 돌아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지 사무실 모습은 2년 전 그 순간에 그대로 멈춰져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위엔 개인 물건이 그대로 놓여있고 휴게실엔 다 말라버린 커피잔이 테이블 위에 뒹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돌아오니 곧 모든 게 정상화되겠지. 자리 정리, 각종 개인 비품 확인, 보안 카드 수령 및 주차장 등록까지 마치고 나니 출근 준비는 다 되었다.


Jason은 출근 생활에 대한 매뉴얼 파일도 보내주었다. 대개는 안 봐도 알만한 것들이었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식사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별 다른 방법이 없으니 도시락을 싸 오거나 알아서 해결해라.'라고 되어있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주변에 식당이 없지는 않은데 미국 음식 싫어하는 사람이 매뉴얼을 적었나 보다. 한국 본사에서 보내주는 식비 지원금이 있으니 한인마트에서 컵라면 같은 걸 사서 먹으라고도 되어 있다. 그러니 도시락을 싸 오라는 게 이해가 되긴 했다.

매뉴얼엔 주재원들끼리 휴대폰을 가족 요금 할인으로 묶거나 카풀을 잘 활용하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내가 누구한테 그런 부탁할 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건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출근을 대비해서 아내의 운전 실력을 이미 끌어올려놨으니 카풀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돈 얼마 아끼는 것보다는 우리는 이게 더 낫다.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헤이니네는 집이 멀어서 출근 방향이 아예 달랐기 때문에 굳이 말해보지 않았다.)


Jason에게 출근 요일을 알려주는 것으로 준비가 완료된 것 같다. 미국까지 와서 거의 1년간을 재택으로만 일했는데 드디어 사무실로 출근한다. 진짜 미국 직장 생활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1년을 기다렸던 사무실 출근

출근 첫날, 기대와 걱정을 안고 출발했다. 입구에서 주차장 경비에게 사원증을 보여주고, 1층 로비의 경비에게도 사원증을 보이고 들어간다. 한국에서 익숙한 대로 게이트에 태그 하는 것이 아닌, 사원증을 꺼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좀 어색하긴 하다. 그런데 막상 1층 메인 게이트는 사원증을 태그 해야 열린다. 잉?

올라가기 전에 1층 매점에 들러서 커피와 도넛 한 개를 챙긴다. 사원 복지로 매점에서 사원증을 보여주기만 하면 커피, 일반 음료, 도넛, 스낵 같은 것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주재원들도 파트너들과 동일한 사원증을 쓰기 때문에 같은 혜택을 받는다. 매점은 간이식당도 겸하고 있어서 간단한 샐러드, 수프, 햄버거, 토스트, 치킨 너겟 같은 것들을 점심으로 팔고 있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지만 식당 다운 식당을 가러면 15분은 운전해야 Strip Mall(미국 특유의 도로변 단층 상가 단지)이 있기 때문에 가끔 여기서 먹게 될 것 같기도 하다.

3층 로비 리셉션을 담당하는 Sarah에게 인사하고, 내 자리로 찾아간다. 나는 다른 주재원들과는 좀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 옆 자리도 아니다. 주변엔 아직 빈지리가 많다. 출근 재개되었다고는 하지만 매일 출근은 아니니 그럴 법하다. 내 책상엔 모니터 한 개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랩탑을 연결하고 집에서 가져온 몇 가지 소품들을 설치하니 정말 내 자리가 된 것 같다. 매점에서 받아온 커피를 마셨다.


파트너들과의 미팅 시간에 한국 주재원들 출근 소식을 전했더니 자기들은 지금 당장은 출근하지 않는단다. 파트너들의 구체적인 복귀 일정은 직원 각자의 계약 조건 혹은 그날그날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업무 매니저인 'Yuanjing'은 자신 같은 매니저들은 곧 매일 출근하게 된다고 했고 아예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실무 파트너인 박사신입 'Ushik'과 할아버지 'Travis'는 당장은 출근 계획이 없단다. 그래도 Ushik은 곧 알바니에 집을 구해서 이사 오겠다 하니까 조만간 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두에게 내 출근 일정을 알려주고 사무실에 오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 했다. 직접 만나서 인사하고 싶다. 이 사람들과 만나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한편으로 좀 씁쓸한 것은, 주재원들끼리 일하는 게 아니라 각자 짝지어진 파트너들과 일하는 것이어서 한국사람들끼리 나오는 건 업무적으로 의미가 없는 행동이긴 하다. 이 친구들 안 나오면 내가 여기 와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해 보면 한국 주재원들은 한국 스타일대로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출근해야 했고, 파트너들은 미국 스타일대로 필요하지 않으니 출근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사람들을 빨리 만나게 되길 바랄 뿐이다.


사무실 복귀 초반이라 모든 것이 어수선하다. 사무실 배치 변경을 하느라 공사 소리도 나고 몇 명 안 되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만났는지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도 자주 들린다. 출근 첫날 사무실에 나온 주재원은 나 혼자여서, 매점에서 받아온 도넛과 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조용히 혼자 일하다 돌아갔다. 많은 것이 어색했지만 점점 좋아지겠지?


