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2. 강추위 속 찾은 Washington DC

December 24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미국 국회의사당. 토요일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TV에 많이 나오는 잔디 마당의 뒤편이고 근처에 방문자 센터가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미국 5,000km Road Trip, 그 대장정의 시작"에서 계속


(사진) 10일에 걸쳐 12개 주를 지나는 경로. 이동거리 총 3,200마일 = 5,120km에 달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9박 10일로 떠나는 미국 동부 로드트립. 총 이동거리 5,100km, 12개 주를 지나는 일정이다. 이 여행을 통해 미국만의 이야기를 보고 올 수 있기를 바라며 먼 길을 나선다.


Day 2 : 기록적 한파를 뚫고 다시 찾은 워싱턴 DC


어젯밤 북쪽에서부터 내려오는 눈폭풍을 피해 도망쳐서 워싱턴 DC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Judy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다.

I know I am a worrisome old woman, but I hope you will hang out in D.C. and enjoy the many museums and restaurants until the storm abates (lets up/passes.)

We’ve had ice, flooding, snow, freezing temperatures, and everything that Mother Nature could wallop at us this weekend. We are hearing of many people stranded on the highways in New York State. The Blue Ridge Mountain roads will be treacherous. If you go off the road, emergency vehicles may not be able to get to you.
The National Weather Service on Friday said its warnings and advisories covered about 200 million people — "one of the greatest extents of winter weather warnings and advisories ever,” forecasters said.

I think back to hearing about the Battle of Chosin Reservoir, from the end of November until mid-December, 1950, when the Chinese took back that section of North Korea.
The US X Corps and Republic of Korea I Corps reported 10,495 casualties during the fighting around Chosin. And the brutal cold added another 7,388 Marines to the list as non-battle casualties. These men are remembered in America as the Chosin Few, a play on the verb to choose, because our religion talks of God calling The Chosen Few to heaven.

Enjoy your holiday, but be careful. I'd love to hear that you're okay!

혹시 내가 기록적 한파에 대한 뉴스를 못 봤을까 봐, 미국의 지리적 특성을 모르고 다닐까 봐 걱정이 되신단다. 평소 이런 적은 없으셨는데 요새 워낙 날씨가 안 좋고, 미국 할머니가 걱정이 많으신 탓이다. Judy가 걱정하고 계실까 봐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럴 줄 알고 우리는 눈 폭풍보다 더 빨리 운전해서 남쪽으로 도망 왔어요. 오늘은 워싱턴 DC를 구경해요.'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가면 어제의 무용담을 꼭 말씀드려야겠다. 잠시 후엔 Owen에게서도 걱정의 문자가 와서 바로 답문 해드렸다. 이 미국땅에서 누군가 이민자인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이 꽤나 든든한 기분이다.

Washington DC는 작년 11월에 이미 다녀온 바가 있어서, 이번엔 그때 가보지 못한 곳을 다녀오는 정도의 간단한 하루짜리 일정을 잡았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다음 장소로 멀리 이동해야 한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의 Washington DC - Union Station

호텔을 나서면서 뉴스를 보니 아침 기온이 화씨 10도, 섭씨로는 -12도다. 서울에서도 이런 추위는 흔치 않다. 내셔널 몰(National Mall)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는데 정말 살을 에이는 바람에 눈도 뜨지 못할 지경이다. 날이 너무 추워서 잠깐 어딘가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 워싱턴 DC의 메인 기차역인 유니온 스테이션이 근처에 있다. 얼른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해야겠다.


이 역은 여러 철도 회사의 노선이 한꺼번에 지나기 때문에 'Union'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오래된 역이지만 미국의 수도라는 지역적 지위에 걸맞게 거대한 규모로 지었다고 한다. (미국 내 모든 기차역 중에선 NYC의 Grand Central 역이 가장 규모가 크다.)

역사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상당히 최신식이고 천장이 아주 높아서 개방감이 엄청나다. 크기 자체는 NYC Grand Central 역 정도는 되는 듯한데 사람이 NYC 정도로는 많지 않아서 더욱 넓은 느낌이 든다. 역내부엔 카페와 쇼핑몰도 있어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커피 한잔 마시고 세은이가 너무 추워해서 덧입을 옷을 한벌 사서 나왔다.