미국 직장 분위기 : 인간관계 & 업무관계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바로 인사하지 않으면 그 뒤론 영원히 인사할 수 없게 된다.

첫 출근 후 한 달 남짓 지나자 사무실 생활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인사와 날씨 이야기 정도는 건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사무실의 빈자리도 점점 채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주변에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나는 새로 온 사람이니까 내가 가서 인사를 하는 게 맞다. 어색하다고 위축되고 숨어 있기보다는, 이런 상황일수록 적극적으로 인사하고 나를 알려야 한다. 인사는 처음 만났을 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하게 된다.

"저는 작년에 한국에서 왔는데 1년을 집에만 있었어요. 1년 뒤엔 다시 돌아가야 하죠. 저는 오늘이 첫 출근이에요. Yuanjing, Ushik 같은 친구들과 같이 일해요. 잘 부탁합니다."

다들 반갑게 악수하며 맞아주었다. 앞자리에 앉은 품질팀 Yasiel은 회사가 무료 점심을 줄 때가 있으니 로비 옆 게시판을 잘 보라는 소중한 정보도 주었다. 디자인 담당 Arthur, 푸에르토 리코에서 온 Alberto 등등 한번 인사 나눴던 사람들 이름은 잊으면 안 되니까 따로 메모해 두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무런 인맥 혹은 친분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인사 나눈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같은 팀인 Ushik와 Yuanjing과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미팅을 하면서도 항상 사진만 봤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둘 다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려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다. 인도에서 유학 와서 갓 박사를 받은 Ushik는 아내도 델라웨어에서 박사과정 중이라 한다. 조만간 회사 근처에 작은 집을 얻어서 격주에 한 번은 출근할 생각이라고 해서 무척 반가웠다. 중국 연변 출신인 Yuanjing은 오래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이곳에 다닌 지는 거의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기술적 이해도도 높고 갈등 조율 능력도 우수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들 자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그 정도는 참을만하다.

출근은 개시되었지만 미팅은 여전히 온라인으로 한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가 듣든 말든 사무실 자기 자리에서 이어폰 끼고 그냥 한다. Yuanjing은 주간미팅 때마다 회의실을 예약해서 출근한 사람들이 모여서 미팅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한결 편안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과 미팅할 때는 만나서 하는 거나 화상으로 하는 거나 큰 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어로 미팅을 하니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거라고 기대해 본다.


미국 직장 업무 문화 : 개인주의 그리고 점 조직 구조

미국 사람들은 얘기를 나눌 땐 세심하고 친절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남의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옷차림도 제각각인데 굉장히 편한 차림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기술 연구직이 많은 회사라서 그런 건가? 아무튼 나도 한국에서는 하지 못할 아주 편한 옷차림으로 출근하곤 했다. 출퇴근도 제각각이고 누가 왔는지 가는지 말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업무가 되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사람이 사무실에 와 있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서 그렇다. 매니저들도 업무에 대해서만 관여할 뿐 그 외의 것들엔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업무에서도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담당하고 있는 것 말고도 종합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업무 미팅은 대체로 개방되어 있고 보안 문제만 없다면 누구든 참여해서 지식을 쌓고, 타 부서 담당 내용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미팅 참석이 제한적이라 타 부서의 의사 결정에 참관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타 부서의 업무 현황을 확인하려 하거나 뭔가를 제안하고 싶을 때는 매니저인 Yuanjing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 및 회신받아야 했다. 그렇게 받는 정보는 뭔가 살짝 가려진 느낌이다. 나의 요청이 맞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구조에서 매니저들은 타 부서의 정보를 직접 받으니 업무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지만, 실무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게 되기 때문에 좁은 시야를 갖게 된다. 나는 이 구조가 마치 점(點)조직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립된 실무자가 승진해서 업무의 폭을 넓힐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런 분위기는 이직이 쉬운 미국 고용문화 때문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에게 많은 지식을 알려 주었다가 다른 곳으로 이직하거나 하면 곤란할 테니 말이다.

점조직의 말단 실무자는 바로 윗 매니저에게만 보고하고 그 이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매니저는 또 바로 위까지만. 설명이 많이 필요해서 매니저가 커버하기 어려운 내용이면 실무자가 상위미팅에서 직접 발표한다.

한국에서는 실무자가 말단 과장에서부터 팀장님까지 보고라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한 번씩 불려 다니면서 일일이 설명해야 했던 일이 잦았다. 그리고 이 고생을 시키고도 최종 보고 자료 작성자 명단에서 '너무도 직위가 낮아서 보잘것없는' 실무자의 이름 따위는 배제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 내가 다 알아주잖아.' 같은 하나마나한 말들만 남는 것이 한국식 엔딩이다. 아, 정말 욕하고 싶다. 적어도 미국에선 그럴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 분위기가 이러하니 한국에서 남의 업무까지 이해하고 공부해야 했던 나의 그 괴로운 경험들은 미국에 와서는 아주 강한 장점이 되어있었다. 특히 박사 받고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Ushik는 내 얘기를 항상 경청해 주었다.


출근도 없지만 퇴근도 없는 미국 직장

회사엔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올 때는 사원증을 태그 해야 하지만 나갈 때는 문이 그냥 열린다. 퇴근 전에 인사하는 것도 없다. 근무 시간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 듯했다. 주간 미팅에서도 개인 일정 같은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한다. 이유도 다양하다. 치과를 가야 해서, 아이 학교에 가야 해서, 가족 여행이 있어서, 혹은 딱히 이유를 말하지 않기도 한다. 토종 한국인인 나에겐 낯선 분위기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미국식 일처리를 이해한다면 한번 정해진 개인 일정을 쉽게 바꾸라고 말할 수가 없다. 얼핏 보면 일정을 저렇게 해도 되나 싶기는 해도 결국 맡은 일은 다 해내는 게 미국 직장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개인사에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는다. 해내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일을 못하면 그다음부터 조용히 배제된다.

한국에서 치과 간다고 주간미팅 빠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한나절 회의실에 불려 가서 정신교육을 당했을 것이다. 업무 일정이 촉박하면, 개개인의 사정 상관없이 팀원 전체를 집에 못 가게 하고 주말에도 긴급 미팅 호출하는 것도 한국 회사 문화에선 부지기수 아닌가. 한국에선 그 와중에 회식도 끌려가야 하고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면 회의실로 불려 가서 정신교육도 당해야 한다. (바쁘다며...) 미국에선 적어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그 치과 약속이라는 것은 몇 달 전부터 간신히 예약했을 거라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직장이 마냥 자유롭고 좋은 건 아니다. 개인 볼 일 보면서 맡은 업무를 끝내려면 집에서 일하는 게 필수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재택근무 시스템이 오래전에 이미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여서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주 잘 구축되어 있다. 사람들도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

재택근무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인해 회사와 회사가 아닌 곳의 구분은 점점 모호하다. 재택근무를 1년 정도 해보니, 실제 근무한 시간으로만 따지면 한국과 미국이 큰 차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회사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이 문제인데 미국은 회사와 가정의 구분이 없는 것이 문제다. 출근도 없지만 퇴근도 없는 곳이다. 노동자에겐 단점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장점이겠다.

미국에서도 사무실 출근을 해야 제대로 된 업무가 되니 재택근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거대한 나라에서는 재택근무는 없앨 수가 재택근무가 없다면 Ushik나 Travis같이 다른 주에 사는 사람들은 아예 뽑을 수가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모를까, 재택근무는 이젠 미국에서 사라질 수가 없다. IT계열은 특히 더 그렇다.


미국 직장 친구를 사귀는 시간 "Social Time"

회사는 출근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무료 점심을 준다. 무료 점심 날이 되면 대회의실에 주변 식당에서 배달받은 음식을 뷔페처럼 차려주었다. 무료인 데다 1층 매점보다 맛있고 음식이 남으면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포장 박스까지 챙겨주니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데 식사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점심 외에도 간식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자주 있어서 사람들은 그때마다 대회의실에 모여서 얘기를 나누곤 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을 'Social Time'이라고 불렀다. 미국 직장이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기본이지만 동료끼리 소통과 교류, 즉 Social 할 수 있는 기회를 회사가 지속적으로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부장님 안 오셨으니 기다려야지'라거나 '팀장님 말씀 듣고 시작해 주세요'같은 군기 잡힌 수직형 휴식문화는 미국에 없기 때문에 진실로 편안한 분위기다.


파트너들과 어울릴 수 있는 Social Time이지만 한국 주재원들은 한국사람끼리만 모여서 식사하거나 심지어 아예 대회의실 밖으로 음식을 가지고 나가서 파트너들 없는 런치룸에서 먹곤 했다. 아마 한국사람 숫자가 두세 명 정도라면 한국사람들끼리 있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16명이나 있는 곳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식사하면서까지 영어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회사 내에 친분 있는 사람은 같은 주재원들뿐이니 이해는 된다. 나는 Ushik나 Yuanjing이 출근하면 대개는 같이 있었고, 그 친구들 없는 날엔 한국인 무리 중 한 명으로 있었다.

확실히 한국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도움 되는 것도 많고 편안하다. 하지만 그렇게 있으면 미국 회사 친구 사귈 기회를 날리는 것 같은 아까운 마음이 든다. 친분이 부족했던 주재원들하고도 가까이 지내고 싶기도 하고 이제 1년 남은 미국 회사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기도 하다. 아무리 누구에게나 쉽게 말 걸어도 되는 곳이라고는 해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일부러 인사하고 말 걸는 건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는 일이다.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Social Time때마다 회의실에 멋쩍게 서 있다가, 주재원들 따라 런치룸으로 나가고, 나가서 수다 떨고 놀고 돌아와서는 아쉬워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어차피 결말이 이럴 거 그냥 고민하지도 말아야 하나. 그래도 조금만 용기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음 주에는 Social Time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좀 걸어볼 수 있을까?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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