(사진) 120여 년 전에 지어진 유니온 스테이션 전경. 역 바로 앞에는 역사 건설당시 세워진 콜럼버스 기념비와 분수가 있다.
(왼쪽) 콜럼버스 서클 뒷편의 자유의 종 모형, 1980년대에 설치된 것이다. (오른쪽) 유니온 스테이션 내부. 뉴욕시티의 Grand Central 못지 않게 큰 역사이다.

역 바깥에 있는 광장인 '콜럼버스 서클'엔 작은 분수대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석상이 설치되어 있다. 원주민 및 이민자를 포용을 지향하는 요즘으로썬 조금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그림이다. 역 건설 당시에 지어진 것이라 하니 그때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리고 콜럼버스 석상 뒤편에는 '자유의 종'이 있는데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1976년에 설치된 복제품(원본: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이다. 콜럼버스 석상과 이 종에 딱히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미국적인 것'들이 백화점식으로 한데 모여있는 느낌이다. 미국의 수도니까 이 정도의 '애국심'은 이해해 주자.

너무 추워서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을 수도 없다. 얼른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겠다.


우리와 인연이 끝내 닿지 않은 국회의사당

워싱턴 DC의 볼거리들은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대부분 모여있다. 내셔널 몰은 워낙 넓은 곳(길이가 약 4km로 동서 방향 끝과 끝까지 걷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인 데다가 대형 박물관이 많은 곳이라 하루 이틀 정도로 다 보기엔 부족하다. 우리는 작년에 2박 3일로 워싱턴 DC에 왔었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놓친 곳이 많는데 무려 국회의사당을 보지 않고 돌아와야 했었다. 그래서 그 아쉬움에 이번 여행에선 국회의사당을 1순위로 놓았다.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나와 10분쯤 걸으면 잔디 정원을 지나고, 상원 의원 사무실(Russell Senate Office)까지 지나서 내셔널 몰 동쪽 끝에 위치한 국회의사당(동편 입구)에 닿게 된다. 워싱턴 DC 도시 설계 시점인 1800년에 백악관과 함께 지어져서, 역시나 백악관과 마찬가지로 1800년대 초반 영국과의 전쟁으로 소실된 후에 대대적인 개보수, 증축 등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막상 가까이에 와서 보니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입구가 위쪽에 있어서 계단을 통해 건물에 오를 수 있게 되어있어서 방문객에게 위압감을 주고 외벽에 새겨진 수많은 조각들은 엄청 화려한 느낌을 준다. 눈길이 가는 건 상징과도 같은 특유의 돔 구조인데 그 꼭대기에 동상(자유의 동상, Statue of Freedom)이 세워져 있다는 건 이번에 보고서야 알았다. 동상 때문인지 건물이 더욱 크고 높아 보인다. 아마도 국회는 국민을 직접 대표하는 곳이니 건물의 권위를 한껏 높여 표현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주변엔 정장 입은 경비원들이 종종 보이는데, 2021년에 있었던 국회 폭동 탓인지 경계가 삼엄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여의도 국회의사당과는 달리 여기는 국회 건물 주변으로 담이 없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던 게 폭동이 벌어진 원인 중 하나겠구나 싶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에게 안타까웠던 사실은, 국회의사당 내부 구경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다는 것과 지하에 있는 관광객 안내소 및 기념품점도 추위 때문인지 크리스마스 휴일 때문인지 아무튼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밖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는 금세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무래도 국회의사당과는 우리가 인연이 없나 보다.

(사진) 미국 연방 국회의사당. 흔히 뉴스에 나오는 모습의 뒤쪽이다. 돔의 꼭대기에는 '자유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건물이 더욱 높아 보인다.
(왼쪽) 너무 추워서 들어간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 (가운데) 세계의 '인디언 음식' 전시공간에 한국의 인디언밥이 있다. (오른쪽) 가장 만만한 식사. 치킨텐더.
그들은 스스로를 '인디언'이라고 부르지 않아

그야말로 '기록적인 추위'인 오늘은 건물 밖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가까운 아무 데나인 '아메리칸 인디언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에 들어왔다. 여기는 미국의 국립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계열 중 하나여서 입장료가 무료다. 독특한 외관을 한 박물관 실내에 들어오자마자 세은이가 로비 벤치에 널브러진다. 정말 너무 추운 곳에서 비로소 따뜻한 곳에 온 세은이가 '인디언'의 역사를 관람할 만큼 좋은 상태가 아닌듯해해서 이곳에선 그냥 쉬었다가 점심이나 먹고 가기로 했다. 박물관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하기엔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내 맘처럼 되는 게 많지 않은 법이다. 이따 오후를 도모하자.


한참을 앉아서 쉬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세은이가 재밌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1층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세계 속 미국 인디언 음식(American Indian Food in the Global Pantry)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미국 원주민들이 주로 먹던 농작물로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식품들을 소개하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에 '농심 인디언밥'이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왜 여기에?

세은이가 뜻밖의 한국 물건에 좋아해서 반갑기는 했지만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농심 인디언밥' 어디에 미국 원주민의 문화나 역사가 들어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이 제품은 한국인들이 미국 원주민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물건이고 그저 상업적으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수준 낮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옥수수로 만들었다고 '인디언밥'이 미국 원주민과 관계가 있다고 우기고 싶은 건가? 이름이 인디언이니까 인디언 박물관에 있어야 하나?

'이게 뭔지나 알고 여기 가져다 둔 건가? 스미스소니언도 수준이 별것 아니구먼'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이 박물관의 이름도 이상하다. 'Native'가 아닌 'Indian'이라는 표현이 국립 박물관에 붙어있다는 건 너무 생각이 없는 작명이다. 명명백백하게 미국 원주민은 인디언이 아니다. 인디언이라는 표현은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부를 때 쓰는 말이 아니고, 인도로 가려던 침략자들이 아메리칸 원주민을 제멋대로 부르던 말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소니언이 원주민을 존중한다면 이런 무성의한 전시도 그만두고 박물관 이름도 바꿔야 할 것이다. 확실히 이곳은 원주민을 위한다거나 원주민의 마음을 헤아려 세운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관람의 흥미가 사라졌다. 식당 메뉴는 따뜻했지만 맛은 그냥 그저 그랬다. 밥만 먹고 나왔다.


다시 찾은 내셔널 갤러리 - 현대 미술의 East Building

아내는 오후 일정으로 내셔널 갤러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날이 너무 추워서 멀리 이동할 수도 없는 데다가, 지난번에 왔을 때 절반 밖에는 못 보고 갔었기 때문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유럽 고전 회화 중심의 서관(West Building)과 현대 미술 중심의 동관(East Building)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동관으로 향했다.

(왼쪽) 내셔널 갤러리 East Building 천장에 달린 A. Calder의 모빌 작품 (오른쪽)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그림판이 설치되어있다.

고전적인 느낌인 서관에 비해 동관은 상당히 현대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으며 그에 맞게 비교적 최근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파블로 피카소의 젊은 시절부터 말년의 작품까지도 볼 수 있고, 피트 몬드리안, 잭슨 폴락 등등 유명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미술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을 볼 때마다 세은이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남겼다. 나중에 시험에 나올 테니 잘 봐두라는 농담 섞인 말과 함께. 그렇게 우리는 남은 오후 모두를 미술관에서 보냈다.

(사진) 내셔널 갤러리 East building의 현대 미술 작품 (작가 (왼쪽부터) : 피트 몬드리안,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사진) 내셔널 갤러리 East buidling의 현대 미술 작품 (작가 : 파블로 피카소의 방과 그의 작품, 잭슨 폴락)

기록적인 추위를 등지고 찾아온 워싱턴 DC의 하루는, 미술관에서 나와 차이나타운의 저녁식사로 끝났다. 짧아서 아쉬운 일정이지만 우리에겐 본격적인 로드트립의 긴 여정이 남아있다. 내일 긴 운전을 위해서 일찍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사진) 내셔널 갤러리 West building 입구의 에르메스(Hermes=Mercury)상과 로툰다 분수(Rotunda Fountain) 그리고 어린이.


"KFC의 고향, 켄터키 Corbin을 가다"로 계속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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